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카, 이걸 고쳐야 할 것 같아.
먼저 베터리랑 선을 정리해서 항상 사용할 수 있도록... 아니야, 여기에 스피커를 달아서 너도 말하게 고칠 수 있지 않을까?”
그 생각이 든 날부터 학교에 다녀와서 잠들 때까지 어떻게든 번역기가 소리가 나게 하려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다. 한주 내내 씨름을 해도 도저히 성공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안 되나 봐 라이카. 미안해. 내가 그런 것을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지.”
자포자기 심정이 될 무렵 아버지에게 은글슬쩍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이 우호 보금자리에서 가장 솜씨가 좋은 수리기사니까, 어쩌면 답을 주실지 모른다.
“아빠 이어폰에서 소리가 나게 하는 부분이 어디에요?”
>>> 스피커지. 아니 스피커 말고 전기신호를 바꿔서 소리로 만들어주는 부분요. 그건 기판 위에 있는 반도체 칩들이 역할을 하지. 왜 요즘 뭔가를 또 만들고 있구나? 그래서, 요 며칠 바빴구나.
아버지는 분해되어있는 회로기판 몇 개를 꺼내 놓고, 어떤 부분이 제어부고, 어떤 부분이 소리를 출력해주는지, 각 부분의 기능이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아빠 이제 알 것 같아요.”
설명을 다 듣기도 전에 캡슐로 돌아와서 아버지가 유선으로 고쳐준 무선 마이크를 뜯고, 그 위에 번역기 기판을 조심스럽게 올려 둔 다음 번역기 제어칩을 어떻게 연결해야 오디오코덱을 거쳐 스피커로 소리가 나올 수 있을지 연구했다. 처음에는 연구로 시작했지만, 마지막에는 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로 연결해본 것 같다. 이제 손톱만 했던 번역기는 탁상용 스피커에까지 연결되는 바람에 라이카보다도 커지고, 손쓸 수 없이 무언가가 주렁주렁 연결되어 있는 모습이 되어 버렸다. 라이카와 나는 비장한 표정으로 테스트를 시작했다. 이전처럼 신호의 강도를 내 손가락 사이의 막에 테스트를 한 뒤에, 라이카에게 연결 했다. 드디어 번역기의 전원이 들어오고 스피커도 전원을 켰다.
“라이카 왼손, 잘 알아듣겠어?”
라이카는 첫 번역기를 부착했을 때처럼 왼손을 건네줬다.
“그럼 말해볼래?”
“지지직” 스피커에서는 소음만 지직거릴 뿐이었다.
20분을 번역기와 씨름했으나 듣기 거북한 스피커 소음만 날 뿐 라이카와 나는 지쳐 갔다.
“라이카 괜히 고생했어, 나 때문에. 원래보다도 더 거추장스럽게 되버렸네 일단 떼 줄게 쉬자”
이렇게 말하면서 스피커 전원을 돌려 끈다는 것이 볼륨 버튼을 제일 크게 올려버리고 말았다. 찢어질 듯 커진 소음 속에서 희미하게 무슨 소리가 들렸다.
“갈 .루.. 아...”
깜짝 놀라서 스피커를 껐다.
“라이카! 갈루아라고 한 거야? 내가 맞게 들은 거야? 맞아?”
라이카는 왼손을 뻗어 내 손가락을 쥐었다. 다시 스피커를 켰다.
“뭐라고 해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여전히 지지직 거리는 소음뿐이었다. 어른들한테 혼날 각오를 하고 다시 스피커 볼륨을 최대로 높였다. 더 커진 지지직하는 소음에 그 사이로 작은 소리가 들렸다.
“갈루아. 친구..”
얼른 스피커를 껐다.
“라이카가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실험이 성공했나 봐 네가 말한 것 맞지? 아무래도 번역기에서 출력하는 신호가 너무 작은데 스피커가 너무 큰 것 같아. 다른 스피커를 써서 고치면 되겠다.”
그날부터 아버지 가게로 가서 기웃거리며 궁금한 것을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아버지를 돕는다는 핑계로 여러 가지를 어깨너머 배웠다. 번역기를 더 정교하게 고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아버지가 유선으로 고쳐준 무선 이어폰을 분해해서 스피커로 사용할 수 있었다. 매번 전기 섬유를 테이프로 뗏다 붙였다 하는 부분도 개량해서 머리에 붙은 금속 부분와 쉽게 결합하고 뗄 수 있게 자석을 이용해서 붙게 만들었다. 그제야 우리는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었다.
“자 이제 다 됐어. 이제부터는 전원을 켜고 이 동그란 금속 단추를 네 머리에 있는 금속 부분에 올리기만 하면 될 거야 됐다!
라이카 왼손!”
“자. 여기 왼손.”
라이카가 대답했다.
“우와 ~ 라이카! 네 목소리가 들려!”
“갈루아. 나도 네 목소리가 들려~”
“라이카!!”
신나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라이카의 앙증맞은 두 손을 위아래로 흔들다가 머리에 붙은 연결부가 떨어질 뻔했다.
“정말 오래 걸렸다. 그치? 오랫동안 네 말을 알아듣고 싶었어. 네가 파프리카보다 닭고기를 좋아한다는 말 말고, 무슨 꿈을 꾸는지, 가끔은 왜 그러는지 듣고 싶었어.”
라이카가 두 발로 일어나더니 말했다.
“나두 갈루아. 우리. 이야기. 많이. 친구”
눈물이 쏟아졌다. 라이카가 친구라고 했다. 나의 하나밖에 없는 친구, 나의 유일한 대화 상대. 우리는 친구다.
흑흑 맞아 라이카 니가 내 친구야. 한참을 말을 잊지 못하고 라이카를 쓰다듬었다.
“싫어... 토끼”
“싫어, 토끼는 무슨 뜻이지?? 아! 매일 쓰고 다닌 그 토끼 모자가 싫었구나! 모자를 씌워주면 찍찍거려서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ㅋㅋㅋ”
이렇게 번역기 무 #2가 완성되었다. 우리가 만든 번역기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고민하다가, 라이카와 나를 연결한 정수리의 금속과 선의 모양을 따서, ㅁㅏ, 무라고 부르기로 했다. 스피커가 없었던 것을 무 #1, 말하고 들을 수 있는 완성형 번역기가 무 #2 이다.
처음에 라이카는 말할 수 있는 단어가 많지 않았으나, 나와 대화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자연스럽게 모든 이야기를 사람처럼 나눌 수 있었다. 아마 라이카가 당한 실험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쥐가 된 것 같았고, 언어를 사용하면서 서로에게 배우는 것도 많아져서 금세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라이카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은 라이카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라이카는 길을 잃는 법이 없었고, 안 가본 곳도 없었다. 연구센터에서 태어나 평생을 갇혀 살았고, 많은 시간을 미로 실험을 당했기 때문에 길을 찾는데는 천재적이었다. 풀어 줬을 때 도시의 모든 곳을 가봤다고 했다. 도시의 이쪽 끝과 저쪽 끝까지, 중앙광장에 있는 정부 기관들과 그 뒤의 기계실까지.
연구센터 이야기도 들려줬다. 연구센터 안에는 다양한 연구기관들이 있는데, 다른 보금자리 우호 #1, #3과 연락을 하는 것도 사실이고, 각종 첨단 기계며 컴퓨터 같은 것들이 가득 차 있다고 했다. 라이카가 있던 연구실에는 다른 동물들도 있었는데, 라이카는 미로 실험을 하다가 다른 햄스터 보다 똑똑해서 뇌에 뭔가를 이식하고, 정수리에 있는 금속 칩을 심은 다음에 선을 연결해서 여러 가지 실험을 당했다고 했다. 결정적으로는 나와 같은 녹색 피부를 가진 동물실험도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수다를 멈출 수가 없었다. 말을 하게 되면서 알게 된 수많은 사실들, 사소한 궁금증, 무슨 이야기를 하든 다 재밌었다. 라이카가 사실은 주당이라는 사실 같은 것 말이다. 햄스터들은 음식이 없을 때를 대비해 가리는 것 없이 다 잘 먹기 때문에, 좋게 말하면 발효 된, 썩기 직전의 과일을 많이 먹는다. 그래서 많은 햄스터들이 술을 잘 마신다고 했다. 이런 쓸모 없는 이야기들을 하면서, 하루 종일 캡슐에 틀어박혀 라이카와 놀았다. 라이카를 키우는 것이 비밀이듯이, 라이카와 대화하는 것도 세상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었고,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었다.
여느 때처럼 라이카랑 이야기하던 중에 아빠가 방문을 노크했다. 라이카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가 온 것이다.
>>> 이거 가질래?
아빠가 쓰다 남은 기판 같은 것을 가지고 들어오셨다.
“아빠! 라이카 좀 보세요. 라이카! 아빠한테 인사해.”
“안녕! 아빠 집사!”
>>> 갈루아 이건 또 무슨 장난이야? 진짜 같구나
“이거 장난 아니에요. 정말 라이카가 말하는 거에요.”
“갈루아가.. 말하는 기계 만들어.”
>>> 정말이냐? 장난이 아니라고?
아버지는 깜짝 놀라서, 라이카와 선을 줄줄이 늘어뜨리고 있는 번역기를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 이런 일이 가능하다니, 우리 아들이 정말 똑똑하구나.
아버지는 나보다 더 흥분하셨다.
>>> 정말 잘 만들었구나! 이런 생각을 해내다니!
한참을 꼼꼼히 살펴보시더니, 줄을 늘어뜨리지 않고, 작게 만들어서 항상 라이카가 번역기와 연결할 수 있게 고치자고 했다. 엄마도 농장에서 돌아오셔서 라이카가 말을 하는 것을 보시고는 토끼 모자를 만들어 준 것에 대해 사과하셨다.
엄마와 아빠의 도움을 받아서 번역기를 고쳤다. 엄마는 라이카의 검정색 조끼를 만들고 등에는 배터리를 넣을 수 있게 주머니와 배터리 고정 밴드를 허리에 벨트처럼 만들었다. 라이카는 배터리를 배낭처럼 메고 다니는 카우보이 같은 모습이 되었다. 아버지는 며칠 가게 문을 닫고, 두 개의 기판에 나눠져 줄을 늘어뜨리고 있던 번역기와 무선이어폰의 기판을 하나로 합치고, 못 쓰는 핸드폰에서 더 작고, 볼륨이 큰 스피커로 바꿔주셨다. 정수리로 이어지는 전기 섬유가 상하지 않도록 단단하게 구부러진 호스에 선을넣어 보호하고 라이카의 뒷통수를 지나 배터리 아래쪽으로 정리해 넣었고, 길쭉한 배터리 케이스 앞쪽에는 핸드폰에서 꺼내온 스피커를 연결하고 기판은 배터리 케이스 아래쪽에 정리해 넣었다. 이제 번역기를 매번 연결할 필요없이 라이카가 항상 메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 다됐다. 라이카 입어보자. 어때 무겁니? 어디 불편한 데는 없고?
“라이카. 이제 항상 말해 좋아.”
이렇게 번역기를 완성했다. 최종 버전의 ㅓㅁㅁㅏ, 무무가 완성 되었다. 무무: 번역기는 라이카를 우리와 연결하는 기계이자 언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