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레비엔 Nov 06. 2024

수면아래

“속보를 전합니다. 

어제 8시 50분쯤 4번 출구를 통해서 이주를 진행하던 중 사고가 있었습니다. 원활한 이주를 위해 지상에 구조물을 설치하던 초대형 크레인이 넘어지면서, 출구 빌딩이 붕괴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지상으로 이주하던 보금자리 주민 중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이주 일정에 차질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지상의 상황이 전해지는 대로 곧 이주를 재개할 예정입니다. 정확한 소식은 차후에 방송을 통해 전해드리겠습니다.”     

그 사고로 우리 #2 보금자리의 비밀이 드러났다. 왜 우리만 가장 늦게 이주가 시작 되었는지, 4개의 출구 중에 2개만 이용할 수밖에 없었는지, 담당자들이 왜 그렇게 서둘렀야 했는지, 왜 보안을 신경 써야 했는지 알게 되었다. 사고보다도 남은 사람들의 불안이 터질 듯이 커지고 있어서, 방송에서는 마지못해 진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주 중에 충격적인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주하던 주민들이 사망하고 다친 것도 매우 안타까운데요. 그 이후에 4번 출구를 봉쇄하지 않았습니까?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던 겁니까? 우리가 사는 #2 우호 보금자리가 바다 아래에 있다고 보도 되었는데요. 어떻게 바다 아래 있게 된 겁니까?”

#1, #3 보금자리와 달리 우리 #2 보금자리는 해발고도가 낮은 부안-논산 지역에 위치 해 있습니다. 보금자리를 건설할 당시에는 충분히 내륙 안쪽으로 들어온 위치라서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아마도, 태양 폭발 직후에 강력한 태양 에너지가 방출되면서 지구의 온도가 급속히 올라가서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상승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거의 40년간을 바닷속에 있었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구조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었습니까?”

“불행 중 다행으로 서해는 조수 간만의 차가 크기 때문에 썰물이 되면, 보금자리 출구 부분에 물이 빠져서 갯벌이 그러납니다. 그때, 입구에 있는 진흙을 파내고, 출구를 열어서 구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입구를 닫고, 밀물이 되면 다시 보금자리 전체가 바다 아래에 있게 되는 거라고 생각 해도 되겠습니까?”

“네. 정확합니다.”

“지금 듣기로는 4번 출구가 봉쇄되었다고 하는데요. 정확히 어떤 사고가 일어난 겁니까?”

“이주가 시작되었을 때, 이용할 수 있는 출구는 1,4번 이었습니다. 2,3번 출구는 수심이 깊고, 갯벌 한가운데 있어서 구조가 어려운 반면에, 1, 4번 출구는 안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 접근이 쉬운 4번 출구에 구조물을 세워서 조석에 상관 없이 이주가 가능하게 하려고 초대형 크레인이 작업 중이었습니다. 초대형 크레인이다 보니, 지난주의 태풍에도 그대로 바다에 세워두었는데요. 태풍으로 크레인 하부의 지반이 약해져서, 크레인이 넘어졌습니다. 그로 인해 4번 출구 와 지상 사이에 연결된 13층으로 된 출구 건물이 일부 붕괴했습니다. 문제는 이 사고로 지상으로 향한 입구를 닫을 수가 없게 되면서 출구 건물로 바닷물이 밀려들어 왔고, 다행히 진흙이 함께 밀려 들어오면서 침수는 멈춘 상태입니다.”

“상황을 들어보니 더 걱정이 되는데요. 그러면, 추가적인 붕괴 위험이나, 보금자리 전체에 안전은 문제 없습니까?”

“9000번 출구와 붙어 있는 도시 바깥쪽 4번 출구 파이프와 연결된 출구 건물에 대형 크레인이 넘어지는 사고가 나면서, 일부 침수가 되었습니다. 이내 밀물이 되어서, 진흙이 다시 쌓이면서 급속한 속도로 침수가 되는 것은 일단 멈췄습니다. 출구 건물 자체가 무너졌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침수와 붕괴가 계속 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행인 점은 우호 보금자리는 건축 기간의 단축과 구조적인 안정성을 위해서 개별 파이프로 제작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일부 침수가 발생하더라도, 봉쇄하면 다른 구역에 피해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100년 이상을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행이군요. 그러면 이제, 사용할 수 있는 출구가 1번 하나만 남았는데요. 1번 출구는 문제 없습니까?” 

“1번 축구는 가장 수심이 얕고, 안정적이라서 안전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전 인원이 이주하는 데는 얼마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보십니까?”

“출구가 하나 남아있기 때문에 속도가 좀 느려지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만, 하루 3만 명가량 구조되면, 늦어도 4~5개월이면 모두 구조될 것으로 보입니다. 1번 출구는 안정적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모두 무사히 구조될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내내 바닷속에 있었다. 그 사실을 미리 밝혔더라면, 비밀을 만들어 놓고,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을 급하게 밀어붙이지만 않았더라면, 이렇게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 살아갈 걱정을 하루만 미루었더라도 이렇게 눈물이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윗 층에 있었던 사람일수록 사상자가 많았다. 13층에 있던 사람들은 많은 사람이 다치고, 사망했다. 그 짧은 시간에 사망자가 195명이나 되었다. 그중에 한 명이 우리 어머니였다. 땅이 꺼지는 슬픔이었다.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는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껍데기만 남아 돌아왔다. 처음 우리가 출발했던, 나고 자란 파이프 #8927-249 우리 캡슐로, 아버지의 전파사와 내 캡슐 사이에 어머니의 캡슐이 단정하게 정리된 채로 덩그러니 비어있었다. 그날부터 아버지는 전파사에 침대를 몇 년 만에 다시 펴고, 아버지 캡슐로 돌아가 주무셨다. 우리 사이에 아직 어머니가 있는 것처럼, 밥을 먹을 때나, 낮에는 어머니 캡슐에서 지냈지만, 소등이 되기 직전에는 어머니의 캡슐을 비워두고, 각자의 캡슐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우리는 이전에도 우리 파이프에서 가장 조용한 가족이었지만, 이제 숨이 막힐 듯 조용한 가족이 되었다. 우리 파이프 사람 중에도 다친 사람은 많았지만, 지상으로 올라갔거나, 사망한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우리들은 지상으로 올라가던 그 통로에서 분노나, 절망을 가져왔다.


우리 파이프 사람들은 바로 다음 이주자가 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여론이 ‘이미 한번 기회를 얻은 사람들이 재수가 없었기로서니, 다시 기회를 주는 것은 형평에 어긋나다.’고 해서, 다시 추첨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나마도 모든 사람들이 나가고 마지막 차례가 되어야한다는 것을 겨우, 운에 맡길 수 있게 허락해준 비참한 꼴이 되었다. 우리는 둘로 갈려 다시 점등 때마다 추첨 결과를 들으며 매일 절망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과 더 이상 추첨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으로 갈렸다. 우리도 한동안 라디오를 켜지 않다가, 어느 날부터 아버지가 내방으로 와서 라디오를 켜고 추첨 방송을 함께 들었다. 어떻게 하다 보니 7시가 되면 어머니 방에 모여 아침을 먹으면서 추첨 방송을 매일 듣게 되었다. 듣고 있다기보다는 그냥 켜 두었다.      


출구가 하나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주는 속도가 나지 않았고, 이제는 우리가 바다 밑에 있는 것을 모두가 안다. 보금자리에 남은 사람들을 안심시키려고 시도 때도 없이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 전문가들이 떠들었지만,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물과 진흙이 밀려 들어오면서 충격을 받은 출구 건물이 추가로 붕괴 되는지 보금자리는 밤마다 공포스러운 굉음으로 남은 사람들을 조롱하고 있었다. 게다가 4번 출구 파이프와 중앙광장의 연결부가 파손되어서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아직은 깊이가 있어서 물이 새어 들어오지는 않지만, 하중을 받으면서 결국에는 중앙광장도 무너질꺼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사이에 육지로 이주한 사람들은 300만쯤 되었고, 나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희망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잔인한 기다림과 불안, 공포가 커지고 있었다. 이제 소등 이후에 보금자리를 울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들은 아무 의심 없이 균열의 증거라 믿게 되었고, 결국 정부는 8천번대 사람들을 이미 이주시킬꺼라는 소문도 돌았다.      


남은 한 개의 출구로 매일 3만 명 정도가 빠져나갔다. 사람들이 동요하면서 이제 우호 #2 보금자리의 곳곳에는 군과 경찰의 통제가 이뤄지면서, 거의 한 달 동안 학교는 쉬었고, 아버지의 전파사를 찾아오는 사람도 없어서, 우리는 매일 각자의 캡슐에 있었다. 매일 7시 낮이 되면 일어나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캡슐로 가서 파이프를 추첨하는 방송을 들었지만, 우리에게 두 번의 행운은 없었다.      



그즈음 어머니가 사람들 사이에 끼어, 괜찮다는 눈빛을 보내면서 웃어주시던 모습이 자꾸 생각났다. 출구 건물이 무너졌을 때, 먼지로 자욱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아무 의심없이 엄마는 무사할거라고 생각했다. 그저 나를 걱정할 것을 염려해, 엄마가 대답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무작정 엄마를 불렀었다. 엄마가 소리를 듣고 내가 무사한 것을 알기를 바래서였다. 엄마는 나를 걱정할 뿐, 다치거나 아플 리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다니! 멍청하기 짝이 없다. 엄마는 마지막으로 내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까?

엄마는 나를 불렀을까?

어머니의 목소리를 단 한 번도 듣지 못한 것이 그렇게 원통할 수가 없었다. 소리가 필요한 줄을 모를 정도로 사랑해주셨으나, 마지막으로 엄마가 딱 한 번만, “갈루아~” 이렇게 부를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책상 한쪽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던 「번역기:무」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걸 잘 만들었으면,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번지면서 딱히 고치거나 하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할 일도 없어서 번역기를 이렇게 저렇게 만지고 있었다. 아버지도 손님도 없는 전파사에서 하루 종일 무언가를 고쳤다가 분해했다가 하고 계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