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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레비엔 Oct 21. 2024

ㅏㅎㅓ #2 우호 보금자리

 ㅏㅎㅓ

 #2 우호 보금자리  

어릴 때 아버지는 중앙 광장에서 전파사를 하셨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가 되면, 학교가 있는 중앙 광장과 가까운 캡슐로 가족 모두를 옮겨준다. 내가 입학하면서 우리 가족은 42, 43, 44번 캡슐로 옮겼다. 중앙 광장의 가게 자리는 너무 비싸서 우리는 엄두도 낼 수 없는 가격이지만 학교를 다니는 동안 운 좋게 광장에 가게를 얻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은 내 덕분이라며 부모님은 항상 고마워하신다. 지금은 중학생이 돼서 다시 중간쯤에 있는 324, 325, 326번 캡슐로 옮겼다. 중학생이 되면서 중앙 광장 가게 임대료도 혜택도 없어지면서,  결국 전파사도 내놓게 되었다. 지금은 집에서 일을 하신다. 아버지 침실 캡슐을 고쳐서 전파사 작업실로 개조하고, 두 분이 함께 어머니 캡슐에서 주무신다. 그래도, 아버지의 전파사는 우호 보금자리에서 가장 실력이 좋기로 소문이 나서 비싼 가게를 빌리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서 집으로 찾아온다. 어머니는 무리해서라도 가게를 유지했으면 하셨지만, 아버지는 덕분에 어머니와 함께 지내서 좋다고 웃으시고는 했다. 나도 학교를 다녀오자마자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어서 더 좋다.     


모든 학교는 주거 파이프를 나가서 중앙 광장으로 쭉 나가면 바로 있다. 대부분 자신이 사는 주거 파이프와 가까운 학교를 다니는데, 우리 파이프에서는 나만 1시간이나 더 가서 이 도시의 가장 중앙부에 있는 4000번 파이프 근처의 중앙 중학교에 다닌다. 처음에는 한 번도 못 타 본 버스를 매일 탈 수 있고, 말로만 듣던 중앙 광장의 파이프 오르간을 볼 수 있어서 좋았는데, 요즘은 1시간이나 일찍 일어나는 것이 너무 힘들다. 그래도, 부모님은 8000번대 파이프에 사는 애들 중에서 나만 중앙 중학교를 다니게 된 것을 너무 좋아 하신다. 파이프 내에 캡슐 위치는 어린아이가 있는 가정이거나, 병원에 자주 가야하는 사람, 광장 근처에 직장이 있는 사람들을 우선으로 광장과 가까운 1~300번 사이로 바꿔주지만, 파이프 위치는 바꿔주지 않는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나는 9872번 파이프 주민이다. 그래서 중심부에 있는 학교에 가게 되면서, 매일 1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등교하게 되었다. 스쿨버스는 보금자리 양쪽 끝 1번과 9332번 파이프에서 각각 2대씩 출발하고, 중학생, 고등학생으로 나눠 총 4대가 다닌다. 


“학교 다녀 오겠습니다.”

>>> 밥먹고 가야지.

나가려는 데 엄마가 가방을 붙잡는다. 

“배 안 고파요. 스쿨버스 아저씨가 버스가 오래 되서 요새 속도가 더 안 난다고 늦지 말라고 했어요. 참, 엄마! 농장에서 올 때 라이카 집에 넣을 풀 좀 가져다주세요. 오늘 갔다 와서 바꿔 줄 거에요. 다녀 올게요”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안아주셨다. 중학생이 되었는데도, 학교에갈 때마다 안아 준다.     


처음 버스를 타고 학교 가던 날이 아직도 생각난다. 지나다니는 것을 보기만 했던 자동차를 이날 처음 탔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우리 파이프에서 30km 떨어진 중심부로 가는 것도 그날이 처음 이었다. 중앙 광장을 따라 이어진 4차선 도로를 따라 학교를 가면서 보는 도시의 풍경은 장관 이었다. 


버스 창 밖으로 끝없이 파이프 입구가 광장을 향해 나 있고, 길이 70km에 달하는 직사각형 모양의 중앙 광장 쪽으로 줄지어 있는 파이프 입구와 입구 사이에는 상가가 하나씩 튀어나와 있는 것이 마치 피아노 건반 같아 보인다. #2 우호 보금자리에는 총 28000개의 파이프가 있다고 하는데, 공장, 주거, 농장 파이프가 한 세트가 되어 각각 9332개씩 있다. 물론 나는 절반 밖에 보지 못 했지만, 넓은 세상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한 번도 열린 적 없는 용도를 알 수 없는 비밀 파이프가 도시의 양 끝과 중심부에 4개가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창밖을 보다가 굳게 닫힌 파이프의 입구를 발견하고는 소름이 돋았다.

이 4개의 파이프는 아무도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모른다. 누군가는 죽은 사람이 가는 곳이라고도 하고, 지상에 있던 모든 보물을 다 모은 곳이라고도 했다. 그저 헛소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한동안은 스쿨버스 안에서 비밀 파이프를 못 보고 지나칠까 봐 창밖만 보고 다녔다.      


중앙 광장은 가운데 있는 건물 때문에 나눠져 있는데, 학교나 관공서, 병원 교회처럼 사람들이 모여야 하는 대중 시설을 위한 건물들이 주로 자리잡고 있다. 이 건물들 앞 뒤로 도로가 나 있는데, 학교에 갈 때는 파이프 입구 쪽을 지나서 익숙한 풍경이었는데, 돌아올 때는 처음 보는 중앙 광장의 뒷모습에 정신을 빼앗겼다. 이 지하도시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시설들이 거기에 다 있었다. 경찰서, 소방서, 군 지휘부 같은 주요시설의 본부들이 있었고. 그 뒤쪽으로는 불규칙한 구조의 기계실이 간간이 접근금지 푯말을 붙이고 서 있었다. 대부분 공기 여과시설, 발전소, 수도시설, 중앙 통제소, 차고나 창고 같은 것들이었다. 건물만 보고도 알 수 없이 심장이 뛰었다.      


우리 학교는 #2 우호 보금자리의 가장 중심부에 있다. 첫날 스쿨 버스에 내렸을 때는 살짝 얼고 말았다. 바로 눈앞에 대한민국이라고 적힌 정부 중앙 청사가 있고 양쪽으로 법원과 의회가 있다. 태극기가 걸린 청사 앞 한가운데에는 말로만 들었던 크고 아름다운 파이프 오르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도시의 구조 때문에 전기가 없이도 소리가 잘 전달되기 때문에, 행사 때는 언제나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도시 곳곳에 울려퍼진다.      


이중에서 꼭 가보고 싶은 장소가 있는데 바로 연구센터다. 사람들은 이 연구센터에 우리의 미래가 달렸다고 했고, 이 시설에는 지구에 몇 개 남지 않은 컴퓨터와 텔레비전 같은 것들로 가득 차 있다고도 하고, 우리나라에 있는 다른 두 지하 도시, #1, #3 우호 보금자리와 통신이 된다고도 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이 연구센터에 가보고 싶었는데, 가끔 이 연구센터에서 주워온 쓰레기를 사람들이 팔러오기 때문이다. 보통은 고장난 전기렌지, 라디오, 전등 소켓 같은 것을 수리하는 일이 전부였으나 연구센터에서 나온 물건들은 모두 신기한 것 뿐이다. 이전 시대에 사용했던 고장난 스마트폰, 무선 키보드나 이어폰 같은 것이 제일 많았고, 용도를 알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아버지는 이런 것들을 유선으로 고쳐서 팔았다. 가끔 아버지는 내가 좋아 할만한 물건이 들어오면 억지로 이상한 곳에 납땜을 해놓고, 고치지 못하겠다면서 나에게 선물하고는 했다. 내 방을 가득 채운 여러 가지 물건들도 다 아버지 가게에서 나온 쓸모없는 것들로 만든 것이다.      

연구센터에 꼭 가보고 싶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따로 있다. 중학교는 적응하기 힘들었다. 몇 명만 빼고는 모두 3~4000번대 파이프에 사는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애들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고, 학교가 끝나고도 동네에서 함께 어울렸는데, 나만 스쿨버스 시간에 맞춰 항상 일찍 돌아오느라 어울릴 기회가 없었다. 처음에는 내 발음이 이상하다고 놀림을 받았는데, 8천 번대 파이프에 사는 것을 알게 된 뒤로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게 되었다. 중앙 중학교에 다니는 나를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하시는 것을 알기 때문에 꾹 참다가 말을 꺼낸 적이 있었다. 


>>> 아빠, 나 우리 동네 중학교로 옮기면 안돼?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수화로 묻는 나를 보고 심각함을 느끼셨는지, 며칠 뒤 엄청난 선물을 주셨다. 

>>> 아들! 요새도 학교 다니기 힘들어?

“아니, 괜찮아. 그냥 일찍 일어나기 싫어서 그런 거야. 신경 쓰지마, 알아서 할게.”

>>> 학교는 옮기고 싶으면 옮겨도 되지만, 다른 사람은 어떤 말과 행동으로도 너의 영혼을 다치게 할 수 없다. 네가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지, 강인하고 아름다운 영혼은 결국 적에게도 존중받게 된다. 아이들은 아직 미숙한 영혼이지, 시간이 지나면 그들조차 존중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 되거라. 상처받지 말고, 꿋꿋하게 행동해라. 알았지?

“네...”

풀이 죽어 조그맣게 대답했다. 아버지가 다시 물었다.

>>> ‘라이카’가 뭔지 알아?

“알아요. 우주에 처음으로 간 강아지잖아요.”

>>> 맞아. 너 라이카 볼래?

“그림으로 많이 봤어요.”

>>> 아니야, 여기 있어,

그렇게 말하면서 구석에 있는 상자에 덮힌 천을 걷어 내셨다. 거기에는 얼룩 무늬가 있는 하얀 ‘아기 비단 털쥐’가 한마리 움직이고 있었다. 나와 햄스터 ‘라이카’는 이렇게 만났다.

“아빠!!! 얘 나 주는거에요? 진짜!!!”

>>> 조용히 해. 들키지 않게 조심히 키워야 한다. 강아지는 아니지만, 우리 ‘라이카’는 최초로 땅 위로 돌아간 쥐가 될 거야. 그때까지 잘 돌봐야 해. 

“걱정마세요. 제가 잘키울꺼에요. 아빠~~ 고마워요.”

라이카는 연구센터의 실험용 개체였다. 아버지가 거기서 일하는 사람의 물건을 고쳐주고 힘들게 아픈 라이카를 얻어다가 정성껏 치료한뒤 선물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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