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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고양이 Aug 18. 2019

엄마의 ‘마’

5화

엄마가 쓴 글씨를 처음 본 건 연재가 가르친다고 나선지 얼마 안되서다. 노트에는 ‘가,나,다,라,마’가 각각 20개씩 반듯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연재는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 아는 글씨 많던데?! 가나다라는 거의 읽을 수 있더라고? 엄마 알았어?”

“그럼! 할머니가 식당서 일할라면 간판도 읽고 메뉴도 읽고 시장에서 장도 보고 길도 찾고 다 하는데 대충 읽는 건 알았겠지?!”라고 말하며 나는 ‘그러게, 엄마는 그동안 글을 모르고 어떻게 살았지?! 대충은 읽으셨겠구나’했다.

연재는 크크크 웃으며,
“근데 할머니도 “마”를 쓸 때  엄마의 ‘마’ 이렇게 쓴다? 희재랑 똑같지!?”

연재 동생 희재는 지금도 “마”를 보면 꼭 “엄마”라고 읽는다.

“그러게, 똑같다! 근데 대부분 그러지 않나? 가는 가방, 나는 나비 이런식으로?!”

“몰라. 할머니는 딴 건 안그랬어. 근데 할머니의 엄마를 난 뭐라고 불러?”

“외증조할머니”

연재는 웃으며 답한다.
“아! 들어본 것도 같은데. 이름 진짜 길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겠다는 당연한 생각을 처음 한 건 중학교때다. 1993년 그 해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 새로운 교장 선생님이 부임했다. 이 학교를 나온 대선배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그 교장은 학교에 대한 긍지가 넘쳤다. 1950~60년대 시골이었지만 우수한 여학생들만 이 학교를 나왔다고 했다. ‘그 시기에 딸들을 고등교육을 시킬 정도면 교육열이 넘치는 집안이었겠다’고, 나는 교장 훈시를 들으며 생각했다. 교장 선생님의 학교에 대한 긍지는 학교의 정원을 넓히고 운동장에 트랙을 바꾸는데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전체 학부모에 자신의 교육열을 보이고 싶어했다.
‘전체 학부모 회의’. 자모회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전체 학부모가 학교에 와야하는 모임이 있다는 건 몰랐다. 그땐 이해 못했지만, 그녀는 부모와 교사가 인사를 나누고 아이에 대해서 이해를 같이 하며 학교에서 추구하는 교육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고 싶다고 했던 것 같다. 지금이야 다들 교육의 주체는 학교만이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라고 한다지만 그때의 나에겐 무척 낯선 이야기였다.
날 좋은 가을, 새로 깔린 붉은 트랙을 돌며 나는 손에 든 갱지를 어떻게 해야하나 한참 고민했다. 학부모회 참석 확인서. 참석란과 불참란이 나란히 그려져 있었지만 우리에겐 불참란에 표시할 권리는 주어지지 않았다. 교장은 모두 참석했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담임은 100% 참석이라고 말했다.
‘보나마나 엄마는 안올텐데. 이걸 엄마한테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사실 그때 내가 고민했던 건 엄마가 안올까봐가 아니라 엄마가 올까봐서 였다는 걸 나중에 엄마가 학교에 온 후에 알았다.

“진짜 올거야?!”

“오라매?! 가야지!”

“아니, 학교 오는거 싫어 하잖어?!”
내 기억 속에 엄마는 딱 한 번, 국민학교 1학년 운동회날 학교에 왔다. 배추를 넘은 김밥을 싸와서는 나와 같이 나간 장애물 달리기에서 서로 안고 풍선을 터트려야 하는데 옷핀으로 풍선을 터트렸다. 난 우리가 반칙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안했다. 엄마와 학교는 그 기억이 전부다.

엄마는 그나마도 잊었는지,
“긍게 내가 니네 언니들부터 학교 한번 제대로 간적이 없지. 근디 니가 꼭 가야한다매? 다 오랬다매? 그냥 가서 앉아있다만 오면 된다매?!”

“응 그렇기는 한데. 알았어. 그럼 간다고 낼게.”

중간고사를 보기 얼마전 학부모 모임이 열렸고 엄마는 왔다. 그래도 딸내미 학교 온다며 엄마가 잔뜩 멋내고 왔다는 걸 멀리서도 알 수 있었다. 다른 엄마들은 잘 입지 않는 색색의 옷에 파란색 벨트에는 큼지막한 큐빅이 박혀있었다. 엄마가 춤추러 갈때 입는 그 옷.

교문에서 만난 엄마를 강당에 안내하고 교실로 돌아왔다. 끝나고 바로 가셨음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왜 인지 엄마는 담임도 만나겠다며 수업 후 강당 문 앞에 있던 날 끌고 교무실을 갔다. 교무실 몇몇 엄마들 사이에서 엄마는 순서를 기다려 상담까지 받을 모양이었지만 난 그냥 집에 간다며 먼저 나왔다.
내가 오고 나서도 한 참 후 집에 온 엄마는 화려한 옷을 벗고 다시 몸빼 바지에 큼직한 티셔츠를 입으며 나조차도 잘 모르던 내가 화난 이유들을 먼저 대줬다.

“선생님이 니 칭찬 많이 하드라. 수업도 잘듣고 대답도 잘허고 공부도 잘 한다고. 그래서 내가 그렸다. 우리 막내가 국민학교 들어가기전부터 언니들한테 글씨 배워 혼자 책도 읽고 산수도 하고 그랬다고. 내가 못 배워서 모든 걸 다 막내가 읽어주고 설명해주고 애기때부터 그랬다고. 내도 막 칭찬했지. 내가 공부를 안해서 그렇지, 울엄마도 나한테 똑똑허다고 많이 했어. 공부를 못 갈켜 그렇지 갈키면 잘 할거라고. 니가 나 닮았는갑다.”

그 칭찬이 하나도 안 고마웠다. ‘굳이 못 배우고, 글도 모른단 소릴 대체 왜 해!?’ 그 생각 뿐이었다. 엄마는 계속 날 칭찬했고 난 계속 엄마가 부끄러웠다. 엄마의 엄마가 엄마를 칭찬했다니 되게 이상했다.

“아니, 그랬으면, 할머니는 왜 엄마를 학교에 안보냈대?!”

“왜 안가?! 나도 국민학교 2학년까지 댕겼어. 그때 할아버지가 일찍 죽어서 그렸지”

궁금해서 물어본 질문이 아니라 트집잡으려고 물어본 질문이라 답을 듣는 이도 없었다.

그땐 엄마 때문에 화났다 생각했지만 내가 화난 건 나 때문이었다. 내가, 내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무척 화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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