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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옥 Nov 22. 2021

올리브나무 사이로

학교에서 나와 만난 나의 아이들에게

 37. 상계동의 슈바이처     

 상계동 마들평야에 대단위 주공아파트와 민간 아파트가 세워져서 이제는 그럭저럭 살림을 꾸려가는 서민들이 많이 살고 있지만, 원래 상계동은 그 전체가 가난한 마을이었다. 아직도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깊이 들어가면 매우 허름한 집에서 고생스럽게 사시는 분들이 많다.    

 

 나는 상계동의 아파트 단지에서 한동안 살았다. 내가 살고 있던 그 상계동에는 ‘상계동 슈바이처’라고 불리는 나이 많은 의사 선생님이 계셨다. 

 의사 선생님의 나이가 상당히 많은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무료 진료를 하셨던 것 같았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 안에 병원이 있지만, 가난하여 병원비를 내기 곤란한 사람들은 여전히 무료로 또는 약값 정도 받으면서 치료를 해 주신다. 그래서 ‘상계동 슈바이처’로 불리는 것이다.

 나도 감기라든가 몸이 아팠을 때 가끔 그 병원에 갔었다. 물론 나는 치료비를 낸다. 그런데 그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대체로 밝지가 않았다. ‘오랜 시간 같은 일에 종사하다 보니 피로감이 쌓였나 보다.’ 짐작했을 뿐이다. 무표정한 얼굴에 약간 어둡기까지 하다.

 어느 날 감기몸살이었던가, 일찍 퇴근하여 그 병원에 들렀다. 마침 내게 축농증 증상도 있는 것 같아 몇 가지 검사를 받았다. 점심을 먹었느냐고 묻기에 12시에 학교에서 먹었다고 했더니, 위 속이 완전히 비어 점심을 먹지 않은 줄 알았다고 하시며, 학교 선생이냐고 묻는다. 

 교사인 줄 알고는 갑자기 목소리가 맑아지고 얼굴이 환해지신다. 그 사소한 변화에 내 마음에 여러 가지 생각이 오고 갔다.     

 

 사람은 참 복잡한 존재다. 무료로 혜택을 받으면 항상 고맙게 여겨야 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 잘해 주다 보면 그 대접이 자기 권리인 줄 아는 사람도 있다. 아마도 의사 선생님 생각과 달리 몰상식한 사람도 많이 만났을 것이다. 그래서 환자들을 대할 때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그렇게 무표정하셨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라고 하니까 그런대로 소통이 되는 사람, 몰상식한 사람은 아닐 거라는 마음이 드셨는가.’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환한, 반가운 표정이 된 것 같았다.     

 

 어디선가 들은 말이 생각났다. ‘인류라는 추상적인 대상은 사랑하기 쉬운데, 인간 개개인을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                               


  38. 줄다리기     

 우리 반 동연이는 몸집이 몹시 크다. 친구들 두 배는 되어 보인다. 키는 170cm 정도였지만 아마도 몸무게는 80kg이 넘을 것 같았다. 몸집이 커도 성격은 온순한 편이라 친구들에게 위협적이지는 않다. 그런데 동연이가 어느 날 아침 교실에서 혼절을 하였다. 학급 아이들이 매우 놀라 우왕좌왕하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아이들이 놀라 내게 달려왔을 때 나도 가슴을 두근거리며 교실로 달려 올라갔다. 아픈 아이 이마의 땀도 닦아주고 편하게 눕힌 다음, 일단 양호실로 옮겨야 하는데 아이들과 내 힘으로는 부족하였다. 옆 반 남자 선생님까지 달려오셨다. 

 양호 선생님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병원을 알선해 주시고, 잘 치료받으면서 다시 그런 일은 없었지만 가끔씩 엉뚱한 행동을 했다. 그래도 큰 문제 없이 학교에 잘 다니고 있었다.     


 가을 체육대회 날이다. 우리 반은 줄다리기에서 결승전에 진출하였다. 체육대회 날이 되기 전에 축구, 배구, 피구, 줄다리기 등, 반 대항 토너먼트를 벌여 종목별로 결승전에 진출할 반이 정해진다. 전교생은 50m 달리기, 이어달리기, 장애물 경주, 오자미 터트리기, 발목 묶고 달리기 등에 참여한다.

 결승전에 진출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대단한 영광이고 기쁨이다. 모두 아침부터 들떠 있다. 더구나 우리 반에는 커다란 불곰 닮은 동연이가 있어 우승은 보나마나라고 다들 미리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동연이가 보이지 않는다. 하필 오늘 결석이다. 연락도 되지 않는다. 줄다리기 결승이 시작될 때까지 아이들은 초조하게 동연이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줄다리기는 양쪽 반의 인원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 반 인원이 하나 줄면 상대 쪽 반도 한 명을 줄여야 한다. 동연이와 비교하자면 조그마한 강아지 정도라 해야 할까. 상대 반은 가장 작은 아이를 하나 줄이고 결승에 나섰다. 힘의 균형이 깨졌다. 우리 반이 지고 말았다. 아이들은 ‘동연이 도대체 뭐냐. 이럴 때라도 도움이 되어야지. 도대체 도움이 안 되네.’ 하면서 몹시 분해 하였다.     

 

 상대 반 담임은 수학 담당의 남자 선생님이었다.

 - 내가 동연이더러 체육대회 날 결석하면 빵 사준다고 농담했더니 정말 결석했네.     


 어처구니가 없었다. 농담이라지만 어째 저런 말씀을 하셨단 말씀인가. 무척 속이 상했다.     


 동연이는 아이들 간식 먹는 시간에 어슬렁어슬렁 나타났다. 아이들이 화가 나서 동연이를 향해 와글와글 떠든다. 학교에서는 간식으로 소보로빵과 단팥빵, 음료수를 나눠주었는데, 동연이는 몇 개 남은 빵을 자기에게 더 달라고 조르기까지 한다. 뒤통수라도 한 대 후려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 마음을 억누르고 빵을 하나 더 주고 말았다. 

 ‘그래, 빵이 그렇게도 먹고 싶더냐.’                                                                                                                    

 39. 우리의 인생     

 1994년 5월이었다.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미망인이고, 나이 많은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혼한 재클린이 사망하였다. 향년 64세였다. 죽음을 맞이하기엔 젊다면 젊은 나이다. 그날은 그 뉴스가 하루종일 화제였다. 일간신문의 제목은 이러했다. <모든 것을 가졌으나 사랑받지 못하여 불행했던 여인, 재클린> 정말 그런가. 사랑받지 못한 일생이었는가. 

 재혼한 오나시스의 연인은 원래 세계적인 소프라노 가수 마리아 칼라스였다. 오랜 시간 그와 연인 관계였던 칼라스는 언젠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오나시스와 하게 되리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뜬금없이 재클린과 연인이 되고 결혼을 하는 바람에 큰 충격을 받은 칼라스는 목청을 잃고 더 이상 노래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얼마나 큰 충격을 받으면 목청을 잃게 되는 건지, 혹은 실명을 하기도 한다는데, 그 마음을 가늠하기는 어렵다. 칼라스는 그 후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다가 오나시스가 1975년에 69세로 세상을 떠난 후 자신도 시름시름 살다가 곧 생을 마감한다. 54세였다. 순애보다.     


 점심시간에 식당에 모인 여선생님들은 재클린의 죽음을 이야기하다가 여자의 일생을 화제로 삼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선생님이 신세 한탄을 한다. 

 - 학교에서 이렇게 하루종일 일에 시달리다가 집에 가면 또 나만 무수리야. 식구들은 모두 왕이고, 왕자, 공주인데, 나는 무수리야.

 그 무렵에는 직업을 가졌더라도 여자가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집안일은 어떤 경우에도 여자의 일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인 사회였다. 그리고 그때는 대학을 나온 여자들도 대부분 전업주부였다. 그러니 여선생님들은 고된 일을 마치고 퇴근해도, 저녁하랴 식구들 돌보랴 쉴 틈이 없었다. 자조적으로 자신을 무수리로 칭하는 것이었다.

 - 내 인생은 도대체 어디로 갔나.

 - 그러게.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처연하게 그 말을 받는다.

 문득 사회 선생님이 끼어들었다.

 - 네 인생, 내 인생이 어디 따로 있어. 이게 내 인생이지.

 위로도 되고 깨달음도 주는 일리 있는 말씀이다. 그러나 다들 좀 쓸쓸해졌다. 모두 말을 삼가고 묵묵히 식사를 한다.   

                                     

 40. 사춘기     

 3학년 7반은 동물농장이다. 남학생만으로 이루어진 반인데 온갖 동물이 모여 산다. 본명이 아니고 별명이다. 메뚜기, 갈매기, 오랑우탄, 황소, 개구리, 너구리, 물소 등 포유류, 조류, 종류 가리지 않고 온갖 동물이 모여 있다. 시끌벅적하고 흥겨운 반이다.      


 나는 동물농장 옆에 있는 여학생반의 담임이었다. 우리 반에는 별명으로 불리는 아이는 없었다. 그러나 소소히 학교 규범이라든가,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학생이 많은 편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럴 나이이기도 하다. 청소년 심리학에서는 ‘질풍노도의 시기’라고도 하지 않았는가.      


 어느 날 동물농장 반에 수업을 들어가니 한 학생이,

 - 선생님 반에는 날라리가 너무 많아요. 

한다.

 - 그런 게 아냐, 우리 반 아이들이 개성이 강해서 그런 거야.

 - 개성이 강해서 그렇다고요?

 모두 박장대소를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수업을 진행하였다.     

 학기 초에 좀 어렵긴 했다. 지각을 자주 하는 학생이 많고, 점심시간에도 제자리에서, 또는 옹기종기 모여 식사를 해야 하는데,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교실 뒤편 바닥에 우르르 몰려 앉아 밥을 먹는다든지, 교복도 다른 반 아이들과 달리 치마를 바짝 줄여 입는다든지, 수업 중에 반항적인 대답을 한다든지, 그러나 사소한 일탈일 뿐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었다. 7반 남학생들이 동물농장을 이루어 아우성치며 살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사춘기를 좀 거칠게 지나가는 것이었을 뿐이다.                                                                                           

 41. 내성적인 성품     

 남자아이들은 쉬는 시간에는 모두들 떠들고 뛰어다니고 야단법석을 한다. 일부 아이들은 그 짧은 시간에 운동장으로 달려나가 공을 차다 오기도 한다. 

 그런데 준연이는 자기 자리에 앉아 늘 책을 읽고 있다. 어느 날은 영어로 된 두꺼운 책을 읽고 있다. 소설인지 또는 다른 종류의 책인지 물어보지 않아 알 수는 없었다. 당연히 사전의 도움도 받지만 ‘이제 겨우 중학교 2학년인데 벌써 저렇게 깨알 같이 박힌 영어를 읽을 줄 아는구나.’ 하는 생각에 그저 신통했다.

 다른 아이들과 많이 다르긴 해도 전혀 걱정은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다 제각각의 성품과 능력으로 사는 법이고, 친구들과 그런대로 마음으로 잘 어울리고 있으니 담임인 나로서는 문제될 게 없다고 보았다.  

   

 예전에 어느 신문에서 ‘대부분의 지하철 기관사가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는 기사를 읽었었다. 수많은 시간을 홀로 근무해야 하기 때문이다. 육상을 지날 때보다 컴컴한 지하로 진입하면 더 외롭고 예민해진다고 한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누가 철로에 뛰어들기라도 하는 날이면 참을 수 없이 괴롭다고도 한다. 아마도 그날 그런 사고가 나서 지하철 기관사의 스트레스에 관한 기사가 실렸던 것 같다.

 그 기사를 읽고 얼마 후에 좀 별다른 성품의 기관사를 인터뷰한 글을 신문에서 또 읽게 되었다. 그 기관사는 자신의 일이 성격에 꼭 알맞다고 한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홀로 일하는 것이 너무 편하고 좋단다. 물론 누군가 철로에 뛰어든다면 그 일은 그도 괴로울 것이다. 그것은 드문 일이고 예외적인 사건이니까 그는 자기 직업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었다. 그는 휴일에는 취미생활로 스포츠카 모는 일을 한다.    

 

 어느 날 준연이 어머니가 학교에 오셨다. 준연이가 활동적이지 않아 걱정이 많으셨다. 일요일에 친구들이 놀러 가자고 해도, 농구하자고 불러도, 책 읽느라고 나가지 않는단다. 

 모두 제 성격에 맞게 살아갈 터이니 너무 염려하시지 말라고, 준연이는 연구원이나 대학의 교수를 하면 알맞지 않겠느냐고 위로를 해 드렸다. 친구들이 부르러 오는 걸 보면 성품도 모나지 않은 편인 듯하니 너무 염려하시지 말라고 말씀드렸다. 그 준연이가 어떻게 성장하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때때로 궁금해진다.     

 나는 웬만하면 주어진 성격대로 사는 것이 속 편하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성격을 바꾸는 것이 훨씬 좋다는 의견도 있으니, 어느 것이 옳은지 아직도 분별하기 어렵다.        

       

 42. 올리브나무 사이로

 수업 중에 영화 「올리브나무 사이로」를 이야기해 주었다. 30년 혹은 20년 전만 해도 그다지 재미있는 오락거리가 많지 않을 때라 수업 중에 아이들에게 영화 이야기나 소설 이야기를 해 주면 퍽 좋아하였다.      


 가끔은 짧은 난센스 퀴즈 같은 것을 풀어보라 하며 아이들을 골려주고 나서 수업을 시작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친구 사이인 도넛과 식빵이 함께 도로를 걸어가는데 뒤에서 트럭이 달려왔다. 하나는 죽고 하나는 살았다. 누가 살았을까?’ 하고 묻는다. 아이들은 모두 함께 ‘도넛이요’라고 대답한다. ‘왜?’라고 물으면 ‘둥글게 생겨 잽싸게 굴러갔어요.’ 한다. 내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아니, 식빵입니다’라고 알려주면 아이들은 또 이구동성으로 ‘왜요?’ 한다. ‘식빵만 귀가 있으니까요.’ 아이들은 ‘에이~’ 김빠지는 소리도 하지만 나에게는 재미있는 하루가 시작된다.      


 이란의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만든 영화 「올리브나무 사이로」는 영화를 찍는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라는 영화를 찍는 것이 주요 줄거리다. 그 전에 이 감독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아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제목도 낭만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나무지만, 올리브나무 우거진 사잇길로 걸어가는 상상을 해 보라. 반 고흐 그림 <올리브나무>를 보면, 노란 해의 따스한 햇살이 내려앉아 은초록빛으로 빛나는 올리브나무가 아름답다.

 영화 속 인물들은 전문 영화배우가 아니다. 그 마을에 살고 있는 호세인과 테헤레가 신혼부부 역할을 하며 영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를 찍는다. 그런데 호세인은 실제로 테헤레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영화를 촬영하는 내내 애정을 드러내지만 테헤레는 관심이 없다. 테헤레의 할머니도 가난한 호세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촬영이 끝나갈 무렵 호세인은 올리브나무 사이 언덕길을 올라가는 테헤레를 뒤쫓아간다. 테헤레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그 끝 장면에 호세인은 멀리 작은 점처럼 보이다가 점점 사람의 형체로 보이다가 다시 멀어져 간다. 그 장면이 10여 분 지속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나는 그 올리브나무 사이로 따라 들어가며 호세인의 마음을 헤아려보았다.     


 아이들은 그 지루한 끝 장면을 어떻게 참고 보았느냐고 놀라워한다. 세대 차이다. 그런데 차츰 아이들에게 무언가 이야기해 주는 일도 줄어들었다. 그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세상이 달라지고 있었다. 내 마음에 좀 서운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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