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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좀 부탁해

엄마의 마음은 이렇지 않았을까...

by Olive in New Zealand

혜연아, 혜연이 태어나서 키울 때, 귀엽고 말도 특이하게 해서 엄마를 많이 웃겼는데 말이야.

말도 글도 빨리 떼서 엄만, 혜연이가 많이 똑똑할 줄 알았어. 엄마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너 어릴 때 자라는 과정을 더 가까이서 보고 싶었는데, 아빠가 혼자서 벌어 오는 걸로 생활하는 게 너무 버겁다고 엄마를 많이 다그쳤어. 아빠 혼자서 감당이 안 되는 집안 형편에 너무 일찍 너희를 두고 일을 나갔지. 간식을 준비해 놓고, 엄마는 문을 밖에서 잠근채 너희들이 혹시 누군가에게 해를 당할까, 나의 소중한 아이들이 강도를 당할까 봐 문을 잠그고 발을 박스에 딛고 창문으로 드나들도록 했지. 엄마가 올 때까지 갇혀 지냈던 너희들을 지금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가난이 그렇게 무서운 거야. 엄마의 미련스러운 모습도 어찌할 수가 없었으니까. 할머니 댁에 몇 번 맡겨봤지만 매번 맡길 수가 없었어. 작은 아버지랑 작은 엄마가 많이 부담스러워했거든. 그렇게 너희를 방치했었지. 일 끝나고 오면 자고 있는 너희들을 볼 수 있었고, 겨우 집안일을 정리하고 아빠 오시면 저녁 먹이고 잠들었구나. 어떻게 살아냈는지 모를 그런 시간들이었다.


나의 엄마도 치매가 있었는데, 그때 외숙모가 할머니 모시기 싫다고 하며 우리 가족이 분쟁이 났었어. 그때 나는 엄마의 편이 되어주지 못한 채 같이 노망이 났나 보다고 엄마를 밀어냈어. 근데 지금 내가 그런 모습을 하고 있네. 엄마를 조금 더 보듬어 주지 못한 게 너무 미안하다. 나는 왜 그렇게 밖에 하지 못한 걸까. 나는 출가외인이라는 말로 모든 책임을 무시하고 떠넘기기에 바빠했었지. 그게 말이 되기나 했었나 말이야..


혜연아, 엄마가 했던 말 기억나? 아빠처럼 아파서 가족들 다 등골 빼먹을 빠엔 엄마는 사라져 버리겠다고 한말. 나 그거 진심이었어. 너희들 끝까지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거든. 그리고 아빠처럼 그렇게 아플 거라고 생각도 못했지 사실. 어쩜 그런 삶이 현실이 되리라 생각지 못해서 한 말이었을지도 몰라. 그런데 이렇게 정신이 아파버려서, 내가 마음이 너무 안 좋아.. 삶이란 게 내 맘대로 되지 않는구나. 목숨이란 게 그렇게 누군가에겐 갑작스러운 사고처럼 다가오지만 또 그렇게 질기게 세상에 하지 못한 작별인사를 천천히 하라는구나. 가끔은 이게 더 고통스러워. 그동안의 내 부족한 모습앞에 발가벗겨져 사죄를 해야하잖아. 엄마가 많이 부족했지만, 천천히 너에게도 인사를 할게. 아직 하지 못한 말이 많아서 시간을 주신 거라 생각해.


혜연아, 엄마가 언니보다 너를 키우는 게 많이 힘들었어. 그래서 너에게 더 잔소리도 많이 하고 날 선 말들도 많이 해서 상처가 되었겠지. 다 너 잘 되라고 한 말이었는데 내 바람대로 되기보다 넌 아주 멀리 날아갔네. 엄마한테서 가장 갈 수 있는 먼 곳으로 가서 살고 있구나..

엄마가 많이 못 배워서 그렇게 밖에 닿을 수 없었던 말들에 미안해. 엄마도 엄마의 엄마한테 받아본 사랑이 적어서 엄마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잘 몰랐거든. 할머니도 많이 거칠었어. 엄마를 보듬어 준 적이 별로 없었어. 맨날 혼나고 혼나고 혼나고 했지. 보듬어줬었어도 혼난 것만 기억나네.. 너도 그럴까.

너와의 추억이 많이 없네. 그래도 엄마 나름 노력했었는데. 너 수능 끝나고 엄마랑 완도 갔던 거 기억나? 너 데리고 공기 좋은 완도로 여행 갔던 거, 넌 말이 없었지. 공기 좋다는 말만 했지. 비염이 사라졌다며.


여행하니까 갑자기 생각났는데, 엄마가 너 고등학교 때, 일본여행 갔을 때, 너한테 기쁘게 전화했는데 네가 전화세 많이 나오게 왜 전화를 했냐며 호통을 쳤어. 그때 기분 정말 서글펐어. 엄마가 해외에서 전화를 하는데 전화세 많이 나온다고 끊으라고 해서 엄마 정말 화나서 너한테 화내고 나서 전화 끊고 많이 울었어. 왜 그렇게 정이 없고 마음이 강퍅한 지 말이야… 내가 내는 건데…. 너한테 내라고 하지 않는데.. 지금도 그 생각하면 섭섭해.


혜연아, 엄마가 너 많이 답답하게 해도 조금만 이해해 줘. 엄마 아파서 그래.

남은 시간 잘 지내보자.. 보고싶어.


17/11/2025

사랑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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