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고 허니문으로 아이가 생겼고, 임신 중 우여곡절이 많아서 출산전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출산을 하고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육아의 공백을 메꾸어줄 대안이 없었다. 어린이집을 하루 종일 보낼 수도 있었지만, 내 커리어 때문에 말 못 하는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는 것은 도저히 내키지 않았다. 그렇게 내게서 직장은 멀어져 가 버렸다. 아들 둘을 키우면서 살림이 즐겁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대학원까지 공부하며 도서관에 바친 내 청춘이 날아가는 것 같아서 끊임없이 미련이 남았다. 또한 집에서 아이만 보고 있자니 나 스스로가 무언가 쓸모 있는 일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힘들었다. 누군가가 보기엔 아이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하겠지만, 난 육아에 큰 의미를 느끼는 그런 엄마, 아니 그런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세월이 자꾸 흘렀고, 경력 단절의 기간이 길어지면서 마음속에서 또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거기엔 남편이 가져다준 경제적인 안정감이 한 몫하긴 했다.
'어차피 경력 단절의 기간이 길어진다면 다시 원래의 직장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 도 있어. 그렇다면 일을 할 수 있을 시기가 왔을 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 '
어차피 한 번밖에 살지 못하고, 내 아이들처럼 내게도 선물처럼 주어진 귀한 삶 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자라는 동안 사춘기도 없었고, 진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없었다. 엄마가 선생님이 좋다고 하니 선생님을 꿈꾸었고, 비록 임용 고시엔 떨어졌지만, 교사를 꿈꾸며 고시공부에 대학원에 내 청춘을 바치며 열심히 살았었다.
그 모든 것이 출산과 육아로 날아가 버렸으니, 이젠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고민하며 나란 사람을, 내 꿈을 리셋해야겠다 싶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설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결혼하기 전부터 항상 여행을 가면 예쁜 그릇을 사서 모았고, 마트를 가도 그릇 코너에서 한참을 서서 서성였다. 인터넷 검색도 주로 예쁜 그릇을 찾아보았고,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은 사서 모았다. 결혼 전엔 그 그릇들을 쓸 일이 없어서 박스에 담아서 침대 밑에 넣어두고 엄마 몰래 꺼내보곤 하였고, 결혼을 한 후엔 그릇장에 넣어두고 남편 밥을 차려 줄 때나 손님이 집을 방문할 때, 때론 나를 위해서 열심히 사용을 하였다.
'그래, 이거야'
그릇을 팔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예쁜 그릇을 매일 보고 만지고 살면 너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예쁜 그릇을 팔아야겠다는 생각은 점점 확장되어서 잡화점이 되고, 요리를 좋아하니 잡화점을 겸한 카페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확장되었다.
당장 아이들이 어려서 가게를 차릴 순 없지만 언제가 올 기회를 생각하며 일단 노트를 한 권 사서 관련된 정보를 스크랩을 했다. 그리고 가게의 이름은 무엇으로 할 건지 가게의 내부 구조는 어떻게 할지 등등 생각나는 모든 것들을 기록을 했다.
육아가 힘들 때마다 노트를 꺼내 들고 펼쳐보면 심장이 쿵쾅거리며 설레기 시작했다.
아직 현실에서 펼치진 못했지만, 여전히 보물처럼 들고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땐 펼쳐서 기록한다.
아이들이 조금만 더 커서 엄마의 손길이 덜 필요해지는 순간이 온다면, 그땐 노트 속 기록들을 현실의 공간으로 펼쳐볼 거라 오늘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