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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레비엔 Feb 22. 2024

부티크 호스텔 페페

푸에블라

여행 일주일째, 설렘보다는 피로에 찌들어있었다. 처음 도착한 도시에서 다시 먹고 사는 방법을 처음 부터 다시 배우느라 먹는 것, 사람 만나는 것, 유명관광지를 찾는 것 모두 짜증스러웠다.      

멕시코 시티라는 거대한 도시에서는 더욱 그랬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오로지 혼자 있는 것은 자유롭다기 보다 어색했다.      

가늘게 이어진 인터넷 신호에 의지해, 아직 내가 알고 있는 것, 아직 내가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의지 하고 싶었다. 누가 알려주는 대로, 정해주는 대로 살고 싶었다.      


푸에블라 부티크 호스텔 페페

두려움에 휩싸인채로 가장 쉬운 방법으로 도망쳤다. 대도시를 떠나서 작고 조용한 곳으로 탈출해야겠다는 생각에, 멕시코시티의 수많은 볼거리들을 내팽게치고 인근의 작은 푸에블라라는 도시로 이동했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갖춰진 체인 호스텔에서 정해준대로 살기로 했다. 지난 내 삶이 겨우 모아온 노동과 바꿔서, 조금 비싼 금액을 지불하면 오늘 일정과 식사와 친구까지도 만들어 주는 곳으로 갔다.


멕시코시티에서 두시간을 달려서 푸에블라시에 위치한 호스텔 페페에 도착했다. 그곳은 세상 어디에서도 익숙한 시스템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친절하게 체크인을 도와주고, 내가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을 설명해주고, 숙소의 규칙을 알려줬다. 마치 맥도날드에 간것 처럼 모든 것이 익숙해보였다. 

그곳에는 순응하는 여행자들로 가득차 있었다. 비교적 쾌적한 침대에서, 정해진 시스템 안에 있기만하면, 굳이 새로운 세상안에 들어가지 않고도, 살아온 방식대로 다른 세상을 잠시들여다 볼 수 있었다. 짧은 여행이라면 매우 합리적인 방법이었다.      

호스텔 페페는 이 도시의 가장 중심가에 있으면서, 여행자들에게 매우 인기 있는 숙소다. 시설도 한국에 비견될정도로 깔끔했고,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는 직원들도 매우 친절했다. 매일 시작되는 각기 다른 투어 프로그램도 있었고, 아침도 제공되었다. 심지어 매일 오후 해피 아워가 있어서, 돈만 내면, 파티도, 친구도 만들어 주는 편리한 곳이었다. 비용만 지불하면 여행 계획따위는 필요 없었다. 


정작 다 정해주는 곳에 도착했지만, 나를 그곳에 맞출 수는 없었다.  적당히 비싼 투어에도 참여하지 않았고, 늦게까지 소박한 파티를 즐기는 무리에도 끼지 않았다. 어린 친구들에 비해서 쓸데없이 일찍 자고, 쓸데없이 일찍 일어나 부스럭 거렸다. 여행자들 사이에서도 이방인이었다.  쾌적하기는 하지만, 꽉찬 6인실 도미토리에서 여전히 어색하고 불편한 것은 달라진점이 없었다.      

호스텔이 제공하는 시스템안에서 스쳐가는 여행자는 체크아웃이 끝나면 교체해야하는 시트 같은 것 이었고, 침대 한칸일 뿐이었다. 아직 알 수 없는 이 도시에서 게스트가 되어, 돈으로 익숙함과 편안함을 사고 싶었는지 모른다. 정해진 투어에 참가한다고 마음이 편하고 익숙할 수는 없다. 


낯선 세상에서 익숙함을 찾는 것은 바보같은 일이었다. 낯선것을 어색하게 받아들이기로 그제야 인정할 수 있었다. 여행자들 무리에 껴 있다고 해서, 정해주는 대로 순응하면서 산다고 해서, 갑자기 세상이 친절해 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동안 모든 것을 다 제공하는 괜찮은 호스텔에 머물겠다는 계획을 바꿔서, 근처에서 가장 간단한 것들만 제공하는 가장 저렴한 호스텔의 침대 하나를 빌렸다. 위치부터 중심에서 조금 밀려나있고, 따뜻한 샤워가 간헐적으로 끊길지도 모르지만, 아무도 이 도시에서 어떻게 살아가라고 말해주지 않는다면, 지친 여행자에게 필요한 것은 몸을 뉘일 침대면 족했다.

다시 한번 시스템에서 도망쳐서, 새로운 숙소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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