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레비엔 Oct 20. 2024

ㅏㅎㅓ: #2 우호 지하 대피소.

  

200년전지하 49미터.  

ㅏㅎㅓ: #2 우호 지하 대피소.     

항상 궁금한 것이 있었다. 왜 낮이 1시부터 시작하지 않고, 7시부터 시작할까? 1시부터 하루가 시작한다면, 밤은 24시까지로 끝나고 새로운 날은 깔끔하게 1시부터 시작할 수 있을 텐데. 

‘왜?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일까?’ 

‘왜? 낮은 7시 부터이고, 왜 밤은 22시부터 일까?’    

 

애매한 숫자로 시작되는 시간, 낮 7시. 모든 곳에 불이 켜지며,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낮 방송이 시작된다. 이때부터는 침실에서도 불을 켤 수 있다. 사람들은 식사를 하고, 학교에 가거나 자신이 일하는 파이프나 상점 등으로 출근을 한다. 대부분 자신이 사는 캡슐 침대 바로 옆 파이프가 직장이기 때문에 출근 시간은 몇 분 안 걸린다. 일과가 끝나면 다시 주거 파이프로 돌아온다. 나는 아빠나 엄마의 캡슐에서 밥을 먹고 놀다가, 자기 전에는 부모님이 내 캡슐로 와서 땅 위의 이야기를 해주신다. 


22시에 밤이 시작되면, 모든 곳의 전력이 차단되면서 소등된다. 부모님은 일찍 자야 키가 큰다고 하지만 소등이 되고 온 세상이 깜깜해진 뒤에도 잠이 안 올 때가 많다. 이때부터는 중앙 광장, 파이프의 통로, 개인 캡슐에도 모두 전기가 차단된다. 이 우호 지하대피소에서 얼마나 살아가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아끼면서 살아야 한다고 한다. 


“엄마, 왜 낮이 1시가 아니고 7시부터 시작해?” 

>>> 그건, 지상에서 살던 때의 낮 시간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야. 지상에 살 때는 7시면 해가 떠올라서 온 세상이 밝아졌지.

“전등을 켠 것 처럼?”

>>>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밝고 누부시지.

“그럼, 중앙 광장만큼 밝아?”

>>> 중앙 광장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밝고 따뜻하게 빛나지.

“그럼 땅 위에는 도대체 해가 몇 개나 있는거야?”

>>> 딱 하나 있단다. 딱 하나뿐인데도 세상 그 어느 전등보다 밝아고 따뜻하단다.

“어떻게 전등 하나로 온 세상을 다 비출 수가 있어? 이 전등 하나만 켜도, 여기 수많은 파이프들이랑 중앙 광장까지 다 비출 수 있다고? 우와 ~신기하다~ 엄마... 그래도, 낮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 괜찮아. 네가 어른이 되면, 땅 위에서 살 수 있게 될 거야. 그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낮과 밤을 이해하게 될 거야.                


나는 지하 49미터에 있는 #2 우호 보금자리 주거 파이프에서 태어났다. 

내 첫 캡슐은 파이프8927-249번 캡슐이었다. 

나는 캡슐 침실을 따라 쭉 이어진 1미터 정도 되는 주거 구역의 통로 사이를 뛰어다니면서 자랐고, 침대 옆의 둥그런 파이프 벽면에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푹신한 큰 쿠션을 놓고 벽에 기대어 앉아 시간을 보냈다. 빨리 커서 어른들처럼 파이프 천정에 손이 닿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엄마는 어른이 되면 땅 위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주거 파이프는 2.5미터의 콘크리트로 된 거대한 파이프다.

 벽면을 따라 2미터마다 1개의 개인 캡슐 침실이 있다. 침실의 가로 폭은 1.5미터 정도 되고, 침실 입구에는 1번부터 700번까지 번호가 메겨진 미닫이 문이 달려 있다. 이 미닫이 문을 열고 침실을 나서면, 겨우 1미터 되는 통로가 파이프 끝까지 이어져 있다. 파이프 한 개마다 700개의 캡슐 침실이 있고, 이도시에 캡슐 침실은 총6,532,400개다. 모든 침실은 1인용이므로 이 지하도시에는 65만명 정도가 살 수 있다. 


매 침실 5개 마다, 2미터짜리 주방과 화장실이 있어서 식구가 3명뿐인 우리 가족은 옆집과 함께 주방을 사용한다. 거주 구역 양쪽으로는 공장 파이프, 농장 파이프가 번갈아 반복되어 있고, 각 파이프 사이에는 연결통로가 있어서, 사람들은 보통 가까운 파이프로 출근한다.


이 파이프들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각 농장 파이프다. 농장은 엄마의 직장이고, 모든 농장 파이프의 끝부분에는 ‘노아’라고 부르는 축사가 있다. 노아의 방주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하는데, 태양풍이 도달하면 지상의 생물들의 전멸할 것이기때문에, 가능한 많고, 다양한 생물들을 지하로 데려와 보존하고 있다. 


사실 중요한 부분은 식량 생산을 위한 축사다. 지하에서는 식물의 성장이 느리고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축산업과 농업의 비율을 적절히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물론 내가 갈 수 있는 부분은 축사 뿐이지만, 젖소와 염소, 닭이나 고양이를 모두 볼 수 있어서, 가는데 30분씩 걸리지만 자주 갔다. 틈만 나면 동물들이랑 놀다가 늦게 돌아와 혼이 났다. 한번은 축사에서 아기 염소가 태어난다는 말을 어디서 듣고서 파이프를 거의 400개나 건너서 멀리까지 갔다. 집에 돌아갈 시간이 지났는데도 바쁜 어른들 틈에 끼어서 구경하고 있었다. 염소가 출산이 임박해서 아무도 돌아가라고 잔소리를 할 겨를이 없었다.


 아기 염소가 막 태어나려고 할 때, 누군가 뒤에서 내 양 볼을 쓰다듬었다. 어머니였다. 

“엄마!!”

>>> 너 지금이 몇 시인지 알아? 시간이 되면 집에 와야지. 

“오늘 염소가 새끼를 낳는 걸 구경하다가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 어떻게 이 먼 파이프까지 왔어? 너 여기 몇 번 파이프인 줄 알아? 엄마가 너 잃어버린 줄 알고 걱정했잖아.

“죄송해요. 이것만 보고 가려고 했어요”

그때 엄마가 다급히 어깨를 두드리면서 염소를 가리켰다. 염소 새끼가 태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새끼가 태어나는 것을 구경했다. 

“엄마, 조금만 더 구경하다가 가면 안돼?”

>>> 새끼염소는 조금만 있으면 일어날 수 있을 거야, 그럼 무사히 일어나는 것만 보고 갈까? 일어나기만 하면 앞으로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단다.

“정말 그렇게 해도 돼요? 엄마 고마워.”

새끼 염소는 생각처럼 금세 일어나지는 못했다. 우리가 열심히 응원을 했지만, 거의 한 시간이 다 걸려서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그날은 내 어린 시절 최고의 날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파이프 천장에 손이 닿고 싶어서 폴짝 폴짝 뛰어올랐다. 

“엄마, 빨리 키가 커서 어른들처럼 천장에 손대고 뛰어다니는게 소원이야” 

>>>그래? 그럼. 엄마가 지금 소원 들어줄게.

엄마는 나를 들어 올려 한참을 천장에 손을 대고 걸어갈 수 있게 해줬다. 나는 신이 나서 물었다.

“엄마 하늘이 이렇게 높아?”

>>> 훨씬 높지. 아무리 키가 큰 사람이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어. 중앙 광장의 천장보다도 훨씬 높아서, 아무리 긴 밧줄이나 사다리가 있어도 절대, 닿을 수 없어.

“그런데, 만지지도 못하는데, 하늘이 왜 좋아?”

>>> 하늘에는 강아지가 되었다가 고래가 되기도 하는 구름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불처럼 하얗고 부드러워.

“하늘에 강아지랑 고래가 있어? 보고 싶다. ”

>>> 어른이 되면, 다 볼 수 있을 거야. 땅위에 살면, 소등시간이 되도 안자고 하늘 구경하러 가도 돼. 엄마랑 같이 꼭 밤새워 하늘 구경하러 가자. 거기에는 달도, 별도 있거든. 알았지?

“응”

>>> 우리 아들이 하늘아래 서 있을 수 있으면, 그때부터는 아기 염소처럼 건강하고,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을꺼야. 

"응"

나는 닿을 수도 없는 하늘을 보는 것 보다는, 빨리 키가 커서 팔을 들어 축축한 주거지역 천장에 손끝을 대고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아무 방해도 없이 뛰어다니는 편이 훨씬 좋을 것 같았지만, 땅에서 살게 되면 엄마랑 하늘을 보러 가기로 했다.       


그날 밤 농장 아저씨에게 얻은 염소 치즈 한 조각을 나눠 먹으러 엄마의 캡슐에 들어갔다. 일이 끝나고 쉴 틈도 없이 정신없이 나를 찾으러 걸어야 했던 엄마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불편한 작업화 때문에 발에 온통 물집이 잡혀 피가 나는 것을 보고 한참을 울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우리 아들 덕분에 귀여운 염소가 태어나는 것을 봤다고 고맙다고 하셨다. 그 이후로는 한동안 파이프 끝에 있는 축사에는 잘 가지 않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