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방울방울
빨간 이층 버스가 심볼처럼 시내를 오가는 런던은 공기마저 왠지 흐린 하늘 아래 묵직하게 흐를 것이라 짐작했다.
거의 1년 내내 흐린 날씨가 수많은 철학자를 탄생시켰다고 하니...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여행 동안 어찌나 쨍한지 이 좋은 날씨를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부모라는 보호자의 개념을 넘어 여행 동반자인 친구 같은 느낌이랄까.
동시에, 새로운 것들을 더 많이 보여 주고 싶은 마음으로 이래저래 넘치는 여행 계획을 잡게 되기도 한다.
꽉 짜여진 여행으로 인한 피로감이 슬슬 몰려들 무렵. 느지막이 일어나 출출해진 우리는 초밥을 잔뜩 사들고 공원 산책을 나섰다.
대여 자전거를 빌려 켄싱턴 가든 안으로 들어서니 초록의 싱그러움이 코끝을 스친다.
어느 새 여유롭게 느려진 페달속도를 따라 한가로운 잔디밭과 잔잔한 호수가 눈 앞에 펼쳐진다.
영국 왕족들의 역사가 흐르는 켄싱턴 궁의 정원인 이 곳.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를 깔고 초밥 도시락을 펼쳤다. 알록달록한 각종 초밥이 식욕을 돋운다.
아들 녀석은 폭풍 먹방의 진수를 선보이며 배를 두드렸고,
이내 속까지 든든해진 우리는 호수에 떠가는 백조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나무 그늘에 누워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하늘에 떠가는 구름에 이름도 붙이며 뒹굴댔다.
아이와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며 하루 종일 할일 없이 보낸 피크닉은 런던의 애프터눈 티처럼 한없이 잔잔했다.
어느 곳을 꼭 가야한다는 뚜렷한 목적 없이 시간도 마음도 그냥 제멋대로 흘러가게 내버려두니 오히려 아까 나눠먹은 초밥만큼이나 여행의 포만감이 가득 했다.
굳이 명소 앞에서 사진으로 남기지 않아도 마음에 박제 되는 사진으로 특별하게 남은 우리의 하루.
좋은 여행 친구이자 내 편이 함께 한다는 안도감이 주는 평화가 느리게 흐르는 런던의 풍경 속에서 이심전심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