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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레비엔 May 01. 2024

완벽한 세상에 부족한 딱 한 가지

멕시코에서 UFO를 보는 법 

공기도, 사람들도 풍경도 다 낯선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여행자다. 

익숙한 것 하나 없이, 이곳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만 느낄 수 있는 자유,

세상 모든 것이 낯설어져서 얻는 새로움이 여행자가 바로 찾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모든 것이 원래대로, 계획한 대로 규칙적으로 딱 맞물려 돌아가야했고, 더 쾌적하고, 편리하고, 합리적인 것이 당연하다. 여행지에서는 불편함도, 불합리한 흥정도, 심지어 지난 주에 숙소에서 나온 베드버그도 다 추억이되고, 여행의 일부가 된다. 

모든 것을 새롭게 보고, 다른 삶의 모습을 보면서 인생을 배운다는 생각만으로도 뿌듯하다.



여행자가 사랑하는 이 낯선 곳도 완벽하지는 않다. 

딱 하나 부족한 것이 있는데 가끔 한식이 생각난다는 것이다. 김이 모락모락나는 쌀밥과 시원한 아메리카노한잔이면, 이 도시는 완벽해질것만 같았다. 

다행히 멕시코 치아파스의 작은 도시, 산크리스토발 데라스 카사스는 한식당이 많고 오밀조밀 모여있다. 이 자유롭고 아름다운 도시에 부족한 딱 하나를 채우기 위해서 한식당으로 향했다. 


여행자들은 그 어느때보다 간절한 한식 생각으로 찾아가지만, 들어서는 순간 모두 똑같은 궁금증을 가진다. '어쩌다 여기에 한식당이 생겼을까. '

'어떤 운명에 이끌려 이곳에서 살게 되었을까 '

멕시코 여행을 떠난다는 소식을 전하기만 해도 모두가 조심하라고 인사를 건네고, 익숙한 동남아 대신에 지구반대편 낯선 세상으로 떠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스스로를 용감하다 여기고는 한다. 이런 우물안 개구리같은 여행자에게 거친 세상에 살고 있는, 한국인은 잔다르크처럼 용감하고, 확신에 찬 빛나는 기사와 다를바 없다. 


한국에서 무난히 사는 사람들보다, 몇배는 더 험난한 운명의 파도를 헤쳐나왔을 것이고, 중대한 결정을 내리느라 수많은 밤을 지새웠을 것이라 는 상상만으로도 두근거린다. 그 깊은 운명을 건 고민들 사이에서, 어쩌면 내가 모르는 삶의 답을 알고 있지는 않을까. O,X퀴즈처럼 명료한 답을 내주지는 않을까

갈림길에 선 길 잃은 여행자에게 길을 정해줄 것만 같았다.


지난번에 멕시코에서 한식당에 갔을때는 주방에서 일하는 한인 사장님을 보면서, 

 운명과 삶의 답을 얻는 상상을 하느라, 밥을 어떻게 먹었는지도 모르고, 우물쭈물하다가 어쩡쩡한 인사만 건네고 나왔다. 

'유명한 작가였다면, 용기를 내서 답을 얻었을지도 모르는데'하고 한탄했다. 


그날은 무슨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 사장님이 친절한 인사를 건네면서 서비스로 주신 커피 한 잔 때문이었을까. 마음의 소리가 거를 새도 없이 새어나갔다. 궁금한 점을 물어도 되냐며 막무가내로 물었다. 당황하시면서도 흔쾌히 시간을 내주시겠다고 했다. 오히려 당황한 것은 나였다. 

'이제 곧, 운명적인 답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설렌 것과는 정반대로 내 질문은 깊이도 고민도 없는 평범함 것이었다. 

"낯선 타국에 살면서 어려운점은 없으신가요?"


지난 10년간 한국에 있었던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외국에서 보냈다. 장기여행을 하는동안 다양한 한국사람들을 만났다. 유학생, 여행자, 선교사, 출장 온 직장인과 가족들, 한인 민박 사장님, 장기 체류자들. 

이유도, 체류기간도 생활 수준도 다 달랐고, 심지어는 어쩔 수 없이 와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모든 것이 다 달라도 공통점은 있었다.  한국이 꼭 그립지 않더라도 타향살이는 다 어렵다는 점이었다. 작게는 음식에서부터  외국인으로 겪는 불이익, 인터넷 속도, 느려터진 공공기관, 이해할 수 없는 문화까지 어려움에서 시작하면 수다는 끝이 없이 이어졌다.  


"좋은 점을 말하고 싶어요." 

 처음 듣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도 들어본적이 없었다. 그런 사람은 없었다.


"어려운 것보다 좋은 점이 많았어요. 너무 좋아서 여기 살게 되었으니까요. "

여행은 두고 올 것과 가져가야 하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라고 말해왔다. 

두고 온 것을 그리워하지 않고, 꼭 필요한 것들의 소중함을 이해하는 것이 여행이라고말하면서도, 마치 내것을 빼앗긴 사람처럼 두고 온 것만 찾고 있었다.

 '여기는 한국쌀같은 쌀이 없어', '같은 물건도 질이 달라', '일처리가 답답해.'


식당에 들어서기전만해도 '여행을 하면서, 인생을 배운다' 며 뿌듯하던 마음은 '좋은 점을 말하고 싶어요'이 한마디로 부끄럽게 되었다.  나는 두고 올 것을 가져와서, 한국사람의 눈으로 멕시코를 계량하고 있었다. 

'한국보다 치안은 별로고, 한국 음식은 없고, 위생은 한국이 낫고, 물가는 비슷하네 '하면서, 약점을 찾아서 위안을 삼고 있었다. '나는 좀 괜찮은 한국 사람이니까. '

여행에서 느낀 행복은  자기위안이었다. 

어떤 어려움도 하나의 단면일 뿐이었다. 우리는 빠른 대신에 더 많이 일해야 했고, 멕시코는 느린 대신에 여유운 삶이 있었다. 우리는 친절하고 정확한 대신에 실수가 용납되지 않게 되버렸고, 이곳에는 너그러움이 있었다. 



"정착하기전에 걱정많이 되셨겠어요"

"별로 걱정 안했어요. 저는 그때 그때 닥친 일을 잘 해결해 나가는 편이에요. "


세상에 좋은 것만 가진 사람도, 좋기만한 세상도 없다. 

그런데 좋은 것을 충분히 보는 것은 가능하다. 나쁜 것에 눈감으라는 뜻은 아니다. 형편대로 사는 것에 안주하거나, 오늘만 살 것 처럼 인생을 낭비하라는 뜻도 아니다. 

아름다운 오늘을 살고, 스스로의 선택을 믿으며, 

할 수 있는 것을 담담하게 해나가는 것이 세상의 양면 중 좋은 면을 보는 법이었다. 


"그러면, 멕시코에서 뭐가 가장 좋으셨나요? "

이곳에서는 어디까지 올라가야 합니까? 행복의 조건이 무엇이냐는 질문이었다. 

그때 그 표정이 기억이 난다. 

투명한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나고 있었고,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실내에서 다른 소리들에 섞여서,

'뭐가 좋았을까? '

'그냥 다  좋았는데, '혼잣말을 하셨다. 


삶은 목적이 있는 것도, 모든 것에 이유를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그냥 좋은 것, 납득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법을 잊었다. 

지구의 반대편이라서 그랬는지, 이유없이 행복한 사람을 보았다. 


행복에도 조건이 있다. 

처음 행복의 조건은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을텐데, 충분해도 행복을 모르게 되었다. 

어느덧 행복이 계단처럼 단계가 생겼다. 사람들은 차종을 타고 행복의 계단을 오르고, 아파트 가격을 타고 행복의 계단 올랐다. 처음에는 몇 계단만 올라가도 행복하다가, 이제는 꼭때기에 있는 사람만 빼고 아무도 행복하지 않았다. 

'그냥 다 좋았는데' 조건 없는 행복을 말하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했다. 

이 말은  꼭대기 층을 바라보는 나를 돌려세웠다. 

돌아서보니 내가 서있던 곳은, 계단이 아니라  세상을 조망하는 전망대였다. 각자의 자리걸터 앉아 바람을 맞으며, 세상을 내려다 볼수 있었다. 돌아서기만 했는데,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행복에는 조건은 필요없었다. 




내가 멕시코를 가장 많이 접한 것은 UFO 출몰기사였다. 푸에블라에 있는 포포카테페틀 산은 활화산인데 UFO영상이 많이 찍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화산 활동이 잦아서 촬영을 하다보면 UFO가 자주 찍힌다. 하늘을 봐야 UFO를 발견할 수 있고, 행복을 바라볼 줄 알아야 행복할 수 있다. 

덕분에 나도 멕시코에서 UFO를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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