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0년 통합 119년. 서울. 새벽 4시. 동물,인간 통합 종합 병원 응급실
“하나쌤, 오늘이 진짜 마지막이네. 새벽에 가끔 간식사가지고 놀러오면 안될까? 이제 당직안서도 되니까 실컷 잘 수 있잖아. 가끔 밤에 잠 안올 수도 있고. 맨날 당직서는 우리가 불쌍하지도 않아?”
“알았어, 올게, 온다고 몇 번을 말해”
그때, 응급실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네. 서울 통합 병원 응급실입니다.”
찡그린 표정으로 통화를 마친 수의사 레지던트 하나가 말했다.
“지훈쌤, 교통사고 환자 8분 뒷면 도착한답니다. 중증 다발성 외상이고, 호흡 없고, CPR하면서 온다고 해요. 준비하세요. 그니까, 마지막날이라고 하지말라고 몇 번을 말해요!”
“왜 인간 환자 들어 오는데, 하나쌤이 화를 내요?”
“고양이 환자도 같이 온다구요, 의식 희미하고, 구강내 출혈이 있어서, 내출혈 가능성 있대요. 자꾸 마지막 날이라고 하니까 사람 환자랑 동물 환자랑 같이 오잖아요”
“하나쌤, 5분 남았다. 준비하자”
서울 통합 종합병원이 동물병원과 인간병원이 통합 되었다고는 하지만, 수의사와 인간 의사가 같이 근무하는 일은 없는데, 응급실만은 예외다. 하나는 수의사이고, 지훈은 인간 의사다. 과는 다르지만, 나이도, 연차도 비슷해서 몇 년간 이 병원에서 가족보다 더 자주 보며 지냈다. 오늘은 하나의 마지막 근무다. 지금부터 아침 7시까지 3시간만 잘 버티면 무사히 마지막 당직 근무를 마치는데, 축하를 건낸다고, 자꾸 마지막, 마지막 거리는 지훈쌤 때문에 바빠진다고 생각하면서 황급히 환자를 맞을 준비를 마쳤다.
입구까지는 인간환자와 동물환자가 같이 들어오지만 이내 양쪽으로 갈라져 각기 다른 공간에서 처치를 받는다. 구급대원이 침대를 밀고 응급실로 급히 들어온다. 사람 환자는 CPR을 하느라 정신없지만, 작은 바구니에 담겨온 고양이 환자는 의식은 희미하지만, 중증은 아닌 것 같다고 한다. 진료실 병상에 환자를 옮기고 보니 온몸에 피범벅이다. 다행히 인간 환자의 피인지 심각한 외상은 없다. 다만, 들은대로 구강 내 출혈이 있다. 재빨리 혈압을 재고, 심전도를 확인했다. 내출혈은 아닌 것 같아서 한숨 돌렸다. 입안의 출혈을 닦아내 보니, 혀를 깨물어서 피가 나고 있었고, 송곳니 한 쪽이 부러졌다. 다행이다.
“환자분! 들리세요?? 어디 불편하신지 말씀하실 수 있으세요?”
그제야 의식이 돌아오는지 대답은 못 하고, 힘없이 피묻은 앞발을 들어 올린다.
“환자분 말씀을 못 하시겠어요? 제가 하는 말 이해는 되세요?”
역시나 대답 없이 앞발만 들어올린다.
“환자분 상태 괜찮으신 것 같은데, 말씀을 못 하시니까. 혹시 다른 문제가 있는지 몇 가지 검사를 해볼거에요. 혹시 불편하신 곳 있으면, 여기 인턴 선생님한테 말씀해주세요. 아셨죠?”
고양이 환자는 이해했다는 듯이 눈을 맞춰준다. 다른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야 할 것 같다.
“인턴, 이 환자 내출혈 없나 확인해야 하니까. 시티 찍고, 번역 모듈 문제 생긴 것 같으니까 번역 칩이랑 포트 모두 검사해서, 문제 있는 부분 제거하고 시술이나 교체 진행한 다음에 환자 상태 리포트 해”
“알겠습니다. 하나쌤”
20분도 지나지 않아 인턴이 돌왔다.
“하나쌤. 고양이 환자 리포트 하겠습니다. 종은 도메스틱 숏 헤어 고양이이고, 나이는 2~5세 사이로 추정되며, CT 문제없어서 내출혈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설봉합도 마쳤습니다. 예상하신대로 무무 번역포트에 문제가 생겨서 포트와 칩 제거하고 모듈 전체 다시 삽입 시술 마쳤습니다. 이틀 지나면 전기 섬유 코팅부가 녹아서 평상시처럼 대화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상입니다.”
“인턴, 정말 리포트 이상 없어?”
“네. 내출혈 없고, 다른 문제 찾지 못했습니다.”
“잘 생각해봐. 오늘은 마지막날이니까 기회를 한 번 더 줄게.”
“죄송하지만, 문제 없는 것 같은데요....”
인턴은 자신없는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마지막이니까, 잘 들어. 정말 저 환자가 숏헤어 같아?”
“...”
급격히 자신감을 상실한 인턴은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만 떨구고 말았다.
“얼굴 무늬, 귀 크기, 귀 뒤의 점 확인해봐! 귀 뒤에 흰 점 있어? 없어?”
그때서야 인턴은 다급히 환자 귀뒤를 확인한다.
“스.. 스라소니 같습니다.”
“스라소니랑은 체격이 다르잖아. 레오파드 캣이 뭐야?”
“삵, 삵입니다.”
“맞아. 삵, 살쾡이야. 진료하면서 살쾡이 처음 봤지? 오늘 가서 ‘레오파드 캣’이랑 ‘아무르 레오파드 캣’, ‘스라소니’ 찾아보고 특징 익혀둬. 원래 구별이 쉽지 않아. 한 번도 못 보면 더 그렇지. 그런데, 너는 서울 최고 통합병원 수의사잖아. 환자가 의식이 없어서 확인이 어려울 때는 수의사가 정확히 종을 판단해야 해야 해! 알았어? 앞으로 다른 레지던트 오면 이런 실수 하지 말고!! 그동안 고생했어~”
“하나쌤,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인턴은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옛날에는 너 같은 애가 삵인지 고양인지 구별도 못해서, 멸종위기 종을 길고양이라고 안락사하고 그런 거야.”
다시 굳어지는 인턴의 얼굴을 보면서, 실수를 깨달았다.
“아니야 긴장 풀라고, 농담이야! 농담! 미안, 미안~ 마지막 날까지 나는 농담에는 소질이 없구나...”
“선생님 그런 농담하시면, 무섭습니다. 그래도, 정말 감사했습니다.”
매일 반복되던 인턴과의 이런 실랑이도 어쩌면 그리울 것이다.
번역 모듈은 새로 삽입하면 전기 섬유를 감싼 코팅제가 체내에서 녹는데 이틀이 걸려서, 그동안은 언어 번역이 되지 않는다. 오늘 온 삵 환자와는 대화가 안 된다는 뜻이다. 어떻게 진료내역을 설명해야할지 앞이 깜깜했다. 일단은 큰 문제 없이 환자 상태가 안정된 것을 체크한 뒤, 같이 온 인간환자 상태를 확인하러 갔다. 아직 5시도 되지 않았다. 마지막 응급실 근무는 두 시간이 더 남았다.
인간 응급실 병동은 예상외로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이제 막, 사망 선고를 하려는 참이었다.
‘마지막 당직에 사망자라니!, 우리 고양이 환자는 경상이라 한두 시간 이면 퇴원시켜야 하는데, 집사 사망 사실을 어떻게 전하지? 말도 안 통하는데 곤란하게 됐네’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지친 지훈쌤의 목소리가 나즈막히 울린다.
“현재 시각 5시 06분, 환자 사망하셨습니다. 하~~아~~ ”
환자를 뒤로하고 힘없이 병상에서 나오는 지훈쌤에게 위로를 건낸다.
“지훈쌤, 고생하셨어요. 괜찮아?”
“응 괜찮습니다. 손을 쓸 수가 없었어요. 그쪽 환자는 어때? 괜찮아?”
“네 괜찮아요. 경상이에요. 근데, 번역 모듈 전체를 다시 심어서 대화가 안돼. 그래서 접수내역 확인하러 왔어요. ”
“하나쌤, 아까 구급대원님이 접수해주고 가셨어요. ” 센스있게 간호사가 데스크에서 대답했다.
“주소도 있어요?”
“네, 인간 환자 분은 주소, 나이 성함 다 있는데, 고양이 환자분은 이름만 있어요.”
“아 그 고양이 환자, 고양이 아니야. 접수 내역 수정해줘요. 삵이야. 레오파드 캣으로 적으면 됩니다. 구별하기 힘들고 숫자가 많은 종이 아니라서 고양이 인줄 알았나보네, 우리 인턴도 고양이라고 하더라고요.”
“오. 삵 환자는 처음 봐요. 수정해두겠습니다. 상태는 괜찮아요?”
“네, 다행히 경상이라 괜찮아요. 이제 퇴원해야 하는데, 번역 모듈 새로 심어서 대화가 안 되서 걱정이에요. 아! 주소 적어주세요. 우리 환자 응급실에도 못 있고 퇴원해야 하니까, 제가 퇴근하면서 집에 데려다 주고 갈께요.”
“어머, 멀면 어떻하시려고요. 마지막날인데, 그렇게 퇴근하셔도 되겠어요?”
“마지막이라고 자꾸하지 말라니까, 마지막 날인데 뭐 어때, 내일 출근 안 해도 되는데, 괜찮아요. 환자 집에 데려다 주는게 뭐 일이라고. 다치고 집사 잃은 환자가 힘들지. 환자 이름이 뭐라고요? 이름은 꼭 알아야 해. 이름은 알아들을꺼 아니에요.”
“인간 환자 이름은 김미연님이고, 동물 환자 이름은 다비님 이네요. 주소도 여기 적어 드릴께요. 하나쌤 보고 싶을 것 같아요.”
간호사가 주소를 적은 쪽지를 건냈다.
7시가 다 되어간다. 마무리를 하러 동물 병동으로 돌아갔다. 환자를 어떻게 깨우나 걱정하면서 침대로 다가갔는데, 기운 없어 보이지만 다행히 깨어있었다.
“다비님! 담당의 하나입니다. 다비님! 이름이 다비 맞아요?” 이름이 맞는지 눈을 좀 더 크게뜨고 꼬리 끝을 가볍게 들었다가 떨어뜨렸다.
“환자분 혀가 찢어져서 봉합했고요. 왼쪽 송곳니도 부러져서 3분의 1만 남았어요. 그건 심각하지 않으니까 나중에 치과 치료 받으시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무무’ 번역포트 하고 칩 둘 다 훼손돼서 제거하고 다시 시술했습니다. 전기 자극을 전달할 신경 섬유를 감싸고 있는 코팅 부위가 녹아서, 뇌와 안정적으로 연결되는데 이틀 정도 걸리고요. 그때부터는 정상적으로 대화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제거한 번역 모듈은 퇴원하실 때, 찾아가시면 되는데, 제가 챙겨놨어요. 이따 드릴께요. 경상이라 이제 퇴원하셔야 합니다. 제 말 일부라도 알아들으셨어요??”
목소리가 커진다고 번역 모듈이 없는 환자가 알아들을 리가 없는데도, 답답한 마음에 목소리만 커진다. 역시 영문을 모른다는 듯 환자는 동공이 새카맣게 커지면서 멍한 표정을 짓는다.
“후 번역 모듈을 새로 심었는데, 알아들을 리가 없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훨씬 쉽게 다시 대화를 시도해 본다. 너무 어리지만 않으면 웬만큼은 알아들을 것이다.
“다비님, 집, 가야해, 지금. 나랑, 함께, 집.”
손가락을 두 개 펴고는 자는 시늉을 하면서
“두밤 자면, 말 할 수 있어요. 알겠어요?”
환자는 알아들은 것인지 아닌지 알수 없는 표정으로 부드러운 앞발을 뻣어 내 손위에 살포시 얹는다.
“집. 나랑. 지금 같이 가요. 주소지 ** 여기 맞으시죠? 여기로 제가 퇴근하면서 데려다 드릴께요. ”
환자의 앞발을 쓰다듬으며 환자를 안심시켰다. 차마 집사가 죽었다고는 전하지 못했다. 집에 데려다주면, 다른 가족들은 이미 소식을 알고 있을 것이고, 살아 돌아온 환자와 함께 슬픔을 나눌 것이다. 지금은 어차피 번역 모듈이 작동하지 않아서 못 알아 듣는다.
그렇게 무사히 마지막 두시간을 보내고, 낯선 주소만 달랑 들고, 집사는 죽고, 몸도 마음도 다친, 혀까지 꿰메서, 야옹 소리도 못 내는 희귀한 고양이 환자인 삵까지 데리고 마지막으로 서울 통합병원을 나섰다.
마지막 퇴근이라서인지, 비극의 한가운데를 통과한 환자와 함께하는 퇴근이라서 인지, 그동안의 수많은 과거가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사라진다. 인간과 동물의 직업적 구분이 없어진지 오래지만 ,의사라는 직업은 양손을 써야 하는 특수한 기술적 한계 때문에, 병원의 의료진은 90퍼센트 이상 인간이다.
가끔 소형 동물 외상 전문의로 햄스터나 족제비 같은 양손이 자유로운 소형 동물 의사가 있기는 하지만, 직립시간이 짧고, 털이 많아서, 위생을 유지하려면 인간에 비해서 절차가 복잡한 편이다. 심지어 바닷속에 사는 어류나 고래같은 포유류 전문의도 거의 인간이기 때문에 의사는 인간이 독점하다시피한 특수직으로 분류된다.
때문에, 하나는 수의사인데도 병원에 근무하면서 사람들끼리만 살아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학 생활과 인턴, 레지던트를 거치는 동안 거의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성인이 된 이후로 모든 시간을 수의대와 병원을 오가면서 인간 친구, 인간 동료들과만 지냈다.
하나의 세상에서 인간은 의사이고, 동물은 환자로 명확히 나눠져 있었다. 수의사가 되고 싶었던 이유와 정반대의 삶이 펼쳐지고, 익숙해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모두가 만류하는데도, 서울에서 가장 큰 통합 종합병원에서 전문의가 되는 것을 포기했다. 이제 진짜 세상으로 나갈 때가 되었다. 이 희귀한 고양이만 집에 데려다 주고 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