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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레비엔 Mar 13. 2024

[호스텔 탈라베라]익숙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 줄리아

현금을 찾아야 해서 오랜만에 관광지 다운 소칼로에 다녀온 날이었다. 현금을 찾는 일 말고는 중요한 일도 없어서, 광장 벤치에 앉아서 추로스나 사 먹고 시간을 때우다 왔다.


노란 태극기, 이마트 쇼핑백

돌아와 보니 옆 침대에 이마트 쇼핑백이 놓여 있었다. 한국에서 온 여행자와 함께 밤을 보내게 된 모양이었다. 여행을 떠나온 지 겨우 보름밖에 되지 않았지만 한국인을 만나는 것은 반가웠다. 그러나 상대도 반가울지는 모르는 일이다. 혼자 온 여행자는 아홉 시가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리려고 하지 않았지만, 만나본적도 없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을 걱정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와중에  9시가 조금 넘자 앳된 얼굴의 한국인이 들어왔다.  


자신 없는 소리로 '하이' 하고, 인사를 건넸다. 한국인임을 불편해하면 어쩌지 하며 망설이고 있을 때, 먼저 어느 나라 사람이냐며 영어로 물어줬다. 그제야 이마트 쇼핑백을 보자마자 반가웠다며, 이실직고를 했다. 줄리아는 걱정이 무색하게 반가워해줬다.  나와 같이 에콰도르행을 계획했지만 내전에 가까운 테러사태로 인해서 아무 준비 없이 멕시코에 도착한 여행자였다. 3-4개월 동안 남미 전체를 여행해야 해서, 이곳에서는 하루만 지낼 계획이었다. 다른 외국인 여행자와 별 다를 것 없이 여행계획이나 치안, 음식 이야기를 했지만, 한국 사람끼리만 이해하는 것들을 나누면서, 금세 다음날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 짧은 사이에도 줄리아는 나를 잘 파악해서, 자신이 아는 정보하나라도 더 주려고 끊임없이 맛집이며 유심이며 이야기해 줬다. 


퇴사하고 왔어요.

"퇴사하고 왔어요."

"잘하셨어요."

"잘했다는 사람은 처음이에요."

나도 모르게 잘했다고 대답했다.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에 절대 도달하지도 못할 꿈을 꾸면서, 중요한 일을 다 미뤄왔던 나에게 한 대답이었다. 남들처럼 살려고 부단히 도 노력했다. 통장의 숫자를 키워나가고, 번듯한 집을 마련하고, 적당한 배우자를 만나는 것을 위해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참아내다가 나의 가장 대책 없이 용기 있던 순간을  소모해 버렸다. 

가장 먼저, 내가 원하는 꿈이었는지부터 물어야 했는데, 사람들이 길게 줄이 늘어서는 것을 보고 마음이 급해져서는 무엇을 위한 줄인 지도 모르고 따라 서있었다. 어디로 향하는 줄인 지 궁금했지만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서 포기할 수 없었다. 나중에는 조금씩 앞으로 가는 것을 낙으로 여기면서 내 차례를 기다려 왔는데, 바로 내 앞에서 마감되어 버렸다. 끝내 나는 무엇을 위해 줄을 서 있었는지 모른 채  한동안을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 그것이 내 20대였다. 


대열에서 이탈해서 여행을 하면서 알게 됐다. 모든 사람이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았던 '나의 온 세상'은 세상의 극히 일부였음을. 세상에는 수많은 다른 방향으로 무리 지어 걷거나 도는 무리가 수없이 흩어져 있는 카오스였음을 그때 보았다. 내가 갔던 방향과 정반대로 걷는 사람들도, 우리보다 더 빨리 뛰거나 더 큰 무리도 있었고, 심지어 각기 흩어져 대열에 끼지 않은 사람들도 많은 혼돈 그 자체였다. 


어떤 줄에 설 것인지,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를 정하기 전에 먼저, 어디로 향하는 것인지 알 필요가 있었다. 줄 안에 서 있을 때는 절대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다. 대열을 이탈해서 멀리서 떨어지고 나서야 볼 수 있었다.  한 곳의 정해진 목적지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퇴사하고 왔어요'는 '저는 매우 똑똑한 사람이에요. 남들보다 먼저 어떤 줄이 마음에 드는지, 어디로 갈 것인지 보려고 잠시 대열에서 이탈했어요. 그렇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곳, 빠른 길을 찾아낼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서로를 아는  것과 말이 통하는 것

"저는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라 해외에 나오면 다른 인격이 생기는 것 같아서 편해요. "

줄리아는 자신의 성격을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했는데,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었다. 내심 줄리아를 기다렸으면서도, 혹여 불편해할까 봐 한국인이라고 말하기가 조심스러웠으니까. 


오랜만에 만난 한국 여행자를 왜 천진하게 반기지 못했을까? 다른 나라 여행자들보다 쉽게 믿으면서도, 왜 더 조심스러울까? 나는 이름도, 나이도, 직업도 묻지 않았다. 서양여행자들은 서로 나이나 이름 따위를 묻지 않는 것처럼 알려졌지만, 조금 친해지거나, 궁금하면 외국인들도 앉은자리에서 나이며, 직업이며, 수입까지 신상을 캐묻는다. 그런데 우리나라사람에게는 오히려 조심스러워진다.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동문들과 고향사람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도, 동네 이름만 알거나 직업만 알아도,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돈은 얼마나 있는지, 학력은 어떤지, 너무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여행에서만큼은 그 누구도 학력이나, 사는 동네나, 좋은 차 따위의 기준으로 읽고 싶지 않았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알고 있다. 


이름이나 직업을 묻는 것은 다시 스스로 한국사회의 틀로 걸어 들어가서, 꼭 맞춰서 불편하게 끼어있겠다고 선언하는 것 같아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런 것을 몰라도, 우리는 사랑하는 음식이 같았고, 이곳을 이해하는 방법이 비슷했으며, 비슷한 결론에 도달하기도 했다. 한번 본 적이 없는데 걱정이 되었고, 결정적으로 발음 때문에 말을 잘 못 알아듣거나 오해할 일이 없었다. 

단 하룻밤이었지만, 다른 어떤 여행자들 하고 나눌 수 없었던 수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익숙한 것과 낯선 것

다음날 우리는 함께 푸에블라 근교 관광지 촐룰라에 다녀왔다. 다른 나라 여행자들과 동행을 할 때는 별 할 말이 없어서 쓸데없는 스몰토크를 지어냈어야 했는데, 할 말이 넘쳐났다. 정말 소소한 느낀 점에서부터, 여행지 정보, 지난 여행이야기, 살아온 이야기 어떤 이야기를 하든 우리는 서로 핵심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시야가 닿는 모든 곳이 다 보이는 구름 한 점 없는 날의 하늘처럼 선명했다. 우리는 대화를 한다기보다는 그간의 답답함을 부지런히 털어내고 있었다. 얼마 안 가 다시 낯선 세상 속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모든 한국 사람이 줄리아 같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줄리아는 지금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잘 알면서 배려심이 깊고, 먼저 가서 손도 잡아주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강행군 때문인지 떨어진 체력과 소란스럽지 않은 성품은 나와 잘 맞았다. 웬만한 사람은 답답해서 나와 잘 동행하지 못하는데, 줄리아는 제력면에서나 속도에서나 비슷해서 보내주기 아쉬울 정도였다. 그리고, 편하게 동행으로 서로의 사진을 찍어줬다. 


줄리아와 함께한 시간은 딱 15시간, 하룻밤과 다음날 오전이 전부였는데, 배웅하고 돌아서기가 아쉬웠다. 줄리아는 내가 두고 온 것들이 얼마나 익숙한 것이었고, 익숙한 것이 얼마나 편안하고 행복했는 지를 기억나게 했다. 조금이라도 불편한 사람이었으면, 이렇게 그립지는 않았을 텐데, 상냥하고 똑똑하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배려심은 익숙한 것들을 그립게 만들었다. 


사실 나도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보다 더 씩씩하게 잘 여행하고 있는 줄리아에게는  아무 정보도 필요 없었다. 나의 어떤 이야기라도 이제 곧 마주할 것이고, 언제나 자신만의 답을 찾아낼 것이기에 그냥 쓸데없는 이야기나 늘어놓았다.


줄리아를 보내고, 마치 전 남자친구를 그리워하듯이 아침에 함께 지나가면서 사진을 찍었던 타코 식당으로 가서 스쳐간 인연을 곱씹으면서 점심을 먹었고, 다음날은 숙제처럼 알려준 저렴한 유심을 사러 가면서, 다시 낯선 나의 세상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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