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사둔 단호박이 자꾸 눈에 거슬렸다. 분명 살 때만 해도 잘 요리해서 먹을 생각이었는데,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엄마가 만들어 주던 단호박 식혜가 생각이 났다. 식혜를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은 없지만, 눈에 보이는 저 단호박으로 꼭 식혜를 한번 만들어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니, 첫마디가 "아주 쉬워"였다. 엄마는 음식 하는 방법을 물어볼 때마다 항상 같은 말을 하신다.
"그거 쉽다"
계량의 개념을 모르는 엄마는 대충대충 설명을 해주고 간혹 중간 과정을 하나씩 빼먹으셔서 엄마가 시키는 대로 음식을 만들 때마다 예전에 먹어보던 맛이 안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식혜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꼼꼼히 물어보았고 대충 이랬다.
우선 엿기름을 씻어서 그 물을 모은다. 엿기름 씻은 물은 불순물을 가라 앉히고 맑은 물을 전기밥솥에 넣는다. 거기다 밥을 넣고 3시간 정도 보온 상태로 둔다. 밥알이 떠오르면 다된 거니 솥으로 옮겨서 끓이면 된다. 설탕과 익힌 단호박은 보온할 때 같이 넣어도 되고, 끓일 때 넣어도 된다.
대충 알려준 이 레시피대로 그냥 막무가내로 만들었다. 엿기름을 씻고, 그 물을 밥솥에 넣었다. 우리 집 밥은 잡곡 등등 섞인 게 많아서 햇반 하나를 넣었다. 그렇게 보온을 누르고, 그 사이에 단호박을 쪘다. 찐 단호박은 껍질을 까서 믹서기에 곱게 갈았다. 보온 3시간째에 큰 솥에 갈아놓은 단호박과 엿기름 물을 다 넣고 설탕으로 단 맛을 낸 후 끓였다. 보글보글 끓은 후에도 조금 더 끓인 후 불을 끄고 식혀서 통에 담았다.
보온이 되었을 때만 해도 엿기름 냄새가 났었는데, 끓이고 나니 냄새가 나지 않았다.
엄마 말이 맞았다. 계량하지도 않았고, 대충대충 했는데도 완성해 놓고 보니 너무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