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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레비엔 Mar 12. 2024

[호스텔 탈라베라] 착각이 아니었던 앨런의 관심

처음으로 만난 잘생긴 백인 남자 앨런
아무리 편견 없이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려고 해도, 잘생긴 사람은 있고, 사람들이 선호하는 피부색, 외모가 있다. 백인과 동양인 흑인이 다 아름답다고 하지만, 백인의 피부색과 외모를 선호하는 지역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진짜 사실은, 예쁜 백인 소녀는 많지만, 잘생긴 백인 남자는 생각보다 드물다는 점이다. 한국 사람이라 그런지 한국 남자들이 깔끔하고, 잘생겨 보인다. 


앨런은 거의 처음 만난 배우만큼이나 잘생긴 백인 남자였다. 그런데 칸쿤에서 온 멕시코인이었다. 멕시코인 여행자들도 앨런을 처음 만나면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으니까, 멕시코 사람이지만 백인처럼 보였다. 멕시코인들은 메스티소라고 하는 유럽과 원주민의 혼혈이 많다. 때문에 매우 서양인 같은 사람에서부터, 동양인의 느낌이 나는 사람까지 다양하지만, 분명 백인과는 다른 인종적인 특징이 있다. 그런데 앨런은 완전히 백인처럼 보이면서도 한눈에 빛이 나는 잘생긴 사람이었다.


영역에 침범하면 미움을 산다.

나는 호스텔 사람들하고 매우 친해지지는 않았어도,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적당한 선물을 건네기도 하면서 잘 지냈는데, 되도록이면 앨런에게는 먼저 말을 걸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왜냐하면 알리시아가 앨런을 좋아하는 것을 누구라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양인들이 애정관계에 비교적 관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경험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서양인들의 애정관계는 마치 정글의 동물들과 같아서, 영역을 지키기 않으면, 언제라도 사랑이 옮겨간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래서 쓸데없이 예민해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나는 잘생긴 남자보다는 한 그릇의 쌀밥에 훨씬 관심이 있었지만, 괜히 미움을 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앨런과는 별말을 나누지 않고 지냈다. 알리시아가  남자친구가 아니라고 묻지도 않았는데, 굳이 해명을 해서 더 무서웠다.


왜 자꾸 나한테 말 거는데?
앨런은 배우처럼 웃으면서, How are you? 묻기만 해도, 거의 모르는 사람인 앨런이 좋은 사람처럼 보인다. 남자들이 왜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저절로 마음이 녹는다. 처음에는 인사만 건네더니, 어느 날부터 자꾸 말을 걸어온다. 언제까지 숙소에 있을 거냐고 묻기도 하고, 한국에 대해서 묻기도 한다. 착각인가 싶었더니, 사실 앨런은 나한테 묻고 싶은 말이 있었다. 15일짜리 책 쓰기 챌린지를 참여했는데 책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것을 어느 날 고백했다.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느냐고, 무얼 배워야 하느냐고 묻는다. 


"글쓰기는 사실 배울 필요는 없어. 우리는 쓰고 읽기를 평생 계속해왔지."

"글 쓰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없어. 쓰는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얼마나 자신의 생각을 잘 들여다보느냐, 내 마음을 얼마나 똑바로 대면할 수 있느냐가 문제야. 글쓰기는 사실 생각하는 일이지"


"우리는 습관처럼 해야 될말, 하면 안 되는 말을 거르면서 살다 보니 진짜 내 생각과 느낌을 덮어두는 훈련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야. 그래서, 나의 진실한 마음과 생각을 잘 들여다 보고, 글로 옮기기만 하면 돼.

글쓰기는 절대 좋은 표현력을 자랑하는 장도 아니고, 누가 누가 잘 쓰나 경쟁하는 대회가 아니야. 그냥 쓰면 돼 그리고, 꾸준히"

앨런은 이해된다면서, 애쓰지 않고 매우 쉽게, 매혹적으로 웃어줬다. 글을 쓰는 일도 사실 잘생기고, 아름다운 사람이 애쓰지 않고도 아름답게 웃을 수 있는 것과 같다. 영혼이 아름답지 않은 사람은 없으니, 웃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쓰면 된다. 책 쓰기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행이 맞나 보다.


잘생긴 애들은 다 그런가?

안타깝게도 정말로 외모가 아름다운 사람, 앨런은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다.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두 개의 금융투자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고 했다. 직원들이 돈을 훔쳐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면서 손해액을 구체적으로 말해준다.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는데, 그런 큰돈을 만지는 사람이 하루 만원이 겨우 넘는 호스텔에서 침대 한 칸을 빌려서 지내고 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앨런은 절대 초심을 잃지 않은 건실한 청년사업가이거나, 사기꾼인가 보다'하는 의심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날따라 우리는 다 같이 옥상에서 햄버거를 배달시켜 먹었는데, 앨런이 마침 현금이 없단다. 100페소(한화 8000원)를 빌려줬다. 다음날은 다 같이 편의점에 갔는데, 이번에는 알리시아에게 돈을 빌린다. 앨런이 회사대표라고 말하지만 않았어도, 지나치게 잘생기지만 않았어도, 사기꾼처럼 보이지는 않았을 텐데. 나는 알지도 못하면서 서로를 가늠하고, 이용하는 세계를 떠나 온 것인데, 짐은 한국에 두고 왔지만, 의심은 두고 오지 못했다. 


텔레파시로 하는 말, 돈 갚아, 돈 갚아!
잠시 현금이 없으면 빌릴 수도 있고, (아니다, 빌릴 수 없다. 아니다! 소소한 금액은 빌리기도 하면서 친구가 된다. 아니다. 모르겠다.) 잘생긴 사람은 사기꾼일 수 있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편견이고, 돈을 잃은 사람이 온통 그 생각에 사로잡혀, 가까운 사람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하소연을 바람에 흘려버리는 것처럼 여행자에게 한 것도 잘못은 아니다. 못 미더우면 돈을 안 빌려줘야 했다. 앨런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내 눈에 돼지만 보이는 것뿐이다. 이렇게 100페소와 앨런의 한마디는 현실을 뒤로한 여행에서 나의 옹졸한 마음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놨다.  

그래서, 옹졸함의 대가로 100페소를 잊기로 했다. 돌려주든 말든 잊어버리기로 했지만, 앨런을 볼 때마다 속으로 '돈 갚아'라고 텔레파시로 말했다.  내가 떠나던 날 아침에, 앨런은 작별인사를 하다가 급히 가서 100페소를 들고 왔다. 잊을뻔했다는 사과와 함께, 나는 잊고 싶었지만 한시도 잊지 못한 100페소 때문에 괜히 얼굴까지 빨개졌다. 


나는 나를 방어한 것일까 앨런을 판단한 것일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나를 방어하는 것이 잘생긴 앨런의 미소를 즐기지 못하는 것이라면, 조금 더 허술하게 나를 지켜야겠다. 앨런은 글 쓰는 마음을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정말 진심이라고 강조하면서, 작별인사를 건넸다. 

아! 글은 마음으로 쓰는 일인데, 내 글이 얼마나 옹졸할지 그 순간에 다시 깨달았다. 

글쓰는 마음은 내가 배웠다. 


앨런이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사업에 성공하기를 이번에는 진심으로 빈다. 

'100페소를 잊지 않고 돌려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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