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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레비엔 Mar 14. 2024

[호스텔 탈라베라] 회색 눈의 겁쟁이 쥬스틴

이 동네는 안전한가요?

한동안 혼자 쓰던 도미토리에 프랑스인 쥬스틴이 왔다.  나는 유독 프랑스 사람들의 영어 발음이 알아듣기 어려워서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데도, 자꾸만 프랑스 사람들을 만난다.  회색눈동자에 바짝 올라간 속눈썹, 유태인처럼 보이는 곱슬머리를 지닌 그녀는 대단한 미녀는 아니었지만, 드물정도로 선명한 회색눈동자가 예뻐서 저절로 시선이 가는 사람이었다. 오랜만의 룸메이트가 생겼다.

고작 일주일 전에 멕시코에 도착한 쥬스틴은 처음 보자마자 이 동네가 걸어 다녀도 안전하냐 물어왔다. 나는 어떻게 여행자가 안전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구분할 수 있느냐면서,  길을 가다가 너무 사람이 없거나, 너무 더러운 동네를 보면 빨리 빠져나온다고, 대답했다. 그렇지만 이 근처는 너무 늦은 시간만 아니라면 괜찮다고 안심시켜 주었다.  


멕시코 여행은 안전할까?

치안 상태가 불안하기로 유명한 멕시코의 치안은 여행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특히 혼자 여행하는 여성 여행자라면, 인사를 건낸다음에 가장 먼저 치안에 대해서 물었다. 나도, 주스틴도, 이후에 도착한 여행자들도 그랬다. 생각해 보니 치안에 대해서 묻지 않고, 밤늦게 혼자 들어온 여행자는 내가 만난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줄리아뿐이었다. 멕시코의 치안은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았다.어딜 가나 방탄복에 총을 든 보안요원이나 경찰이 있어서, 여행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안전한 느낌도 들고, 길을 묻기도 편리했다. 혼자 다니는 여행자는 밤에 돌아다니는 것이  불안했는데, 멕시코 도시마다 있는 광장인 소칼로 근처는 대부분 밤에도 인적이 드물지 않아서 안전한 편이었다.


다른나라들의 분위기

 큰 쇼핑몰이나 지하철역에 들어갈 때 금속탐지기 검사를 하는 나라는 생각보다 많다. 인도, 러시아, 중국, 이집트 같은 나라도 일상적으로 금속탐지기를 지나야 하고, 소지품 검사를 한다. 러시아에서는 가게마다 보안요원이 있었는데, 가게 밖을 지키는 사람과 가게 안에서 손님을 따라다니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러시아 사람들은 좀도둑이 많은지 어떤 종류의 가게들은 손님을 따라다니는 통에 물건을 구경하기에 불편했고, 인도는 마트 안으로 가방을 들고 들어갈 수 없어서, 짐을 맡겨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집트에서는 동네사람들이 밤마다 싸웠고, 아이들은 버릇없이 외국인을 함부로 대하거나 너무도 자연스럽게 주머니의 먹을 것을 가져가려고 한 적도 있었다. (훔치려는 시도보다는 버릇없는 아이들이 빼앗아가려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어쨌거나 이집트는 인심이 사나운 편이었다.


밤을 빼앗긴 멕시코

멕시코는 사람들이 일단 친절하다. 동네 마트에도 보안요원은 있지만, 가방을 따로 맡기거나, 좀도둑을 감시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정직하고, 인심이 좋은데 도대체 왜 치안이 나빠진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이집트에서도, 인도에서도, 러시아에서도, 밤거리는 여행자들에게 다른 풍경을 선사했기 때문에 너무 늦지 않게 밤거리를 구경하고는 했다. 멕시코에서는 마치 밤을 빼앗긴 듯 어두운 거리를 포기해야 했다. 나뿐 아니라, 다른 여행자들도 빨리 저녁을 먹고, 해가 지기 전에 대부분 들어왔다.

한국인의 기준으로 안전한 곳은 세상에 없다. 안전하기로 소문난 일본 조차도 돈키호테같이 사람들이 많이 가는 쇼핑몰에서 화장품을 훔쳐가는 사람들이 흔해서 물건을 잘 확인하고 구매하지 않으면, 상자만 있는 경우가 더러 있고, 하라주쿠나 신주쿠 한편에 서있으면, 젊은 여자에게 몰래 성희롱의 말을 하고 가는 멀쩡한 남자들이 흔히 있다. 영국에서 온 알리시아도, 프랑스에서 온 주스틴도 자국의 밤거리는 안전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도 사건사고가 있지만, 우리는 새벽감성이 있고, 첫차를 타고 돌아오는 아침에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된다.


멕시코는 악명 높은 치안에 대한 소문보다는 안전했다. 물론 미국과의 접경지역이나 갱단이 많은 곳과 남부에 있는 멕시코 시티나 이곳 푸에블라는 매우 다르겠지만, 공포 때문에 여행을 못할 정도는 아니다. 안타까운 점은 일부 나쁜 놈들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열쇠를 들고 다니면서, 대문을 잠그고, 보조열쇠를 잠거야 하고, 도시에는 보안요원으로 일하라는 광고가 어디에나 있다는 점이었다. 여행자들은 언제나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이곳이 안전하냐고 물어야 했고, 여행을 하면서도 경계를 늦출 수 없어서 더 피곤해졌다.

나는 쥬스틴에게 위험한 구역의 특징을 농담처럼 늘어놓았다. 벽에 지저분하게 스프레이 낙서가 있고, 항상 깨진 유리가 있으며, 쓰레기가 굴러다니고 있고, 사람이 없는 길은 경계한다고 말해줬다. 주스틴도 동의하면서, 이 구역은 안전해 보인다고 말했다. 우리는 만나자마다 코드가 잘 맞았는데, 낯선 곳에서 두려움에 휩싸여 어디로 가서 무얼 해야 모른다는 점을 씩씩한 척 숨기지 않아서였다.


나만 어색해?

쥬스틴이 도착했을 때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밥을 얻어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주스틴이 내가 여기서 일하느냐고 물어왔다. 매일 라면만 먹는 나를 불쌍히 여겨서 그들이 밥을 나눠줬는데,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심지어 스페인어조차도 못해서, 감사인사 건네기도 힘들다고 말해줬다. (쥬스틴은 스페인어를 잘했고, 불어의 어순이 스페인어와 비슷해서 배우기 쉬웠다고 말했다.) 그제야 그녀는 안도했다. 혼자만 어색한 것이 아니라는 점, 나도 그녀와 같이 불편하고 어색할 것이라는 것에서 편안함을 찾은 듯했다. 한동안 빈 6인실에서 혼자 지내서 인지, 오히려 그녀와 함께 있는 불편함이 반가웠다. 잘 못 알아듣겠는 프랑스식 발음을 대충 흘려들으면서 바짝 올라간 속눈썹과 인형 같은 회색 눈동자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깜빡거리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다.


나갔다 돌아와 보니 쥬스틴은 짐을 싸고 있었다. 며칠간 푸에블라를 돌아보겠다는 계획을 바꿨다. 주방이 언제나 번잡해서 이 숙소에 더 있기가 어렵다는 이유였다.(음식을 해 먹지 않으면 여행비를 아끼기 힘들다.)  거의 일주일 만에 만난 룸메이트가 일정을 다 채우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아쉬웠다. 도착하자마자 슈퍼마켓을 찾는 것이나, 두려움에 떨면서 이 거리를 걸어도 되냐고 묻는 것이나,나랑 똑같았다. 다들 씩씩하게 어딘가를 다녀오고, 맛집을 찾아내고, 새로운 정보를 나눠주기 바빴는데, 쥬스틴이랑 나는 옥상에 앉아서, 밤거리도 무섭고, 물가도 비싸고, 음식도 맞지 않다고 불평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지내는 것이 어렵다고 수다 떠는 일이 즐거웠다. 돌아가면서 서로 발음을 못 알아듣다가, 딴소리를 해도 겁쟁이들끼리의 수다는 재밌었다. 나는 겉으로는 의연해 보이는 서양인들도 어색해 죽을 지경이라는 것이 안심이 되었고, 쥬스틴은 똑똑해 보이는 동양인들도 어딜 가야 하는지, 무얼 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래서 일정을 채우지 못하고 떠나는 쥬스틴에게

"처음 보자마자 회색 눈동자가 너무 예뻐서, 네가 나와 같은 겁쟁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마음에 들었어"

라고 말해주었다.


쥬스틴의 보답

쥬스틴은 이 농담을 정말 좋아해 줬는데, 나중에 나에게 큰 보답을 해줬다. 쥬스틴이 떠난 후 한동안 호스텔 탈라베라가 좋은 후기들을 받으면서, 도미토리에 손님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룸메이트가 반가웠던 나도, 이제는 혼자 지내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쥬스틴은 숙박후기를 남겼는데, 미리 결제한 숙박비의 일부를 환불받지 못했다면서, 10점 만점에 3점의 후기를 남겼다. 이후로 나는 떠날 때까지 도미토리에서 다시 한적하게 지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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