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을 타고 중세시대의 맛 속으로
긴 시간 크루즈를 타고 도착한 에스토니아 탈린의 아침. 여기가 그 옛날 수업 시간에 졸면서 듣던 발트 3국 중의 하나란 말이지? EU 국가 중에서 가장 낙후됐었지만 IT기술을 빠르게 발전시켜 지금은 ‘북유럽의 실리콘 벨리’라 불리는 디지털 강국이 된 에스토니아 탈린. 심사숙고하라는 의미로 결혼, 이혼, 부동산 거래만 빼곤 거의 모든 일들이 인터넷으로 빠르게 돌아간다는 나라. 그런데 웬 걸? 탈린의 첫인상은 그런 첨단의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고깔 모양 지붕을 얹은 고풍스러운 성들이 마을을 이루고 자동차 대신 마차가 지나가야 어울릴 듯한 거리. 오랜 세월을 머금은 올드타운의 색감은 마치 중세 시대 영화 속 세트장에 들어와 있는 착각까지 들게 한다.
붉은 지붕들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올라 경치에 빠져 있는데 정오를 알리는 여러 개의 종소리가 하모니가 되어 탈린의 하늘에 울려 퍼진다. 점심을 놓칠 수 없는 한낮의 신데렐라는 가파른 계단을 타고 내려와 잰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한다. 이내 복고풍의 묵직한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서자 느닷없이 시간이 거꾸로 흐르기 시작한다.
하얀 셔츠에 조끼를 입은 청년이 정중하게 한 팔로 원을 그리며 허리를 숙여 나를 맞이한다. 그의 첫인사는 말투마저 생소한 중세시대 언어다. 정말 영화 속으로 들어온 건가? 어리둥절한 틈에 그 시대 옷을 입은 한 여인이 방긋 웃으며 노란 샤프란 크림 케이크와 맥주가 담긴 투박한 토기를 내 앞에 내놓는다. 옛날에는 샤프란을 귀한 손님에게만 대접했다지? 곧이어 나를 맞이했던 청년이 배우 같은 몸짓으로 멋진 축배사를 외치고 나도 따라 건배를 했다. 허니 비어를 시원하게 들이켜고 실크처럼 부드러운 샤프란 크림 케이크를 한입 베어 무니 나도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의 여인이 된다.
전통과 첨단의 현재가 함께 공존하는 두 얼굴의 도시. 그들의 발전은 옛 문화를 이어가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 유연한 사고 덕분이지 않을까? 나는 중세의 탈린으로 돌아가 말해주고 싶다. 당신들의 수려한 과거를 지키며 후손들은 이렇게 놀라운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