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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레비엔 Nov 05. 2024

부통령의 연설

이제 항상 라이카를 학교에 데려갔다. 라이카는 그때마다 연구센터에서 내가 필요한 것들을 조금씩 가져오기도 하고, 다른 곳에 가서 보고 온 것을 말해주기도 했다. 라이카가 말하게 된 것이 내 이상한 외모나, 친구가 아무도 없는 처지를 바꾼 것도 아닌데, 학교에 가는 일 마저 즐거웠다. 때마침 보금자리의 국경일 행사를 앞두고 있어서 한참 학교에서 합창 연습을 했다. 다른 때 같으면 어떻게 하면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 설 수 있을까를 궁리했겠지만, 나 같은 녹색 피부는 어디 있어도 눈에 띈다고 생각했더니 노래하는 것마저 즐거웠다. 문득,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이 노래를 불렀다면 어떤 목소리일까?, 어떤 노래를 좋아할까?

집으로 와서 합창 연습 이야기를 하다가 물었다.

“엄마,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 뭐야?”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는 익히 아는 노래였지만, 아빠가 좋아하는 노래는 처음 듣는 노래였다. 여기서는 라디오 방송으로 노래가 나오거나, 아니면, 노래를 아는 사람이 불러주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빠가 좋아하는 노래는 아무도 몰랐다.

>>> 옛날 노래야 「Life goes on」이라고 옛날 가수들 노래야. 아빠가 땅 위에 살 때 자주 들었지. 언제 마지막으로 들었는지도 잊고 있었네.           

아버지는 꿈꾸는 듯한 처음 보는 눈빛으로 노래가 어떤 내용이 이었는지를 천천히 공들여 설명해 주셨다. 지금처럼 간절하게 아버지의 노래를, 목소리를 들어보고 있은 적은 없었다. 처음으로 아름답고 우아해보이던 수화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부모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이 얼마나 서글픈 것인지, 목소리를 대신할 만큼 얼마나 사랑해주셨는지 가 슴시리게 알 수 있었다.      

한동안 고민하다가 라이카에게 부탁을 했다. 

“사람을 위한 「무: 번역기」를 만들고 싶어. 혹시 연구센터에서 번역기를 더 가져다 줄 수 있어?”

“응. 번역기는 연구센터 창고에 수없이 많아. 매일 조금씩 가져올게.”

번역기는 지금은 사용할 수 없는 이전 시대의 간단한 기술이다. 원래 사람의 뇌에서 작동하던 것이었기 때문에, 스피커만 연결하고, 머리를 뚫지 않아도 되도록 개량한다면 언젠가 아버지의 노래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라이카는 연구센터를 들락거리며 필요한 물건을 가져오고, 학교에서 여러 가지 책을 찾아보면서, 사람을 위한 번역기를 만들기 위해 공부했다. 사람은 뇌의 크기가 쥐보다 크기 때문에 번역기 성능을 높이기 위해서 뇌에서 언어를 담당하는 브로카 영역과 베르니케 영역 두 곳에 연결할 수 있도록 번역기를 두 개로 만들어야 했다. 한쪽은 저장장치와 배터리 다른 한쪽에는 스피커를 연결했다. 라이카처럼 뇌 연결부에 네모난 금속을 부착하고 나머지 부분은 자석으로 붙였다 뗏다 하면서 고장도 수리하고, 충전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문제는 뇌에 구멍을 두 개 뚫어야 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었다. 뇌에 구멍을 뚫지 않고 전극을 연결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봤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기계를 만드는 것은 해볼 수 있었지만, 뇌에 직접 전기섬유를 연결하지 않고 전기신호를 보내는 것은 열심히 생각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어쨌든 인간을 위한 번역기를 완성했다. 듣지 못하는 사람과 말하지 못하는 사람, 말이 통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번역기를 완성했을지도 모른다.      

완성을 해 놓고도 테스트를 할 수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문제에 「무: 번역기」는 다시 선반 구석에 박혀 먼지만 쌓이게 되었다.      


 

## 이주     

2211년 우호 #2 보금자리 40년째. 6월 아침 7시.

아침 7시 모든 구역이 점등되며, 갑작스럽게 방송이 시작되었다. 침대에 누워서 라이카를 쓰다듬고 있다가, 뭔가 심각한 일인가 싶어 귀를 기울였다.

“안녕하십니까. 우호 #2 보금자리 부통령 안정희입니다. 그야말로 앞이 깜깜한 지하 보금자리 생활에도 높은 시민의식으로, 지난 40년간 안정된 사회를 꾸려오신 600만 시민 여러분께 먼저 감사를 전합니다. 오늘은 모두가 애타게 기다려 온 소식을 전해드리기 위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태양과 소행성 충돌로 최대 100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 되었던 태양풍이 지난 2년간 급속히 약해져 기온과 방사능 농도가 낮아졌습니다. 마침내 지상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추첨을 통하여, 내일 첫 만명이 지상으로 첫 이주를 시작합니다! ”

“엄마!!” 

나는 정신없이 라이카를 손에 들고 엄마의 캡슐을 열고 뛰어 들어갔다. 박수 소리와 함성 소리, 울음 소리로 모든 파이프가 일제히 울렸다. 태어나서 그렇게 큰 소리를 들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어제 서울 춘천 간 우호 #1 보금자리 대통령과 문경 구미 간 #3보금자리 부통령과 통화를 마쳤습니다. #1, #3 보금자리의 시민들은 이미 지상으로의 이주를 시작했으며, 최대의 인력을 투입해서 우리 #2 보금자리의 이주를 돕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조용히 하라면 손가락을 들어 입에 가져다 대면서도, 이미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빠와 나, 라이카까지 엄마의 침대에 걸터앉아, 엄마를 다독이면서 부통령의 연설에 집중했다.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멀리 화성으로 떠나보내고, 절박한 심정으로 지하 49미터에 위치한 이 우호 보금자리, 한 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서로 의지하며 견뎌왔습니다. 가혹한 환경 속에서도 약탈이나 범죄 없이 절망에 지지않고, 평화롭게 사회를 유지시켜 주신 덕분에 마침내 지상으로 이주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민 여러분! 저는 단 한 번도 지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꿈에서조차 #2 우호 보금자리를 지키며 눈을 감았습니다. 그럼에도 이 거대한 어둠 속에서 저를 살게 한 것은...... 좌절에 굴복하지 않을 수 ...   있었던...  힘은! .. 바로 ...   그 .. 힘은!! ”

부통령은 말을 잇기 힘들어, 더 힘주어 연설을 이어가고 있었고, 아버지도, 라이카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바로!  우리 아이들입니다. 이 우호 보금자리에서 나고 자라, 하늘 아래 한 번도 서 보지 못한 우리 아이들! 저 역시... 두 손자들을 지상 위로 돌려 보낼 수만 있다면! 저의 생명 따위는 한 줌의 흙이 되어, 영원히 우호 보금자리를 지켜도 좋다고, 항상 신께 기도 드렸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 모두는 이제 곧 오늘을 회상하며, 지상에서 손을 맞잡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것입니다. 600만의 인구가 이주 하는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지난 40년에 비하면, 앞으로의 이주를 위한 기다림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닙니다. 저는 #2 보금자리 마지막 한 명까지, 꼭 지상으로 돌려보낼 것입니다. 제가 마지막 이주자가 될 것 임을 약속합니다! 

600만의 인구가 이주 하는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부디. 평화롭고 안전하게 이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함께 돌아갑시다. 모두 안전하게 지상에서 다시 만납시다! 감사합니다.”

부통령의 연설이 끝나자 우리 가족은 서로를 끌어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다른 캡슐에서도 우는 소리가 새어 나와 파이프를 타고 몇 배의 메아리를 만들었다. 우리집 뿐 아니라. 지하도시 전체가 울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생방송이 라디오로 이어집니다. 주민 여러분은 생방송에 집중해 주시고, 지시에 따라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아나운서의 말을 듣고, 라이카가 잽싸게 라디오를 켰다. 

“우호 제2 보금자리 시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경찰청장 이수호입니다.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 모든 보금자리 내 안전 및 질서유지에 필요한 정부시설 및 공공기관, 소방서, 병원, 경찰서, 군사 시설을 제외한 모든 기관의 업무가 중단됩니다. 모든 시민들께서는 개인 캡슐과 주거 파이프 내에 머무시면서, 지시에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이 조치는 최근 태양풍 약화로 인해 지상으로 이주를 위한 준비를 위한 조치입니다. 이 시각 이후로 각 농장, 파이프로 이어지는 연결통로는 봉쇄되고, 중앙광장을 향한 입구에는 군경이 통행을 제한합니다. 

내일 최초 10개의 주거 파이프 주민이 먼저 이주를 시작한 이후로, 더욱 안전한 지상으로의 이주를 위해서, 여러 가지 상황 및 시설을 보완 후 가급적 빠른 시간내에 전 보금자리 주민의 이주를 실시할 예정입니다.

첫 번째 이주에는 각 천 번대 파이프 중에서 1개씩 총 10개의 파이프가 추첨을 통해 결정되고, 그 외에 정부의 필수 인원이 우선 이주합니다. 그러나, 600만 인구가 다 이주하기에는 몇 주에서 최대 몇 달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그때까지 지금까지 보여주신 높은 시민의식으로 안전하게 마지막 한 명까지 이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주거 파이프에 머무르십시오.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 이동을 제한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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