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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레비엔 Mar 15. 2024

[호스텔 탈라베라]운명적 만남- 타로를 읽던 날

[호스텔 탈라베라]운명적 만남- 타로를 읽던 날


어쩌면 모든 것은 이름 짓기에 달려 있다.

내가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큰 대로 사이에 위치한 끊임없이 차소리가 계속되는 이 옥상은  어디로 갈지 모르는 낯선 여행자들이 길 위에 선택을 강요받는 듯 그렇게 멈춰있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곳을 시간의 틈,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곳이라고 불렀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돌아가든 여행자들 자신만의 속도로 살고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탈라베라의 옥상에서는 사람마다 시간이 제각각 흘렀다.  단기 여행자는 일상보다 바쁜 삶을 보내느라 새벽같이 어딘가를 둘러보고 돌아왔고, 장기여행자들은 넘치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서, 하릴없이 보냈다. 오래간만에  바쁜 오전을 보내고 돌아와서 오늘도 별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낼 것이라는 예상은 어김없이 빗나갔다.


타로카드 읽기
알리시아는 그 무료한 오후에 갑자기 타로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다음 손님이 되겠다고 외치고, 기다렸다. 헤수스가 첫 번째 손님이었는데, 운명을 읽는 일은 점점 길고, 진지하고 지루하게 끝이 나지 않았다.

헤수스는 손에 꼭 쥔 작은 종이 속에서 진지하게 미리 적어온 질문을 하나씩 꺼내두고 있었다. 미리 약속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갈림길이 내려다 보이는 옥상에서 운명을 읽는 것은 묘하게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우리 중에서 가장 어린 청년, 부모님과 싸워서 집을 나와서 4개월째 이곳에서 지내고 있다던 헤수스는 끝없는 질문을 가지고 있었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지날 동안에는 모르는 법이다.  헤수스의  진지한 모습에 모두 웃음을 걷고, 알리시아는 진지하게 인생을 읽어주었다.


알리시아가 영어로 타로를 읽고,  앨런이 스페인어로 통역을 해주는 어색한 모습이었지만, 인생을 향한 질문은 진심이었다. 스페인어가 점점 더 많아지면서 나는 헤수스의 인생과 질문을 엿보는 것을 멈추고, 곁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문득 헤수스의 얼굴을 살펴보니 마음을 숨기면서도 울듯한 표정이 되어 있다가 안도하다가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30분 이상 자신의 미래에 심취해 있던 헤수스는 웃으면서 후기를 전해주었다. 무서울 정도로 그녀의 이야기는 정확했다고, 질문에 답을 얻었다고. 나도 질문을 해야만 한다고 말해줬다.



나에게는 물어볼만한 질문이 남아있던가.

어쩌면 이미 많은 것을 포기했기 때문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궁금한 것이 남아있지 않았다. 내일 맛있는 점심을 먹을 식당 정도가 가장 궁금한 질문이었다. 내가 예측할만한 미래에 대한 답은 알고 있었고, 예측이 불가능한 사고처럼 다가올 미래는 미리 걱정하거나, 미리 행복을 당겨 쓰고 싶지 않았다. 궁금한 것도, 소망하는 것도 없어서, 우연을 만들러 온 것이 여행이었다.

길어진 타로 읽기에 지쳐서 알리시아가 그만두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차례가 돌아와 묻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을 까봐 두려워졌다. 나에게는 남은 질문이 없었다.

질문이 남은 이들, 미래가 걱정스러운 이들이 부러워졌다면 오만일까


친절한 알리시아는 다음 손님을 잊지 않았고, 내 차례가 되었다.  정말로 하고 싶은 질문 같은 것 없었다. 그래서 비밀 질문이라고 둘러대고는 카드를 골랐다. 대답은 역시 내가 알고 있는 그대로였다.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렸다는 것이었다. 타로의 힘은 알 수 없었지만  알리시아는 확실히 똑똑했다. 내가 질문의 답을 알고 있는 것도 눈치채고, 적당히 타로 읽기를 마무리했다.


영국에서 온 마녀
이곳은 확실히 이상한 곳이었다.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났는데, 알리시아가 자신은 대대로 내려오는 마녀 집안의 사람이고 많은 마녀의 종류 중 하나라고 설명해 줬다.

'어쩐지 운명을 잘 읽더라'며, 농담으로 듣다가 진지하게 말하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알리시아는 진지하게 마녀가 맞다며,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어떤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마녀를 두려워하기도 해서, 잘 밝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비밀을 꼭 지켜주겠다며, 농담으로 대답했지만, 앨런이 오자마자

" 앨런, 너는 알리시아가 마녀인 것 알고 있었어?" 물어보고 말았다.

다시 한번,

"이제부터는 진짜 아무한테도 네가 마녀라고 말하지 않을게" 하는 농담으로 그날의 타로는 마무리되었다.


내 생에서 마녀를 만날 줄이야. 이 여행은 이미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알리시아와의 약속은 지키기가 너무 힘들것 같다. 마녀를 만났다는 사실을 어떻게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알리시아는 너그러운 사람이니까 마녀를 만났다는 사실을 동네방네 떠든다고 해서, 저주 같은 것은 내리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내 소원을 이뤄준 단 한 명의 마녀가 된 것에 기뻐해주리라 믿는다. 나는 멕시코에서 영국 마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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