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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레비엔 Mar 04. 2024

[호스텔 탈라베라] 나의 첫 브라질, 비토르

탈라베라에 처음 도착했을 때, 영어를 못하는 아브라함과 스페인어를 못하는 나는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친절한 목소리로 도움을 준 것이 비토르다.  체크인을 도와주고, 계단에 크게 그려진 세계지도에 한국을 찾아서 스티커를 붙이게 해 주고, 첫 한국인 손님이라면서 환영해 줬다. 고마웠지만, 이제 막 도착한 정신없는 여행자는 비토르에 대해서 잊고 있었다. 


물을 팔아줘
첫날밤이 되자 나는 물을 사 오는 것을 잊은 것을 알게 되었다. 물한병때문에 위험한 밤거리로 나가느니 로비에서 물어보기로 했다. 1층에는 비토르가 야간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날 왜 그렇게 물었는지 모르겠는데, 이렇게 물었다. 

"물 사 오는 것을 잊었어, 물을 좀 얻을 수 있을까? "

사실 어떻게 말했든 간에, 비토르는 '물을 팔고 있어'라고 말하면 됐었다. 대신에 cctv를 보여주면서, 주방에 있는 정수기용 20L 물병에서 작은 물병으로 물을 따라서 편하게 마시라고 했다. 그 물은 언제든지 마셔도 된다고 말했다. 


며칠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로비에서는 간단한 물과 콜라 치약 같은 것을 팔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자마자 부끄러워졌다. 진상처럼 물을 파는 것을 알면서도 공짜로 달라고 했던 거다. 그런데도 비토르는 차분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 그날밤에는 로비로 물을 사러 갔다. 일하는 직원들이 많은데도, 마침 비토르가 있었다. 

"물 한병 주세요." 다시 비토르는 주방에 있는 물을 마시라고 했다. 

"첫날 밤에 물을 얻으러 왔을 때, 왜 물을 판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저는 첫날이라 정신이 없어서 물을 파는 것을 몰랐어요. 미안해요."

이렇게 말하자. 비토르는 물을 주는데 왜 사 먹느냐며, 그날도 물을 팔지 않았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비토르와 마주 칠일이 없었다. 


내 첫 브라질의 기억

어느 날 갑자기 비토르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네가 남긴 메시지를 읽었어, 번역기로 사진 찍어서 읽었지. 이곳은 진짜 시간의 잠시 멈추고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곳 같아. 너는 브라질에 꼭 가봐야 할 거야."

일단은 살짝 적어둔 메시지를 누군가 읽어줬다는 것에 고마웠다. 탈라베라의 옥상 한쪽 벽에는 여행자들을 위한 메시지 보드가 있었다. 옥상에 아무도 없던 어느 날, 나는 한 개뿐인 태극기를 붙이고, 한편에 메시지를 남겨뒀다. 그것을 읽고 먼저 말을 걸어줬던 것이다. 


"메시지를 읽어줘서 고마워. 왜 브라질에 가야 해?" 내가 물었다. 

"사실 나는 브라질 사람이야. 브라질에서 여행 삼아 이곳에서 머무르고 있지. 아마 너는 브라질에 가면 정말 좋아할 거야 그곳의 자유와 활기를 꼭 봐야 해"

비토르가 그렇게 반짝이는 사람인줄을 그때 처음 알았다.  달라진 눈빛만 봐도 이미 브라질이 얼마나 매력적인 곳인 줄을 알 수 있었다. 


이후로 종종 비토르는 멕시코랑 브라질이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해 주기도 했고, 그때마다 그가 얼마나 조국을 사랑하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브라질이 궁금해졌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내가 떠나기 전날 비토르는 브라질음식을 해뒀다가 맛보게 해 줬다. 정말 약간만 만들었는데, 다른 사람이 거의 다 먹어버리는 바람에 남의 접시에 있는 음식을 빼앗아서 대접해 주었다. 비토르는 내가 처음으로 만난 똑똑하고 친절하고 다정한 브라질 사람이었고, 덕분에 나는 브라질에 가지 않고도, 브라질의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나는 탈라베라 벽에 이렇게 메시지를 남겼다.

이곳은 우연히 만난 시간의 틈에 존재하는 게스트 하우스입니다. 

누구라도 잠시 멈추고, 시간에 쫓기지 않아도 되는 영원한 휴식의 장소.

첫 한국사람으로 이곳에서 멕시코 사람들의 영혼의 자유를 배워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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