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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고양이 Dec 28. 2020

지극히 사사로운 복수

시작하다.

내가 큰 사람이지 못하다는 걸 밤마다 누워서 깨달았다. 자다가도 이불 킥하게 되는 일들이 불쑥불쑥 떠오르면 나는 그것을 내 탓이 아니라거나 없던 셈 치자며 과감하게 떨쳐내지 못하고, 되돌릴 수도 없는 그 상황 속으로 다시 돌아가 들을 대상도 없는 말들을 계속 반복한다. 내가 조금 더 대범하게 받아들이면 좋겠지만 나는 아마도 평생을 되뇌고 또 되뇌며 오랫동안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그리게 될 거라는 걸 안다. 


밤마다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그 시뮬레이션에서 자유로워지는 법은 결국엔 말로 뱉어내는 일뿐이지 않을까? 어떻게든 그에게 해주지 못한 이야기를 입 밖으로 내는 일, 그리고 그가 틀렸음을 증명해내는 일, 지극히 사사로운 복수는 그렇게 시작한다.


소심한 복수기. 

정작 그들은 했을지도 모를 복수. 

그러나 내가 알면 됐다며 나에게 건네는 위로.  

나 자유롭자고 하는 일이지, 그를 벌주자고 하는 일은 아니니까.  


그렇게 하나씩 내 머릿속의 기억을 새롭게 하는 일을 시작한다.

그날의 일을 꺼낸다는 건, 다시 그 시간을 사는 일이다. 내 얼굴을 다시 달아오르게 만드는 화, 다시 경험하는 게 달갑지 않은 수치스러운 기억, 그에게 제대로 제때 반박해주지 못해서 속으로 삼켰던 기억들을 현재로 끄집어내어 온몸으로 다시 맞는다. 그 유쾌하지 않은 일을 굳이 다시 하는 건, 어차피 나는 그 시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잠 안 오는 숱한 밤들, 그날을 떠올릴 만한 바람과 햇빛, 그 풍경이나 비슷한 사건들을 마주칠 때마다 긴 시간을 돌고 돌아 다시 그 시간에 선다. 내가 완전히 그 기억을 잊었거나 또는 지나고 보니 아무렇지 않은, 내게 상처주지 못한 시간들로 기억하지 못한다면 온전히 다시 꺼내어 새롭게 그 시간들을 정리하고 새로운 기억으로 채색하는 게 낫지 않을까?


현재의 나는 그때의 내가 아니다. 나는 나이를 더 먹었고 더 많은 경험을 쌓았다. 더 많이 읽고 듣고 보면서 나름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생각하는 것을 모르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내 탓이 아니다. 


‘네 탓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나의 어리석음 때문이라거나 내가 생각이 짧았다거나 라는 식의 명백히 피해자인 스스로를 탓하며 넘어가는 일을 그만둬 보면 더 많이 보인다. 내 탓이 아닌 네 탓인 일들. 나의 배움이 부족했다거나, 예의가 없었다거나, 윤리적이지 못했다거나, 상대방의 입장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며 나에게만 책임을 물어온 긴 날들과 시원하게 말 한마디 못하고 당했다며 나의 대처능력을 욕해온 숱한 밤들을 뒤로 하고 이제 말해야겠다. 고상한 척, 다 잊은 척, 그 정도는 내게 전혀 상처가 되지 않은 척. 그렇게 대범하고 큰 사람인척 하는 일을 그만둬야겠다. 

“너는 예의가 없었고, 너의 배움이 부족하고, 네가 나의 입장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다.”


나와 같이 자신의 소심함을 자책하는 사람들과 그 경험을 나누는 일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과거의 나쁜 경험들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사람이, 어느 날 문득 그때로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꼭 작심해온 말을 해주리라 벼르는 사람이, 세상에 나뿐 일리 없으니까. 나에게 상처가 됐던 그 경험들은 별일이 아닐 수도 있고, 큰 일일 수도 있다. 그때는 작은 부끄러움이나 수치 정도로 넘겼던 일들이 다시 생각해보니, 지금의 사회문화에서는 큰 일이 되는 일들이 많았다. 엄청 화났던 일이었지만, 돌아보니 작은 일일 수도 있다. 자다가 불쑥 이불 킥을 하게 되더라도, 제대로 계산기를 돌려서 제대로 이불 킥을 하는 게 맞다. 


그때 못한 말을 지금이라도 나 혼자라도 떠들어대면서 그렇게라도 입 밖에 끄집어내보기. 

입에서 나온 말들이 공기 중에 파동을 만들어내어 존재를 증명하기.

그 말들이 바람을 타고 돌고 돌아 어느 날엔가는 그의 귀에도 앉기를 바라기.

그 말이 귓등을 타고 흘러가버리거나 귓가에서만 멈출 뿐이래도 그렇게라도 그에게 가닿기를.

결국엔 누군가는 스스로도 모르게 일으키는, 또는 알면서도 반성하지 않을, 타인에게 낸 생채기에 대해서 한번쯤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들을 만들어내길, 불가능한 꿈일지라도 그렇기를 바란다.


이 글은 입 안에서만 맴돌던 그 말들, 머리로만 그려지던 그날의 그 경험, 내가 반박하지 못한 말들, 반박해주려고 벼르고 벼른 말들을 한 번쯤은 밖으로 나오게 풀어놓은 나만의 야수가 뛰어 다니는 초원이다. 


하지만 괜찮아. 

나의 야수는 아무도 해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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