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을 기다리기 힘들 것 같지만, 오히려 잘 됐다. 기다리는 동안 꼼꼼히 물건을 잘 챙겨갈 수도 있고, 갑자기 정든 캡슐을 떠나기도 아쉬웠다. 기다리는 동안은 뭘 해도 집중이 안 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도 희망으로 가득했다. 우리는 가장 분주한데 아무것도 못 하는 이상하게도 행복한 한 주를 보냈다.
이주 하루 전, 우리 파이프에 안내사항을 전달할 직원이 나왔다. 700명의 파이프 주민을 모아놓고, 가져가야 할 것, 두고 가야 하는 것, 지켜야 할 것들을 안내해줬다.
“안녕하세요. 추첨에 뽑히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저는 8천번대 파이프 담당 주무관입니다. 궁금한 점이 많으실텐데요. 한 번에 3만명이 움직이는 대규모 이동이고, 1조는 낮 7시부터 11시까지, 2조는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반드시 이동을 마쳐야 합니다. 그러니 꼭 질서를 지켜 주셔야 합니다. 이 파이프는 1조입니다. 다섯 시에 이 파이프만 점등되고요. 6시까지 파이프 입구로 나오시면 됩니다. 나머지 사항은 지상에 올라가면 다 알게 되실 것입니다. 보안을 위해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지상에 도착하면 인도를 도와줄 지상측 인원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전날 밤 짐을 다 싸두고, 낮 5시가 되자 우리 파이프만 점등이 되었다. 다른 곳은 다 조용한데 우리 파이프 사람들만 모두 일어나 짐을 챙겨 하나둘 나왔다. 우리는 모두 6시까지 중앙광장에 모였다. 우리가 이용할 출구는 우호 보금자리 9000번 옆에 맨 끝에 있는 4번 출구 파이프였다. 우리 파이프에서 겨우 500미터 남짓 떨어진 곳이어서, 가까운 파이프에서 출발한 사람들은 걸어서 이동했다. 멀리 있는 파이프에 사는 사람들은 더 일찍 일어나 이동을 하는 듯했고, 평소에 차가 별로 없는 중앙광장에서는 버스로 쉴새 없이 사람들을 실어나르고 있었다. 출구 뒤 중앙광장에는 지상으로 옮길 물건들이 가득 적재되어 있었다. 버스에 내려서 파이프 번호대로 줄을 선 뒤, 앞선 번호부터 차례로, 출구 파이프의 입구로 들어가고 있었다.
항상 짐들이 가득 쌓여 있어 파이프의 입구가 있는 줄도 몰랐던 비밀 파이프 앞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고, 안쪽에 노란색으로 4번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진 둥그런 해치로 된 문이 이미 활짝 열려 있었다. 그 안에는 다시 3킬로미터나 되는 긴 복도와 윗 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경사로가 펼쳐져 있었고, 경사로 사이사이 엘리베이터도 있었다.
7시 30분쯤 우리 파이프 인원은 체크를 마치고, 드디어 비밀 파이프의 입구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지금부터 안쪽으로 3번째 입구로 가셔서 거기서부터 이동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시면 됩니다. 총 13층을 올라가셔야 합니다. 앞사람이 나올 때까지 쭉쭉 올라가시고, 지상 문 열릴 때까지 잠시 대기하셨다가, 9시에 지상 열리면 앞사람 따라서 쭉쭉 나가셔야 합니다. 지체되실 것 같거나 힘드시면 줄 한 쪽으로 나오셔서, 쉬다가 올라가시고 흐름을 막으시면 안 됩니다. 신속하게 이동하셔야 합니다. 노약자 아니면 인원이 많아서 엘리베이터 이용 못 합니다. 출발하세요!”
우리 뒤로 남은 파이프는 3~4개 밖에 없었기 때문에 비밀 파이프에 들어갔을 때는 앞에 이미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먼저 온 사람들은 안쪽 계단을 이용하는지 눈에 보이는 모든 공간에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150미터 정도를 이동해서 경사로를 오르기 시작했다. 경사는 완만했으나, 한 층의 거리가 꽤 길어서 한 층을 오르는데 한참 걸렸다. 8층쯤 오르자 사람으로 꽉 차서 더 갈 수 없었다. 앞쪽이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으나 아직 8층이라서 뭘 볼 수는 없었다. 그저 저 높은 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사람들은 서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상의 문이 열릴 때까지 30분이나 남았다는 사실을 알고, 바닥에 앉아 있었으나 진행요원이 나타나 매우 다급하고, 단호하게 외치고 다녔다.
“일어나서 앞사람 앞에 딱 붙어서 간격을 좁히세요. 곧 문 열립니다. 신속하게 이동해야 합니다! 일어나세요!!”
이렇게 외치고 다니는 바람에 우리는 만원 버스처럼 꽉 끼인 채 불편하게 서 있었다. 몇 분만 참으면 지상에 가 있을 것이다.
“엄마 힘들어? 금방 땅 위로 올라가니까 조금만 참아. 라이카도 잘숨어 있어.”
엄마는 뭔가 대답을 하려고 했지만, 사람들 사이에 꼭 끼어 있어서 손을 들어 올려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그저 괜찮다는 눈빛으로 웃어주셨다. 아버지와 엄마 나는 손을 잡고 일렬로 서 있었으나 조금씩 인파에 밀리면서 손을 놓쳤다가 다시 잡았다 하면서 기다렸다. 9시가 되기 전에 지상으로 통하는 문이 열린 것 같았다. 윗층에서부터 조금씩 발자국 소리,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 바삐 움직이는 소리가 나면서 조금씩 앞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동에 속도가 붙어 11층에 도착했을 때, 윗층이 매우 소란스러워지면서 사람들이 앞쪽에 있는 사람들이 뒤로 밀려왔다.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뒤로 물러날 여유가 없었다. 사람들에게 앞뒤로 밀려서 옴짝달싹할 수 없자, 앞 뒤에서 서로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났다. 그때, 갑자기 윗 층에서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엄청나게 큰 굉음이 몇 차례 나면서 위층의 사람들이 뒤로 넘어지거나 밀리면서 쓰러졌다. 우리 쪽에 서 있던 사람들도 여기저기로 밀리면서 한꺼번에 넘어졌다. 순식간에 먼지가 가득 차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곳곳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고, 나도 사람들에 밀려나는 힘에 밀려 한참이 밀려나는 바람에 부모님과 떨어졌다. 서로 깔리고, 앞은 안 보이고 일어나 서 있을 수도 없는 아수라장이었다. 너무 꽉 끼어 라이카도 걱정이 됐다.
“라이카! 라이카! 라이-카아!”
“갈루아. 나 괜찮아.”
다행이 라이카는 내 목 뒤 셔츠 속으로 올라와 숨어있어, 다치지 않았다.
“비켜요! 아!!아! 뒤로 물러나요!”
“사람 깔렸어요! 살려줘요!”
“아 악! 도와주세요!”
쓰러질 수도 없이 꽉 낀 채 사람들은 비명을 질러댔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꽉 끼어 한참을 사람들 사이에 겨우 버티고 서서, 부모님을 찾았으나 자욱한 먼지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빠! 엄마! 엄마! 아빠!!”
내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안심하기를 바라면서 무작정 부모님을 불렀다. 사방에서 내지르는 사람들의 소리 사이에서도 내 소리를 들으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나보다 한참 위쪽에서 벽에 기대 간신히 버티면서 어머니를 찾고 있었다. 그때 한 번 더 큰 소리가 났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사람들 틈에서 빠져나가려는 사람도, 어머니를 찾으려는 우리도 꽉 끼어 잘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방송이 나왔다.
“오늘 이주는 중단되었습니다. 전원 내려가세요! 부상자는 엘리베이터 이용하세요. 이주 중단되었습니다. 부상자 엘리베이터 이용하세요.
전원 내려가세요!!”
아버지보다 조금 위쪽에 어머니가 사람들 사이에 끼어있었다. 2~3층까지 사람이 꽉 차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시 내려가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아버지는 그 인파를 헤치고 어떻게든 어머니쪽으로 올라갔으나 그때는 이미 사람들이 빠지기 시작했고, 어머니는 의식이 없이 축 늘어져서 아버지에게 안겨 있었다. 빨리 사람들을 지상으로 보내려고 간격을 좁힌 것이 문제였고, 지상에서도 뭔가가 무너졌다.
“부상자 이쪽으로 엘리베이터 타세요!”
아버지가 엄마를 업고 정신없이 내려오다가 엘리베이터가 열린 쪽으로 달려갔다.
우리는 엄마를 정신없이 병원으로 옮겼으나, 의식이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잠깐이었다. 우리가 어머니를 놓치고 아수라장이 된 통로에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긴 시간이 아니었다. 엄마가 아팠던 것도 아니고, 큰 사고를 당한 것도 아니고, 그냥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뿐이다. 이럴 리가 없다.
사람들에 끼어, 그 잠깐 사이에 두 층을 겨우 남겨두고, 그렇게 그리던 지상을 눈앞에 두고,,,,, 이럴 수는 없다. 나는 어머니 위에 쓰러져 세상이 다 무너져라 꺼이꺼이 울었다. 아버지는 침상에도 뉘이지 못한 어머니를 무릎에 안고 흔들며,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으..으.. 으 어어..”
슬픔의 무게에 나의 무게까지 더해져 아버지의 슬픔은 터져 나오지 못하고 아버지 안에 차곡차곡 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