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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레비엔 Oct 28. 2024

파이프 오르간, 번역기

중앙광장에서 파이프오르간을 처음 봤을 때 부터, 항상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 속에 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우호대피소를 상징하는 ㅏㅎㅓ우호 대피소 마크 보다는 파이프 오르간을 훨씬 닮았다. 실제로 주거 구역은 지름 2.5미터, 길이 3키로미터의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둥그런 파이프 안이다. 

이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 같은 지하도시는 조용할 틈이 없다. 낮에 광장에서 나는 사람들의 소리는 파이프를 타고 울리고, 파이프에서 나는 소리는 광장으로 모여든다. 모두가 잠든 소등 시간조차 공기 여과기가 돌아가는 소리, 파이프가 삐걱거리는 소리,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같은 작은 소리들이 메아리만 남아서 마치 도시가 우는 것처럼 웅웅댄다. 이 도시에서 조용한 것은 우리 가족 뿐이다. 엄마와 아빠는 언제나 부드럽고 우아한 동작으로 대화를 나눈다. 모든 소리가 다 울리는 이 시끄러운 주거 파이프에서 모든 사람이 우리 부모님처럼 아름다운 동작으로 대화를 나누면 얼마나 조용하고 아름다울까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나는 수화로 말하기 보다는 항상 시끄럽게 떠들어 댄다. 내가 시끄럽게 종알거리는 것을 부모님이 너무 좋아하시기 때문에 더 멈출 수가 없다.     

밤이 되어 소등을 하고 나면, 파이프로 된 이 도시는 온갖 비밀을 독처럼 풀어 놓는다. 빠르고 낮아 알아듣기 어려운 진짜 비밀이나, 누군가의 슬픔, 자잘한 다툼, 동네에 떠도는 소문들을 퍼트려 전염시킨다. 숨기고 싶은 이야기는 퍼트리고, 듣고 싶은 이야기는 숨기는 것이 이 도시다. 

하루는 엄마 말고, 나를 ‘귀여운 완두콩’이라고 부르는 딱 한사람, 옆집 아주머니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갈루아네는 부모가 다 농인이잖아. 그래서, 광장에서 가게 했었잖아. 그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은 아닌데 그 비싼 광장 가게를 농인이라고 무료로 줬던 건 배 아파, 우리는 뭐 먹고 살기 쉬운가. 갈루아 아버지가 솜씨가 좋다고 해도, 당신도 중앙 광장 가게를 할 수만 있으면, 금방 소문나서 공장에서 일 안 해도 됐을 거야. 솔직히 말해서, 갈루아네는 사지 멀쩡한데 말 만 못하지 뭐가 문제야.”

“그때가 벌써 몇 년 전인데, 아직도 그 이야기를 해.”

“아니, 농장에서 일 할 때도 그렇고, 배급도 그렇고, 갈루아네가 매번 혜택을 받으니까 그렇지. 우리라고 뭐 살만한 줄 아나.”

“야박하게 그러지 말어. 안 그래도 중앙 파이프에 사는 사람들이 우리 무시하는데, 우리까지 갈루아네 무시하면, 이 땅속까지 기어 들어 와서 사는 게 얼마나 더 지옥 같아지겠어!. 

“그리고 딱히 우리한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사람이 그럼 못 써! 말 조심 하라고, 아직 안 자는 사람 있어. 누구라도 듣는다니까. 갈루아가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그런 흉한 모습으로 앞으로 멀쩡하게 살려면, 부모가 열심히 벌어야지 별수 있어? ”

“아니, 꼼짝없이 죽을 때까지 여기서 살아야 하는데, 당신 고생하는 것 보고, 우리 애들 생각하면 답답해서 그렇지. 흐으  으흑 ”

“알아. 당신 마음 다 알지. 그래도 우리 애들 생각해서 잘 살자고, 갈루아 안 됐잖아. 애는 착한데. 안 됐지. 울지마. 우리 애들은 땅위에서 살게 되길 빌자고.”

그랬다. 아버지 말이 맞았다. 내 고통을 참기 어려울 때는 남에게 넘기고 싶어 한다. 그 고통을 다시 돌려주지 못할 것 같은 가장 약한 사람으로 골라서, 그것이 우리 가족이었고, 이 대화가 우리 가족에 대해서 도시가 들려준 가장 따뜻한 말이었다.      

그렇다. 우리 부모님은 선천적으로 말을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나는 선천적으로 엽록체를 타고났다. 선천적으로 가지지 못한 것과 가진 것 때문에 우리 가족은 사람들이 보기에 어색했다. 사람들은 익숙한 것 속에서 쉽게 어색한 것을 찾아내고, 익숙한 것은 사랑하지만, 어색한 것에는 알 수 없는 불편을 느낀다. 그러나 결국 불편함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하게 적응해 낸다. 차이가 있다면,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하 50미터에 사는 것도 익숙해 지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우리 가족에게는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덕분에 내가 닫은 문은 점점 더 견고해졌다. 어른들은 사춘기라며 놀리기도 했지만, 진실에 눈을 뜬 것은 호르몬 따위가 전달할 수 있는 물질은 아니었다.

라이카는 이따금식 ‘찍찍’ 소리를 내어 말을 걸었다. 동그란 눈을 반짝이면 앙증맞은 손으로 무언가를 가리키기도 하고, 답답하면 직접 물건을 가져오거나 그 위에 올라가기도 했다. 

대부분 먹을 것에 대한 것이라서 쉽게 알아듣지만, 답답할 때도 많다. 라이카가 내 손가락을 쥐고,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쥐만 지을 수 있는 표정으로 눈을 빛내고 있을 때, 모두가 잠들었는데도 답답하다는 듯 자꾸만 소리를 낼 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을까?

그저 ‘안녕, 집사!’ 같은 인사였을까, 아님, 중요한 뭔가를 끝내 이해해주지 못한 것일까? 

어쨌거나 우리는 점점 서로를 이해했고, 사소한 발명품 같은 것을 끊임없이 함께 만들었다.     

라이카가 하루는 이어폰처럼 생긴, 부서져서 선이 삐져나온 것 같은 금속 단추 같은 것을 가지고 왔다. 태그에는 번역기라고 씌여 있었다. 집에 가자 마자 아버지에게 보여줬다. 

“아빠 이거 뭐에요? 라이카가 물어왔어요.”

>>> 오~ 이런게 아직도 있었네, 지금은 쓸 일이 없지만, 땅 위에 살 때 비즈니스맨들이 해외 출장에서 쓰던 번역기야. 여기 작은 구멍 보이지? 여기가 마이크인데, 이쪽으로 상대가 하는 말이 기계 안으로 들어가고, 이 기계가 번역을 해서 전기신호로 바꾸지. 여기 연결된 선을 뇌에 심어서 그 전기신호를 뇌로 직접 전달한단다. 모든 사람이 번역기를 심은 것이 아니리서, 말을 하고 싶을 때는 핸드폰으로 글씨나 소리를 출력해서 썼던 간단한 기계지. 이거는 사용 안 한 새거네.     

“그럼 이거 고장난 것 아니에요? 이것만 있으면 외국 사람이 무슨 말 하는지 저절로 알 수 있어요? 말이 다 다른데 어떻게 번역이 되는거에요? 우와 신기하다.”

>>> 사람이 어떤 단어를 생각할 때 뇌의 활동에서 일정한 전기 신호가 발생하지 그런데, 쓰는 언어는 달라도 전기 신호의 특성은 비슷한 것을 알게 되었지. 정확히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마치 모르스 부호처럼 강도나 길이가 다 다른 전기신호를 암호처럼 알아낼 수 있었지. 그래서, 다른 형태로 말을 하더라도 생각은 특정 전기신호만 주어지면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거지. 단어마다 매칭된 특정한 전기신호가 있는데, 이것을 뇌의 특정 부분에 연결하는 거지. 그래서 모든 언어를 마이크로 입력하면 그에 맞는 전기신호를 줄 수 있게 전기 섬유를 뇌에 직접 삽입하는 거지. 그래서 모든 언어를 뇌가 이해할 수 있는 전기신호로 바꿔주는 장치가 이 번역기이지. 예전에 쓰던 가장 기초적인 기술 중의 하나야. 이제는 이 지하 보금자리에서 사니까 외국인을 만날 일도 없고 해서 어딘가에 쌓여 있었나보네. 

“그럼 우리 이거 쓸 수 있어요?”

>>> 쓸 수 있지. 뇌에 구멍을 뚫을 용기만 있다면, 우리 아들 머리에 구멍을 낼 순 없으니까 그냥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아. 

“아 머리에 구멍을 내야 하는구나, 맞아요. 어차피 외국인도 없는데... 방에 가서 뜯어 볼께요!!”

방에서 뜯어본 번역기는 마이크가 총 세 개 안쪽에는 작은 기판이 있었고, 한쪽에는 충전식으로 사용했던 배터리가 들어있었다. 뜯어 보니 일반 무선 이어폰과 구조가 비슷했다.

“머리를 뚫는 것만 아니라도 이거 써보는 건데 안타깝다. 라이카. 맞지?” 라이카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번역기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내부를 들여다봤다.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라서 한동안 선반 위에 올려놓고 매일 쳐다봤지만, 이내 잊고 말았다.      

어느 날, 엄마가 뜨개질로 만들어 준 작은 토끼 모양 모자를 라이카에게 씌워보려고 했다. 이왕이면 정수리에 박힌 둥근 금속판에 스마일 마크도 그려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라이카 정수리 만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지만, 여기에 내가 스마일 마크를 그려줄게, 그럼 더 이상 슬픈일은 일어나지 않을 꺼야. 그리고나서 토끼 모자도 써보자. 싫어?”

라이카는 아직도 정수리를 만지는 것이 싫었는지 허공에 손을 마구 휘저었다.

“정수리 만지는 것이 아직도 싫은 거야? 그럼~ 토끼 모자라도 써보자 ~ 너무 귀여울 것 같은데~”

몇 번 쓰다듬으면서 부탁하자. 체념한 듯 손 앞으로 와서 납작하게 엎드렸다. 그럼 잠깐만 쓰고 벗겨줄게.

얼른 펜을 꺼내 들고 정수리에 박힌 손톱만한 원형 금속판에 웃는 얼굴 모양을 그리고 잽싸게 토끼 모자를 씌웠다. 매우 마음에 드는지 그제서야 찍찍거리며 뛰어 다녔다.

“머리에 스마일 다 그렸어. 금방 끝났지? 이제 좋은 일만 있을 거야. 토끼 모자도 정말 잘 어울린다. 매일 쓰고 다니자!”

“연구센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면 좋을텐데, 아직도 머리가 아픈건지, 그냥 무서운지 말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럼 도울 수 있을텐데...

라이카!! 그거야! 네가 말해주면 되잖아!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해보자! 이 금속판이 뇌로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르잖아~ 번역기 어디 뒀지? 한동안 여기 놔뒀었는데...”

라이카가 ‘찍찍’ 소리를 내서 쳐다봤더니 선반 구석에서 분해되어 열린 번역기 한쪽을 들고 서 있었다. 

“먼저 전원을 연결해야 해. 무선이어폰에서 이런 배터리를 많이 봤는데, 전용 충전기도 없고, 오래 보관해서 배터리가 남았다고 해도 얼마 쓸 수 없을 거야. 일단 여기 연결된 납땜을 녹여서 배터리를 떼어내고 그 선을 외부 배터리에 연결하면 되겠다. 

그리고, 이 끝에 달린 전기 섬유의 끝을 네 머리의 금속판과 연결 하면 될 텐데, 전기 섬유의 코팅을 벗겨내서 테스트를 해보자. 설마 아프진 않겠지? 그래도 될까 라이카? 아냐 나부터 해볼게. 내 손가락 사이의 막은 수분도 많고, 약해서 전기신호가 더 강력할테니까. 내가 안 아프면, 너도 안 아플거야.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앗 따가워! 전압이 낮은 배터리로 바꿔야겠다. 걱정마, 아프게 안 할게” 

며칠 동안 무선이어폰 같이 생긴 작은 단추에 있는 선을 떼내고 새로 납땜을 하고, 배터리를 연결하고, 테스트를 해보면서 완성했다. 라이카도 내가 뭘 하는지 이해하고 있다고 믿었다. 최소한 관심을 가지면서 계속 도와주려고 했기 때문이다. 

“다 된 것 같다. 이제 테스트 해 봐도 될까?”

드디어 전기 섬유를 여러 개 펼쳐서 라이카 머리에 나란히 자리를 잡아 붙이고 테스트 전원을 켰다. 작은 파란 빛이 들어오면서 작동이 됐다.

“라이카 괜찮아? 아프진 않아?” 라이카를 자세히 살피며 물었다. 괜찮아? 라이카는 뭔가를 말하려는 듯 허공에서 땅을 파듯이 두손을 모으고 바삐 움직였다. 

아프지는 않은 것 같은데, 번역기가 작동을 안 하는 걸까? 무슨 말로 확인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음... 뭐라고 하지? 손?”

라이카가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아니야. 손은 평소에도 잘 주잖아. 왼쪽 손을 달라고 해야 할까? 너 왼쪽이 뭔지 알아?” 

하는 순간 찍찍 소리를 내면서 왼쪽 손을 내밀었다. 알아들은 건가? 우연인가? 어떻게 확인을 해야 작동 여부를 알 수 있을까? 몇 번 더 왼쪽, 오른쪽을 번갈아 손을 달라고 해보다가, 라이카가 좋아하는 간식과, 싫어하는 파프리카를 앞에 가져다 두고 말했다. 

“라이카, 파프리카 가져가.”

평소라면 절대 가져갈 리가 없었다. 라이카는 찍찍 거리며, 파프리카를 가져갔다. 실험이 성공한 것 같다. 라이카가 말을 알아듣는다. 할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해서 확인했다. 

손 잡아!, 귀 만져!, 책 위로 올라가!, 고개 끄덕여! 같은 물어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물어봤다. 라이카도 드디어 시원한지 유독 찍찍거렸다. 한 시간쯤 지나자 뭘 더 어떻게 확인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고, 번역기에 선이 줄줄이 연결되어 있어서, 더 오래 연결하고 있기도 힘들었다. 

한동안은 시간이 날 때마다 번역기를 연결해서 라이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더 물어보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번역기를 연결하고 나면 라이카는 돌아다니기가 불편해서 길어야 한두 시간만 연결할 수 있었고, 라이카의 말을 못 알아 듣는 것은 이전과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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