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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레비엔 Mar 06. 2024

[호스텔 탈라베라]어쩌면 가장 잘 아는 사이 알리시아

이상한 일이다.  알리시아에 대해서 몇 번이고 글을 썼는데, 쓸 때마다 저장이 안 되거나, 감쪽 같이 사라진다. 몇 번째 다시 쓰고 있는지 모른다. 알리샤는 어쩌면 자신이 말한 그런 특별한 종류의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알리시아는 탈라베라에 도착한 첫날 옥상에서 만났다. 누가 봐도 한눈에 여행자로 보이는 백인 여자가 진분홍 브라탑에 하늘거리는 긴치마를 입고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었다. '멕시코사람도 저렇게 백인 같은 사람이 있나' 생각하고 있을 때 먼저 말을 걸어왔다. 

마치 내 표정을 읽은 것처럼 자신은 영국에서 온 여행자고, 이 숙소에 일주일 전에 도착했다고 했다. 한 달 동안 이 호스텔에서 일하면서 지내다가 다른 도시로 옮겨갈 계획이라고 했다. 


알리샤는 누구와도 잘 어울렸다. 이곳에 겨우 일주일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이제 막 배우기 시작했다는 스페인어도 비교적 훌륭해서, 항상 통역이 되어 주었다. 언제나 통역을 해주는 알리시아에게 고맙다고 하면, 스페인어 공부에 도움이 돼서 오히려 좋다고 말해주는 친절한 사람이었다.


하루종일 숙소에서 눈칫밥 나눠먹는 법.

푸에블라는 작은 도시라서 여행자들이 대충 하룻밤 둘러보고 가는 도시다. 며칠이 지나자 관광으로 도시를 둘러보는데 흥미를 잃었다. 그저 옥상에 앉아서, 글이나 쓰고 세월이나 보내고 싶었다. 도미토리에 숙박하는 여행자가 돌아다니지 않고 하루종일 숙소에 있는 것도 편하지는 않다. 늦잠을 자고 있으면, 청소를 시작하느라 분주해서 불편하고, 낮잠이라도 잘라치면 새 여행자가 들어온다. 하루종일 옥상에 앉아서 할 일을 하고 있으면, 일하는 직원들 식사하는 여행자들에게 걸리적거린다. 그래서 보통은 흥미 없는 여행지를 찾아 잠시 억지 여행 할 거리를 찾는다.

그런데, 알리시아는 항상 숙소에 있었다. 잠시 식사거리를 사러 나갔다 오는 일 외에는 옥상에서 햇빛을 쬐거나, 요가를 하거나, 일기를 쓰고 있었다. 덕분에 나도 하루종일 편하게 옥상에 죽치고 있을 수 있었다. 눈칫밥도 같이 먹으면 그럭저럭 견딜만하고, 더군다나 알리시아는 한 달간은 이곳의 직원이다. 덕분에 여행하지 않는 여행자도 이곳에서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알리시아는 밖에 나가서, 음식을 사고, 낯선 곳에 갈 때마다 매번 두렵고 귀찮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가끔은 긴 머리를 양갈래로 따고, 야구모자를 쓰고 바쁘게 나가서, 귀찮다면서도 저녁거리를 넉넉하게 사 와서 지나다니는 사람마다 먹어보라고 권하고 다녔다. 


장기 여행자의 대답

나는 가끔 장기 여행자들과 친해지면 묻는 질문이 있다. 

'왜 이렇게 오래 여행하느냐고, 여행에서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친해지기 전에 물어보면 돌아오는 답은 항상 같다. 새로운 경험을 위해서, 리프레시를 위해서 같은 뻔한 대답이 돌아온다. 친해지고 나서 물어봐도 대답은 같지만, 납득할만한 개인적인 상황을 그래도 조금 더 들려준다. 다르지만 똑같은 대답을 통해서 다른 여행자들의 상황과 여행의 이유를 마음대로 짐작하고는 했다. 

탈라베라를 떠나기 일주일 전쯤에 알리시아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여행에서 얻고 싶은 것은 없어. 그냥 하루하루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는 것뿐이야. 

답은 원래 없으니까."

내가 여행자들에게서 듣고 싶었던 대답을 드디어 들었다. 그 대답은 여행자의 의무를 저버리고 탈라베라 옥상에서 빈둥거리던 나를 위한 변명이었고, 세상 속을 헤매고 다니면서 오히려 의문만 늘어난 나에게 주는 답이었다. 


영국 여자의 삶이란

그리고, 처음 여행을 시작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이내 나의 희망을 빼앗았다. 

알리시아가 사는 동네는 영국에서도 작은 마을이라서, 

'언제 결혼할 거니?' '빨리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사는 것이 여자의 인생이란다'라는 가족과 친구들의 무언의 압박에서 멀어지기 위해서 여행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언젠가는 결혼하고 아이도 낳겠지만, 세상을 경험하고 나서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아... 세상살이가 다 똑같아서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자신들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아더왕 영화에서 조차 흑인배우를 기네비어역에 배정하는 편견 없는 영국인들조차, '결혼해라', '돈은 잘 버니?', 가 통용된다는 사실에 인류애가 사라질 뻔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선덕여왕을 흑인 배우가 연기하는 것과 같다)

어쨌거나 알리시아나 나는,

나를 찾기 위해서 여행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낯선 세상에서 모험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다양한 방법으로, 안전한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그냥 살아가고 있었다. 알리시아는 꾸미는 것 하나 없는 진정한 방랑자였다.  


그런데, 문명사회의 세련된 삶을 이해하고 있는 우리는 서로에게 친절했고, 항상 예의를 지켰고, 먹을 것을 나눠먹었지만, 결국 마음속 깊이 친해질 수는 없었다. 빠르고 부유하고 경쟁적인 사회에 적응하고 살아온 영혼 깊은 곳의 습관적 불신과 의심을 서로 알아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꿈을 이뤄 준 또 다른 비밀을 간직한 존재였다. 




한국인 여행자들은 많이 사용하지 않지만, 장기여행을 하는 외국인들 중에는 워크어웨이, 월드 패커스 앱을 통해서, 일하면서 여행비를 아끼는 경우가 많이 있다. (워크어웨이나, 월드 패커스 앱은 가입비용이 있다)
이 경우는 해외취업은 아니다. 자원봉사 형태로 일을 하고, 돈 대신에 숙박을 제공해 주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대다수의 나라에서 여행비자를 받은 여행자가 여행 중에 현금 수입을 버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월급을 받는 형태가 아닌, 자원봉사- 서비스 제공의 형태로 이뤄진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앱을 통해서 한 달만 일을 구해볼까 잠시 생각해 봤지만, 이미 하고 있는 일에 지장을 줄 것 같아서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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