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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옥 Nov 22. 2021

올리브나무 사이로

학교에서 나와 만난 나의 아이들에게

 23. 진학 지도     

 그해에 처음으로 3학년 담임이 되었다. 여학생반이었다. 처음 교사를 시작할 때는 선생님들이 제일 기피하는 2학년을 주로 맡게 된다. 그 학년이 함께 하기가 가장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 선생님들이 많이 담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대체로 교사 시작한 지 몇 년은 지나야 3학년 담임을 맡을 수 있다.     

 그 당시 어느 중학교나 3학년들은 연합고사에 대비하여 매월 모의고사를 치르는데, 문제지는 교육청에서 공급하고,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모든 중학교가 동시에 모의고사를 치른다. 그때는 학급 석차가 중간 이상은 되어야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물론 상위권 학생이어야 입학할 수 있는 상업고등학교나 공업고등학교도 있었다. 여학생의 경우 서울여상, 동구여상 등이 있었다.     

 우리 반 미연이가 꼭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런데 첫 번째 모의고사에서 미연이는 예상되는 인문계 커트라인에 상당히 못 미치는 점수를 받았다. 열심히 공부하라고 격려하긴 했지만, 인문계에 진학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웬일인가. 모의고사를 치를 때마다 미연이의 성적이 상승한다. 한 번도 내리막길로 가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꼭 성적이 오른다. 마지막 모의고사에서는 거뜬히 예상 커트라인을 넘었다. 

이제 연합고사를 치러야 한다. 이 추세대로라면 미연이는 인문계에 진학하는 데 무리가 없다. 그러나 걱정이다. 계속 상승세를 탔으니 합격할 것 같기는 한데, 8번 정도 치른 모의고사에서 단 한 번 예상 커트라인을 넘었을 뿐이다. 

 미연이와 함께 며칠 고민을 하였다. 결국 특지고등학교에 지원하기로 결정하였다. 특지고등학교라는 것은 다른 인문계 고등학교와 같은 정식 인문계 고등학교지만, 학교가 위치한 곳이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외진 곳이라, 무작위로 배정하기에는 곤란한 학교다. 그래서 특수한 지역이라는 말을 줄여서 ‘특지’라고 하였다. 

 서울에 특지고가 여럿 있었는데 연합고사를 치르기 전에 먼저 입학원서를 넣어놓는다. 그리고 연합고사를 치른 후 입학원서를 넣은 아이들 중 성적 순서대로 정원을 채운다. 그러니까 연합고사에서 인문계 커트라인을 넘기가 좀 어려운 아이들이 원서를 미리 넣는 곳이다.     

 그런데 미연이는 연합고사에서 마지막 모의고사 성적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받았다. 안타까웠다. 특지고에 원서를 넣어둘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미연이는 몹시 상심하고 나도 매우 아쉬웠다. 그렇게 미연이는 특지고등학교로 진학을 하였다. 나로서는 실패한 진학 지도로 여겨져 상당히 마음이 아팠다.     


 다음 해 스승의 날에 미연이가 학교로 나를 찾아왔다. 명랑한 얼굴이었다. 특지고등학교에 간 것을 퍽 괜찮다고 여기고 있었다. 학급의 반장을 맡았고, 그 학교에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을 하였으니 모든 선생님들이 자신을 알아본단다. 교무실에 가면 여기저기서 미연이 이름을 부르신다고. 미연이로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미연이는 학교 다니는 일이 참 행복하다고 했다. 나는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어쩌면 미연이는 나를 안심시키려고 그렇게 말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미연이가 정말로 행복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 되는 것이 세상사라더니, 특지고등학교 중에는 나중에 그 근처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단번에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학교가 된 곳도 있다.)                                                            

24. 주용이     

 주용이는 얼굴이 맑고 늘 환하게 웃는 3학년 남학생이다. 중간 크기의 키에 몸무게도 적당하고 평균 성적도 80점을 넘어가니 어디 하나 모난 데 없는 소년이다. 친구들과도 사이좋게 지낸다.

 그런 주용이가 가끔 나를 ‘엄마’라고 한다. ‘선생님은 엄마 같아서 좋아요.’ 한다. 엄마라니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인가. 이 세상에 엄마보다 좋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엄마는 고향이고, 슬프고 외로울 때 기댈 수 있는 언덕이다. 혹여 신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엄마가 있어 살 만한 세상이 아니던가. 

 그런데 나는 주용이가 ‘엄마’라고 하는 말이 거북하였다. 아직 삼십도 안 된 젊은 나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거의 다 자란 중3 소년의 엄마라니, 주용이가 그럴 때마다 그냥 빙그레 웃어주었을 뿐이다. 더 가까이 가지도 않았고 더 살갑게 대해 주지도 않았다. 좀 불편해서 적절한 거리에서 적당히 친절했을 뿐이다.

 학적계를 담당한 나는 학년 말에 하는 일 중에 하나가 전체 학생들의 생활기록부를 점검하는 일이다. 물론 담임 선생님이 잘 작성해 주시고 옆 반 담임 선생님과 교환하여 점검하시지만, 최종적으로 내가 살펴보고 결재를 받는다. 학교 규모에 따라 학적계 담당이 학년 별로 있는 경우도 있다.

 주용이 반의 생활기록부를 들여다보다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용이가 학교 근처의 보육원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보육원에는 부모가 없거나, 부모가 있어도 사정상 기르기 어려워 맡겨 두는 아이들이 산다. 전혀 그늘이 없어 보였던 주용이가 보육원에 살고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나를 ‘엄마 같아요’ 하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좀 더 살갑게 대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후회가 되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었다.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러갔어도 가끔 주용이 생각을 하게 된다.                                                                           

 25. 가가멜 교장 선생님     

 우리 학교 교장 선생님 별명이 ‘가가멜’이었다. 아이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분명히 유능한 부분이 있어 교장 선생님이 되었을 터인데, 아마도 아이들 눈에 심술궂어 보이는 데도 있었나 보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교사들이 보기에도 어딘가 심술쟁이 같은 데가 분명히 있긴 있었다.      

 

 그 학교에 전근 와서 나는 수업을 하고 담임도 맡고 학적계 일을 하고 있었다. 학적계 일이란 학생들의 전출입을 기록하고 반 배정을 하고 결재를 받는 일이다. 남부교육청에 속한 우리 학교는 규모도 크고 전출입도 많았다.

 그날도 전입한 학생이 있어 학적 장부에 기록을 하고 결재를 받으러 교장실에 들어갔다. 교장 선생님 말씀이 내가 숫자 6을 꼬리를 너무 짧게 써서 0처럼 보인다나 뭐라나.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 

 다음날 직원 조회 시간에 교장 선생님이 이런다. 어느 선생님은 숫자를 정확하게 쓰지 않아서 6이 0처럼 보인다나 뭐라나. 내가 보기에는 별로 그렇지도 않았는데 그게 뭐 그리 심각한 문제라고 공개석상에서 저러시나 어이가 없었다. 첫 학교 교감 선생님은 내 글씨를 무척 좋아하셔서 내 글씨로 시집을 발간하면 바로 사 주시겠다 하셨는데, ‘살다 보니 별소리를 다 듣는다.’ 싶었다. 옆 자리 선생님에게 속삭였다. 

- 저거 내 얘기야. 

 옆 선생님이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 해마다 교장 선생님에게 미운털이 박히는 선생님이 하나씩 있는데, 올해는 선생님인가 보다.     

 미운털은 곧 경상북도에서 전근 오신 한문 선생님에게로 옮겨가 나는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 선생님에게 왠지 좀 미안하다. 

 예를 들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 모든 교사가 수업지도안을 작성하고 한 달에 한 번씩 결재를 받는데, 100명이 넘는 교사들의 한 달간의 수업지도안을 모두 꼼꼼히 살펴보기란 실제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교장 선생님은 무작위로 몇몇 교사의 지도안을 자세히 살펴보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저 한문 선생님의 지도안은 꼭 살펴보시고 부족한 점을 신랄하게, 모질게 지적하신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에게 부족한 점이 있기 마련이다. 어떻게 완벽하게 지도안을 작성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교육청에서 장학 지원을 나왔을 때 그 선생님은 장학사들로부터 수업을 아주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상처가 조금 아물고 마음에 좀 보상이 되었을 수 있겠다.     

 지방에서 서울로 내신을 내서 전근을 오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빈자리가 있어야 하고 조건이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렵게 서울로 입성한 그 선생님은 ‘서울에 도저히 적응이 안 된다.’ 하시며 다음 해에 다시 경상북도로 전근을 가셨다.      


 가가멜은 버섯 요정 애니메이션 「개구쟁이 스머프」에 나오는 심술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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