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부진 선생은 과학 역사를 가르치는 60대 백발의 남자였는데, 멍한 눈빛과는 달리 날카롭고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항상 화가 난 듯 보였다. 지상에서 살 때는 똑똑하고 천재 소리를 들었다는데, 지하에서 사는 세월이 이 남자에게 생명 말고 다른 모든 것을 빼앗아 간 듯했다.
“이런 매가리 없는 애들이 우리 미래를 책임지게 될 거라니!! 자 똑바로 앉아!
오늘은 인간이 얼마나 오만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지.
이 똑똑한 만물의 영장이, 왜? 이 껌껌한 땅속에 살게 됐지?”
“태양 폭발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짝 긴장해서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부진 선생님은 지하로 들어오던 그날에 아직도 살고 있다. 화성으로 가는 우주선 개발에 참여하고도, 우주선 출발 직전 문제가 생겨서 지구에 남을 수밖에 없던 사람. 어쩔 수 없이 지하 보금자리로 들어오던 날, 그의 시간은 멈췄는데, 몸은 돌이킬 수 없이 늙어버린, 그 누구보다 절망한 사람이었다. 대단한 배경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절망 속에 폭발하기 일쑤였고, 점점 더 낮은 직책을 맡다가,
결국 우리 학교의 선생님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을 견제할 만한 사람이 없어서, 폭력만 쓰지 않을 뿐 학생들에게 온갖 성질을 부리곤 했다. 우리는 나부진 선생님 시간이면 바짝 긴장해서 트집 잡히지 않도록 노력해야 했다.
“13일의 금요일에는 그런 중요한 실험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
특히나 소행성 이름을 혼돈의 어둠이라고 지어놓고서는! 그 행성의 이름 말해봐! 너 영재. 일어나!”
“아포피스입니다.”
“아포피스 소행성 설명해 봐.”
“아포피스는 00년 전인 2004년 99942번째로 발견된 소행성입니다.
직경 370m로, 발견 당시에는 지구와 충돌할 것으로 예측했으나, 소행성 중에 지구에 가장 가까이 근접한 소행성이었습니다 ”
“좋아! 말 안 해도 1, 2차 지구방어 실험까지 설명해야지! 2022년 09월 27일 지구는 1차 지구 방어실험에 성공했지. 아직, 앉지 말고~ 이거 설명하고 질문할 거야. 기다려!”
눈치를 살피며 앉으려던 영재는 벌을 서는 것처럼 아래를 보며 다시 일어섰다.
“지구 방어실험은 소행성 궤도 변경 실험이었지.
1차 실험에는 먼 궤도에 있는 소행성 궤도에 ‘다트’ 우주선이 충돌하는 실험이었는데,
우주선 발사에서부터 충돌까지 10개월이나 걸렸지.
높으신 분들은 그런 대단한 실험의 결과가 10개월이나 걸리는 것이 싫었지.
그래서, 과학자들을 괴롭혔어, 당장 결과를 내놓으라고.
2029.04.13. 재수 없는 13일의 금요일에 2차 지구 방어실험을 하게 된 거야. 지구와 가장 가깝게 지나가는 소행성 아포피스를 향해서. 실험은 성공적이었고, 높으신 분들은 만족했지, 아마 죽을 때까지 실험이 성공한 줄 알고 만족했을 거야. 아니지! 높으신 분들은 실험 따위는 안중에도 없으니 잊었겠지. 덕분에 우리가 쥐새끼처럼 땅속에서 살 줄도 모르고, 그 실험이 너무도 무모했던 거지. 예상보다 소행성의 궤도는 불규칙하게 변했고 200년 뒤에는 태양에 가서 박아 버린 거지. 꽝!!”
선생님은 손바닥에 주먹을 부딪히는 모양을 하고서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그대로 멈춰서 원래의 멍한 표정으로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 가만 두면 50억 년을 갈 태양을 폭발하게 만든 것이 인간이라니, 믿을 수가 없군... 어쨌거나 그렇게 태양 폭발이 일어났고, 그 후로 100년간은 어떤 생명체도 지상에서 살 수 없게 된 거지.
자. 이영재. 태양풍이 뭐야?”
“태양에서 방출된 양성자나 입자들이 지구를 향해 오는 것입니다.”
“맞아. 이런 입자들이 첨단 장비들을 고철로 만들고, 나도 땅 위에 살 수 있다고 해도, 쓸모없는 과학자 나부랭이로 만들었지, 100년이나 지속되는 바람에 나는 다시는 땅 위를 못 보고 여기서 죽겠지...
자~ 이게 우리 조상들이 한 짓이다. 과학이 얼마나 근시안적이고 믿을 게 못 되는지 알겠지? 원래 인간이 오만해. 오만한 존재야. 너희 중 몇몇은 지상을 보고 죽을 수 있겠지, 그래서 이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똑똑한 애들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는 거야!! 너희가 정말 똑똑한지는 모르겠다만...
그 옆에 일어나!
인류를 구원한 것도 과학이었지. 다행인지 비극인지 아포피스가 태양과 충돌할 것을 120년 전에 예측했지. 인류가 어떤 대책을 세웠지?”
“두 가지 방향의 대책을 세웠습니다. 가능한 많은 인구를 화성으로 이주시키고, 남은 인구는 지하에 안전 도시를 건설해서 대피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안전을 위해서 각 나라마다 몇 개의 시설로 나눠서 지하 도시를 만들었고, 그중 하나가 이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두더지 굴 같은 우호 보금자리지. 그럼, 화성으로 이주할 수 있었던 기술적 배경 설명해 봐”
“당시에는 화성을 단시간에 테라포밍 할 기술이.... ”
“잠, 잠깐! 이거는 쟤가 대답하는 게 낫겠다. 갈루아 일어나!”
선생님이 나를 호명하는 순간, 교실은 숨죽인 듯 얼어붙었다.
“아니다. 앞으로 나와”
“네...”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을 하고는 꾸물거리며 교실 앞쪽으로 걸어가서 선생님과 멀찍이 떨어져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간신히 부여잡고 서 있었다.
“가까이 와~ 왜 그렇게 멀찍이 서 있어? 자~ 이제 화성으로 이주할 수 있었던 기술적 배경을 설명해 봐.”
화성 이주를 설명하는데 갑작스럽게 나를 불러낸 것만으로도, 앞으로 얼마나 수치스럽게 만들지 짐작할 수 있었다. 떨리는 것을 숨기고 싶었지만, 목소리까지 가늘게 떨려왔다.
분노 때문인지 수치스러움 때문인지는 구별할 수 없었다.
“지구인이 화성에 살기 위해서는 대기 조건을 지구환경과 비슷하게 만드는 것이 테라포밍의 가장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그러나, 대기 조성을 지구와 비슷하게 만드는 것은 당시 기술로도 수천 년 이상이 걸리는 일이었기 때문에,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한 생명공학으로 문제를 돌파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렇지, 바이오 테크놀로지를 오만한 인간이 신처럼 다루게 된 거지. 그래서,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지?”
“....”
이번에는 차마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저 눈물을 보이기는 싫다는 생각뿐이었다.
“왜 대답을 못해? 얼른 대답해!”
“식물의 유전자와... 인..인간의 유전자를 결합해 피..피.. 피부에 엽..록..체가 발현..되도록 만..들..었고, 이를.. 전 인..류..에게 적용...했..습..니.다.”
“알았어. 대답하기 힘들어하니까 내가 대신 말해주지.
그 결과 사람이 화성의 주 대기를 이루는 이산화탄소와 빛으로 호흡이 가능하게 되었고,
사람에 따라 전체 필요에너지의 20~50%를 광합성으로 충당할 수 있게 되었지.
매우 효율적인 인간이 된 거지. 다만, 인간의 기술은 완벽한 법이 없지!
전체 인구의 30% 정도는 유전자 발현이 되지 않아, 이 지하에 처박히게 된 거지.
말만 들어서는 과학이 인류를 구원한 것처럼 보이지, 그런데 이론과 실재는 다르단 말이지,
게다가 우리는 이런 생생한 연구의 성과물이 바로 눈앞에 있잖아.
이게 바로 산교육이지!
자~ 다들 잘 봐! 엽록체는 피부 아래 있고, 표피가 투명해야 엽록체가 빛을 받아들여 광합성을 할 수 있지.
그래서 이렇게 녹색으로 보이는 거야.”
나부진 선생은 들고 있던 지휘봉으로 내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리고! 기공이 있어야 호흡을 할 수 있는데, 기공은 수분을 조절해서 여닫지.
그래서 축축해야 하지. 만져봐~”
가장 앞에 앉은 아이에게 내 손을 끌어당기면서 말했다.
“어때? 네 손 보다 훨씬 축축하지? 또, 나뭇잎처럼 넓은 표면적을 가져야 하지.
그래서 이렇게 귀가 펼쳐질 수 있도록 발현되었지. 생각보다 탄탄한데!
박쥐의 날개 피부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군.”
축 쳐진 내 귀를 펼쳐서 모두에게 보여주면서 말했다.
“그리고~ 아~마~ 여기도 막이 있을걸?”
거칠게 내 셔츠를 들어 올리며 허리부터 겨드랑이까지 이어진 막을 모두에게 보여 줬다.
“그렇지. 이래야 광합성하기 유리하니까. 연구소 동료도 막이 생긴 것을 봤었지. 아마 지금쯤 화성으로 간 사람들은 이보다 더 이상한 모습으로 변했을지도 모르지!
이 갈루아라는 개체는 더 특이한 점이 있지. 내게는 잠시 발현되었다가, 화성으로 가는 우주선에 타기 직전 사라진 이 엽록소 유전자가 갈루아의 부모세대에는 발현되지 않다가 매우 적은 확률로 갈루아에게만 발현되었다는 거지. 이 우호 보금자리의 65만 인구 중에 한 명이니까, 나머지 1, 3 보금자리에도 몇 명 더 있을지도 모르지.”
나는 셔츠가 반쯤 삐져나온 채로 땅을 쳐다보면서 어떻게든 울지 않겠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부모님 이야기까지 나오자 눈물 대신에 소리를 지르며 선생에게 덤비지 않을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서 참아야 했다.
“자- 이게 인간의 오만이 신에게 도전한 끔찍한 결과지.
과학을 맹신해서 신에게 도전한 조상들 덕분에 너희들과 나는 이 지하 50미터에서 죽게 됐고, 후대에는 발현하지 않을 줄 알았던 엽록체 유전자가 다음 세대에서도 발현되는 증거를 우리는 보고 있는 거지. 우리 조상들도, 우리도 책임지지 못할 신 놀음을 했던 거야. 우리의 후손들은 이제 어떤 모습이라도 이상하지 않지! 이 정도면, 인간의 오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으리라 본다. 이제 현실을 좀 알았겠지! 과학이든 신이든 답이 없다고!! 이 세상에서는! 이상!!
이렇게 말하고는 마치 자신이 모욕이라도 당한 듯, 지휘봉으로 다른 손바닥을 가볍게 탁탁 내리치며 빠르게 교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