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레비엔 Oct 28. 2024

아기 비단 털쥐 라이카

아직 2시간이나 수업이 남은 것 따위는 생각나지도 않았다. 가방을 챙겨서 무작정 집을 향해 걸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다르게 생긴 것도, 무례한 선생님도, 집에서 먼 학교도, 심지어 이런 유전자를 물려준 부모님에게도 화가 났다. 사실은 서러웠다. 어릴 때만 해도 동네 친구들은 내가 특별하다고 추켜세워주는 선생님의 말에 모두 짝궁이 되겠다고, 손을 들었고, 어머니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사랑스러운 완두콩’이라고 불러주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내 녹색 피부가, 기분 좋으면 활짝 펼쳐지는 박쥐 날개 같은 귀가 사랑스러운 것이라는 행복한 착각 속에서 살 수 있었다. 

중학교에 오면서 점점 부끄러워졌다. 호기심에서 친절하게 구는 친구들도 친구가 되어 주지는 않았다. 나부진 선생님에게 화가 난다기 보다 간신히 지탱하던 안전한 나의 세계를 와르르 무너트린 것이 원망스럽고, 이제부터는 이런 차디찬 시선 속에 살아야 한다는 것이 서러웠다. 고개를 푹 숙이고, 사람들이 쳐다보든 말든 어깨를 들썩이면서 실컷 울었다. 아직 무너지지 않은 나의 세상, 집을 향해 무작정 빠르게 걸었다.      

한참을 울고 더 이상 세상을 원망할 꺼리를 찾지 못했을 때 눈앞에 굳게 봉인된 ‘비밀 파이프’의 해치가 보였다. 그 문에는 손잡이조차 없었다. 마음 한 켠에 아직도 서러운 눈물이 남아있는데, 몸은 저절로 손을 뻗어 닫힌 문을 만져보고 있었다. 슬픔이나 서러움도 호기심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동안 수없이 스쿨버스에서 내려 만져보고 싶던 ‘비밀 파이프의 문’, 어른들이 그리워하는 ‘지상’, 아직 가보지 못한 ‘연구센터’ 내가 궁금한 모든 것들을 해결하면서 살기도 어렵다. 오늘 나의 세상은 무너진 것이 아니다. 그저 입구를 굳게 봉인했을 뿐이다. 그렇다. 선생님이 어떤 방법으로 모욕을 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친구는 어제도 없었고, 내 모습이 달라질 수도 없다. 무너진 줄 알았던 내 세상은 어제보다 더 단단히 닫힌 문을 얻었다. 마침내 후련하다.      

스쿨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돌아온 것에 부모님은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평소보다 더 맛있는 저녁과 더 따뜻한 말을 건네셨을 뿐이다.

세상 누구도 넘어오지 못하도록 단단한 문을 만들고도 학교 생활은쉽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더 친절하게 구는 친구도, 가벼운 빈정거림도 참을 수 없이 화가 치밀었다. 무단으로 집에 돌아간 것을 넘어가 준 친절한 담임 선생님마저 값싼 동정 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꾹 참다가 말을 꺼냈다.      

>>> 아빠, 나 우리 동네 중학교로 옮기면 안 돼?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수화로 묻는 나를 보고 심각함을 느끼셨는지, 며칠 뒤 엄청난 선물을 주셨다. 

>>> 아들! 요즘도 학교 다니기 힘들어?

“아니, 괜찮아. 그냥 일찍 일어나기 싫어서 그런 거야. 신경 쓰지마, 알아서 할게.”

>>> 학교는 옮기고 싶으면 옮겨도 되지만, 다른 사람은 어떤 말과 행동으로도 너의 영혼을 다치게 할 수 없다. 네가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지, 강인하고 아름다운 영혼은 결국 적에게도 존중받게 된다. 미숙한 영혼은 자신을 공격하는 대신에 남을 공격하지, 시간이 지나면 적들조차 존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거라. 상처받지 말고, 꿋꿋하게 행동해라. 알았지?

“네...”

풀이 죽어 조그맣게 대답했다. 아버지는 꼭 학교를 옮기고 싶다면, 이유를 묻지도 않고 도와주실 것이다. 그러나, 그날 일로 아버지까지 마음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예상하지 못한 것도 아니라서 포기하고 돌아서는데 아버지가 팔을 붙잡고 물었다.      

>>> ‘라이카’가 뭔지 알아?

“알아요. 우주에 처음으로 간 강아지잖아요.”

>>> 맞아. 너 라이카 볼래? 

“그림으로 많이 봤어요.”

>>> 아니야, 여기 있어, 요새 우리 아들이 기운이 없어서 데려왔지.

그렇게 말하면서 구석에 있는 상자에 덮인 천을 걷어 내셨다. 거기에는 얼굴이 까맣고 눈사이에 흰 줄이 있는 회색 ‘아기 비단 털쥐’가 한 마리 움직이고 있었다. 

“아빠!!! 얘 나 주는거에요? 진짜!!!”

>>> 조용히 해. 들키지 않게 조심히 키워야 한다. 강아지는 아니지만, 우리 ‘라이카’는 최초로 땅 위로 돌아간 쥐가 될 거야. 그때까지 잘 돌봐야 해. 

“걱정 마세요. 제가 잘 키울게요. 아빠~~ 고마워요.”     

라이카는 실험용 개체였다. 아버지가 연구센터에서 일하는 사람의 물건을 고쳐주고, 죽기 직전의 라이카를 몰래 얻어다 정성껏 치료한 뒤 선물해 주었다. 라이카는 존재만으로도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침대 캡슐 안 둥그런 벽면 한쪽에 낮은 선반을 만들고, 라이카의 집을 둘 자리를 마련했다. 라이카는 갈색이 섞인 회색 털에 흰색 줄무늬가 눈 사이부터 척추를 따라 이어져 있다. 인형 같은 동그란 눈과 까만 작은 귀, 손처럼 보이는 앙증맞은 앞발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실험을 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귀 사이 정수리 부근에 새끼 손톱만한 둥그런 금속이 박혀있고 가운데는 작게 ㅎ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왼쪽 귀에는 스테인레스로 된 113이라고 적힌 집게 모양의 작은 태그가 달려 있었다.      

우리는 모든 시간을 함께 보냈다. 정확히는 나 혼자 쳐다보기만 했다는 게 맞다. 한참이 지나도 라이카는 바들바들 떨거나, 먹이를 줄 때조차 물었다. 라이카도 내가 다르게 생긴 것을 알거나 무서워서 친구가 되어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특히 케이지 가까이 다가가면 작은 몸을 바들바들 떠는 것을 멈출 줄 몰랐다. 부모님은 실험 때문에 인간에 대한 공포가 생긴 것 같다고, 그래도 여기 사는 게 나을 거라고 하셨지만,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결심했다. 라이카를 위해서 놓아주기로. 

침대 위로 올라가서 환풍구를 덮고 있는 금속망을 떼어내고, 직경이 한 뼘 정도 되는 환풍구 안에 미리 충분한 먹이와 작은 물컵을 놓아두고, 마지막 말을 건냈다. 

“자유롭게 살고 싶은 거지? 어른들이 다시 지상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처럼? 항상 여기 먹을 것을 놓아둘게, 언제든 찾아와. 넌 내 하나밖에 없는 친구니까 안녕~”

눈물이 날 뻔했지만, 케이지 입구를 열어 환풍구와 맞대 주었다. 몇초정도 라이카는 어리둥절하더니, 먹을 것 따위는 눈길도 주지 않고 환풍구로 사라져 버렸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두려움 속에서, 어둠만을 의지해서 숨었을 라이카를 위해서 옳은 일을 했다. 

한동안 꾸준히 환풍구에 음식을 가져다 놓았지만, 먹이를 먹으러 오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가끔 생각날 때는 먹이를 올려두었다. 어느 날 밤, 환기구에서 벌레 소리 같은 소리가 길게 울리다가 주기적으로 ‘찍찍’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라이카였다. 귀에 있던 식별 태그가 어딘가에 걸렸는지 귀가 찢어지고, 상처 부위는 염증 때문에 짓물과 피가 엉겨 있었다. 

“다쳤구나! 라이카. 치료하려면 널 잡아야 해. 물지 말아줘”

 조심스럽게 라이카를 붙잡아 케이지가 있던 선반 위에 올려놨다. 먼저 밥과 물을 챙겨주는 사이 소등이 되어버렸다. 어둠 속을 더듬어 조심스럽게 수건을 깔아줬다. 라이카가 도망가지 않았는지 만져보고 싶었지만, 확인하려다가는 도망가버릴 것 같았다.

7시 점등이 되자마자 라이카를 확인했다. 어둠 속에서 삐딱하게 올려 준 수건 위에서 죽은 듯이 잠들어 있었다. 수건째로 조심스레 들어 케이지에 다시 넣었는데도 잠깐 눈을 들어 쳐다볼 뿐 도망가지 않았다. 

“엄마! 엄마! 라이카가 돌아왔어!”     

그때부터 라이카는 케이지에 넣지 않아도 도망가지 않았고, 어른들 몰래 주머니에 넣어 학교에 데려가기도 했다. 마침내 친구가 생겼다.      

라이카는 지나치게 똑똑했다. 아버지 가게에서 가져온 물건들로 이것 저것 만드는 것을 구경하고는 했는데, 언젠가부터는 필요한 물건을 물어다 주기도 하고, 찾지 못하던 물건을 찾아주기도 했다. 

하루는 학교에 라이카를 데려갔을 때, 유난스럽게 주머니를 빠져 나오려고 몸부림을 쳤다. 황급히 화장실로 가서는 주머니에 있던 라이카를 꺼내 들고 말했다.

“라이카 학교에서 이러면 안 돼. 들키면 널 못 키우게 돼”

그 사이 라이카는 잽싸게 도망쳐 버렸다. 수업시간 내내 라이카 생각만 하다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로 달려가서 라이카를 찾았는데,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자 아무일도 없다는 듯 작은 퓨즈 하나를 들고 화장실로 돌아와 있었다. 그날 이후부터 가끔은 화장실로 가서 환풍구에 라이카를 풀어주고 수업이 끝나면 다시 데리고 돌아왔다. 그때마다 뭔가를 들고 왔는데, 대부분 전기 기판에 들어가는 작은 스위치나, 캐패시터 같은 부품이었고, 가끔은 고장난 물건이나, 이어폰, 전선, 단추 같은 작은 것들도 가져왔다. ㅓㅎㅏ 마크가 새겨진 작은 태그에 부품의 이름이나 번호가 씌여 있는 걸로 봐서 연구센터의 물건들이었다. 

아버지 가게의 못 쓰는 물건들로 작은 기계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익숙한 연구센터로 돌아가 물건들을 가져온 것이다. 꽤 큰 것도 많았고, 용도를 알 수 없는 것들도 많았다. 우리는 하나씩 용도를 알아보기도 하고, 여러 가지를 조합해서 작은 라디오부터, 불이 켜지거나 소리가 나는 장난감을 만들기도 했다. 정말 우리가 함께 만들었다. 내가 뭔가를 만들고 있으면 라이카는 조그만 나사를 들고 있어 주거나, 작은 기판 필요한 부품을 제자리에 꽂아주기도 했다. 라이카는 보통 쥐는 아니었다. 우리가 만들기에 몰두할수록 라이카는 더 자주 더 신기한 물건들을 낑낑거리며 가져왔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라이카가 가져온 물건으로 박스 하나를 채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