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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결혼생활

Mr. Why-Is-This-So-Hard의 어메이징 한 충성심.

by Olive in New Zealand

결혼 전부터 나는 당시 남자친구의 유별난 "loyalty"로 남자친구를 내 사람으로 만들지 못한 채 오랜 기간을 함께 했다. '독식'하고 싶은 내 마음을 무시한 채 주변의 노인들은 그를 사랑했다.


첫 번째 론, 그의 조부모님. 그는 조부모님과 20대 30대를 함께 살았다. 보통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집을 나가기 일쑤인 보통내기들과 비교하면 평범한 상황은 아닌 거다. 부모님 집도 아니고 조부모님 집에서 말이다. 그들이 나이가 들어 증손자를 보는 시기에도 남자친구는 거기에 있었다. 나도 얼마간 그들과 함께 지냈고, 어느덧 거진 10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일과 코로나 때문에 잠시 몇 년 떨어져 있었긴 했지만 꽤나 긴 시간이었다)


결혼해서는 우리만의 공간을 갖고 왕래하고 보살펴 드리면 좋겠다는 내 바람도 무색히 나는 그 집에 다시 들어갔다. 더욱 연로해지신 조부모님을 대신해 남편은 저녁상을 내어드리고, 얼마 전에 당신의 몸도 가눌 길이 없어하셔서 할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셨다. 그 길을 매일 동행하는 남편. 나는 설거지를 하고 일주일에 한 번 대 청소를 하고 남편의 출장이나 미팅 시에 그를 대신해 저녁상을 봐드린다.


조용조용 그렇게 잘 살아가다가도 가끔씩 신세한탄이 생겨났다. 내 나이 마흔 들어서 내 공간 없이 지낸다는 게 너무 힘들었다. 할머니는 물건을 쌓아놓고 사시는 분인 지라 내 물건은 자리할 수 없었고, 나의 된장. 고추장. 진간장. 맛술등은 '이상한 물건'이라며 자신의 부엌에 있는 걸 싫어하셨다.


나만의 공간에 나만의 색채를 내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진 거다. 어릴 적엔 이런 삶을 생각해 보지 않았기에 더욱 그랬고, 조부모님의 자녀들이 있는데 굳이 왜 네가 모든 걸 떠안아야 하느냐고 감정을 분출했다. 간혹 무관심한 그들의 입양딸에 불만이 생기면 '누군가가 팔을 걷어붙이고 있는데 굳이 거기에 끼어들어 내가 하겠다고 나서진 않는다'라고 너의 유별난 로열티를 불만 섞인 목소리로 상기시켰다.


나도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 부모님을 놔두고 내 삶을 위해 왔는데, 그렇게들 다 자기 삶을 살아가면서 돌봐 드리는 거라고 아무리 말해도 그는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다고, 할 수 있는 동안 해드리고 싶다'는 효자로 돌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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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서양인과 결혼했는데, 백인 남자를 만나면서 효자를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효자손으로 실컷 두들겨 패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오면서 가정폭력이 일어나는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 조부모님하고 평생 살지 왜 결혼했어? 한 명이라도 조부모님하고 사는 사람 이름 대봐. 그럼 이해해 줄게"


동사무소에 가야만 알 수 있는 목록엔 그가 있었다. 나는 매서운 눈초리로 그렇게 생채기를 남긴다. 무수히 그에게 기회를 줬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정중히 나에게 거절 의사를 표시해야 했다.


"조부모님이 연세가 들어가면서 도움이 필요해지니, 그들이 내 도움이 필요할 때까지 옆에서 도와드리고 싶어. 그러니 넌 니 갈길 가라."


잠깐은 많이 슬펐겠지만,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시간을 함께 할 거라 하니, 난 어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근데 이 넘은 말을 안 했다. 확~! 입을 찢어버릴라. (우리는 답답한 커플이었다. 아니, 어쩜 나는 답답한 인간일지도 모른다. 나는 답답한 연애를 많이 했다. 그래서 가끔 내 삶이 싫었다. 엄청난 인내를 필요로 했기에)


내 이상향은 같은 계획과 같은 소망을 가지고 희망차게 헤쳐나가는 건데 그의 계획과 내가 원하는 것엔 괴리가 있었다. 결혼을 결정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너 나랑 결혼할 거야? 그게 아니라면 (조부모님 돌봐 드리는 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내 시간을 낭비할 수 없어. 나도 내 인생의 시간을 어찌할 수가 없거든. 너도 내 시간 낭비 말고 그럴 계획이면 그냥 혼자 지내는 게 맞을 수 있어." 여기에도 대답을 안 하더니, 내가 다시 "너 나랑 결혼할 거야?! (시바)" 거기에 맞춰 기다렸다가 겨우 한마디 했다. "응."


나는 왜 사람들이 욕을 하는지 가끔 이해가 간다. 그 사람에 대한 모독이라기보다, 뭔가 마음에 안 찰 때, 뭔가 마음에서 통쾌함이 벗어날 때. 내 영혼이 춤 못 추게 잡아 꽁꽁 싸메는 느낌이 들 때 그렇다. Mr. Why-Is-This-So-Hard 님께서 이해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남편의 미국에서 온 사장님은 그를 '아들!'이라 부르며 챙겨주신다. 그의 로열티를 알아보시고 그의 끝을 맡기시려는 느낌이 그 한 단어에 녹아있다는 걸 느꼈다.

성경에 보면 부모를 공경한 자가 장수한다는데 그럼 나도 사장님 다음에 줄 서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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