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칠한 고양이 Jan 04. 2021

ep1. 작고 나약한 것에만 쏟아내던
부족한 당신에게

#1. 시작은 미약했던 나의 대응력이 싹트던 시기

그 해는 완벽했다. 

나는 드디어 ‘시민’이 되었으며, 여름에만 사먹을 수 있던 아이스크림을 겨울에도 먹을 수 있게 된 파격적인 해였다. 김제군 봉남면 월성리에 살던 나는 1989년 새 해를 맞으면서 김제시 봉황동이라는 새 주소를 갖고 ‘군민’이 아니라 ‘시민’이 되었다. 봄에는 김제시 편입에 따른 어린이 백일장 대회가 열렸고 읍내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초입에는 그동안 우리 마을에는 없었던 화강석을 두른 2층짜리 봉황동 동사무소라는 그럴 듯한 건물이 생겼다. 시민이 된다는 건 축하할 일이며, 최신의 무언가였다. 


봉황동이 되면서 학교 앞 점방에서는 드디어 겨울에도 아이스크림을 팔게 되었다. 관계가 있든 없든, 이 모든 건 리에서 벗어나 동이 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은혜 같았다. 동네에는 마을 입구와 학교 앞에 문구점과 슈퍼마켓을 합쳐놓은 점방이 두 군데 있었고 두 곳 다 빙그레가 크게 그려진 아이스크림 냉동고가 있었지만, 여름에만 아이스크림을 팔았다. 


그런데 그 해! 시민이 되는 걸 축하라도 하듯 여름이 끝나도 아이스크림 판매는 계속 됐다. 동네 친구들은 그러려니 하는 것 같았지만, 겨울에 파는 아이스크림은 내게는 엘리베이터와 같은 거였다. 도시의 상징, 도시의 아이만이 누릴 수 있는 것. 방학에 가끔 서울을 가던 나는 서울에 가야만 겨울에도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었다.

“서울에 가서 하드도 맨날 먹었다!” 나는 의기양양 하게 서울에서 먹은 것들을 친구들에게 자랑하듯 나열 했고 아이들은 으레 그렇듯 그것보단 오징어게임에서 누가 누구 옷을 잡아당겼는지 누가 누굴 놀렸는지에만 관심이 있었다.


사실 방학 서울 나들이는 친구들하고 노는 것보다 훨씬 재미없었다. 당시에 언니는 부엌과 세면대가 달린 좁은 방 한 칸짜리 집에 살았다. 나는 그로부터 20년쯤 지나서야 그런 집을 ‘벌집’이라고 부른다는 걸, 시골에서 올라온 여공이나 어려운 노동자들이 살았던 가난의 상징 같은 공간이란 걸 알았다. 벌집처럼 많은 방으로 나뉘어져 젊은 노동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그 집을 떠올리면, 수돗물에서 나던 진한 소독 냄새가 먼저 떠오른다. 수돗물의 진한 소독 냄새는 방으로 들어와 내 머릴 어지럽혔다. 나는 일하러 간 언니 없는 그 좁은 방에 혼자 갇혀서 딱히 하는 일 없이 방바닥에 누워 라디오를 듣거나 TV를 보고 서랍을 뒤져 온갖 희귀한 것들을 찾아내어 놀았다. 퇴근해 돌아온 언니가 딱히 나랑 놀아주는 것도 아니었으니 유배와 다름없던 서울 나들이였으나 서울이기에 좋았다. 벌집이라고 불리는 그 집도 내게는 서울의 최신식 건물이었다. 파란 대문을 들어가면 길다란 진입로에 꽃이나 나무가 있었고, 건물의 계단 있는 2층 건물이었으며 공용이지만 양변기를 썼다.


나는 언니가 사준, 까만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핑크색 투피스를 입고 그 건물의 파란 지붕 앞에서, 야트막한 계단 위에서 마치 서울아이처럼 다리를 꼬고 앉아 사진을 찍었다. 

생각해보건대 서울이 좋았다기 보다는 방학 때마다 갈 곳이 있다는 것, 그곳이 사람 많고 새 것 많은 서울이라는 것, 날 챙겨주는 형제가 많다는 것 그냥 그게 좋았던 것 같다. 


“방학하면 뭐해?” 라는 친구 물음에 “응, 서울갈거야.” 라고 답할 수 있다는 것, “서울에서 뭐했어?” 라고 묻는 친구에게 “하드도 먹고 피자랑 치킨도 먹었어.”라고 답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좋았다. 


그런데 우리 동네에서도 한 겨울에 아이스크림을 사먹을 수 있다니! 나는 눈 내리는 추운 날, 소매를 당겨 손을 감아가며 입 안이 온통 파랗도록 죠스바를 먹었다. 맛도 있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그 행위였다. 한겨울 아이스크림이나 방학동안의 서울나들이 모두 그 행위가 내포하고 있는 그 상징이 더 중요했다. 



'와~ 있어 보인다!’ 

나는 정말로 그렇게 오랫동안 믿었다. 

있어 보인다는 건 없다는 것의 다른 말이다. 있어 보인다는 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며,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것은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전적으로 나는 그랬다. 있어 보인다는 게 얼마나 슬픈 말인지, 그게 얼마나 스스로에게 건네는 처참한 위로였는지 굳이 있어 보이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야 알았지만, 그때는 그게 중요했다.


그 시골에 고만고만한 형편 속에서 자라온 나는 왜 굳이 있어 보이고 싶어 했을까? 천성일지도 모르겠고, 많은 나이 차이로 이미 서울에서 사는 형제들 틈에서 들어온 이야기가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아주 어려서부터 ‘부재한 아이’라며 받았던 따뜻한 보살핌 때문에 결국은 온몸으로 체득하고만 절대적 부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있어 보이고 싶다고 해서 다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걸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알았다. 예를 들어 아빠처럼. 예를 들어 엄마처럼. 아빠는 진짜 없었고, 엄마는 늘 없었다. 


어떤 이유에서건 나는 남들은 신경도 안 썼을, 오로지 내 눈에만 보였을 다양한 부재들을 채우기 위해 있어 보이고 싶어 했다.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는 공부를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더 중요했고, 잘 어울려 노는 일보다는 심심해보이지 않는 것에 더 신경 썼다. 


'놀긴 하겠지만, 난 뭐 니들 없어도 괜찮아.'


그런데 1년에 한 번쯤은 꼭 엄마가 학교에 와야 하는 일이 있었고, 1년에 한 번쯤은 꼭 집에 있는 자동차와 전자제품 등을 조사하는 일이 있었으며, 1년에 한 번쯤은 꼭 화분이며 시계를 학교에 가져와야 하는 일이 있었다. 그럴 때 나는 없는 것 투성이라는 걸 들키고 말았다. 같이 소풍을 가서 김밥을 나눠 먹어줄 엄마가 없었고, 선생님의 질문마다 없다고 손을 들어야 했으며, 화분이며 시계를 가져오지 못했다. 


우리 엄마는 늘 일을 했다. 나이 마흔셋에 혼자돼 많은 자식을 키웠던 엄마는 때론 일주일에 한번 집에 왔다. 그런 그녀는 나와 소풍을 가지 못했다. 운동회 날 함께 달리기를 하고 풍선을 터트려줄 엄마가 없을 때도 있었으며 선생님과 나의 성적에 대해서, 학교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 나눌 엄마가 없을 때도 많았다. 내 기억에 엄마는 초등학교 시절 내내 단 한 번 운동회에 와서 배추무침이 들어간 김밥을 싸와서 나와 경주를 함께 했던 게 전부였다.


우리 집엔 없는 것도 많았다. 선생님은 1년에 한 번씩 꼭 이런 종류의 질문들을 했다. "자동차 있는 사람 손들어봐", "전자렌지 있는 사람 손 들어봐", "TV있는 사람 손 들어봐". 그러다가 손 든 사람이 많으면 이렇게 질문이 바뀐다. "없는 사람 손 들어봐". 왜 없으면 사주려고?! 그런 것도 아니면서 대체 왜 이런 조사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그다지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손은 들거나 내려야 했다. 나는 무척 부끄럽다고 느꼈다.


그런데 그 해 부임해와서 나의 담임이 된 A선생님은 나보다 더 있어 보이는 게 중요한 사람이었다. 

늘 자신과 자녀들을 자랑했다. 우리와 동갑내기라는 딸이 똑똑하다고 자랑했고, 자기가 사는 동네가 우리보다 크다고 자랑했는데 아파트 경험이 없던 우리가 선생님의 아파트 평수와 브랜드, 위치해있다는 전주의 동과 구체적인 지리까지를 알 정도였으니 꽤나 꼼꼼하게 자랑한 모양이다. 지금이라면 ‘아, 저 분도 나처럼 없는 것에 시달려본 적이 있구나.’ 하는 동질감을 가질 수도 있었겠지만, 그때는 내가, 우리가 없다고 놀리는 기분이라 싫었다. 초등학교 4학년 나의 감정은 그렇게 단순했다. 


그가 자주하던 말에는 이런 게 있었다. 


“이 시험지 우리 딸 다니는 전주 학교에 가져가면, 꼴등도 다 푸는 문제다.”, “집안이 어려울수록 공부를 잘해야 한다.”, “말을 잘 들어 착하다”, 어른들한테 어디서 버르장머리 없이 말대꾸를….” 뭐 이런 류. 


단순한 감정의 소유자들인 초등학교 4학년 우리들은, 쉬는 시간에 얼굴이 빨개지도록 운동장을 뛰어놀며, “그 꼴등보고 한번 풀어보라지.”라거나 “그럼 잘살면 공부 못해도 되겠네?!”라거나 등의 말을 하면서 흘려보냈다.


그런 그와 나의 전투는 새 학기가 된지 얼마 안 되서 벌어졌다.  

.

.

.

.



- To be Continue -

매거진의 이전글 지극히 사사로운 복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