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조용히 나를 만든 날들
새벽 다섯 시, 나는 어제를 묻는다. 오늘의 고요는 수많은 상실과 깨달음 위에 쌓인 선물이었다.
어젯밤 아내가 물었다. 당신은 늙어가는 게 슬프지 않냐고. 잠시 멍해졌다. 관절은 아프고 기억은 흐릿해진다. 친구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경제적 불안도 여전하다. 물론 슬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슬프지 않다. 슬픔과 감사는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젊을 때의 슬픔이 절망이었다면, 지금의 슬픔은 그리움이다.
젊은 시절, 높은 곳을 향해 숨 가쁘게 달렸다. 정상에 서면 모든 것이 보일 줄 알았다. 기억난다. 회사에서 승진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던 시절. 아이가 처음 걸음마를 뗄 때, 나는 출장길이었다. 아내가 혼자 끙끙 앓을 때, 회식 자리에서 건배를 외쳤다.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소중한 순간들을 지나쳤는지. 지금 알았다. 정상에서는 오직 정상만이 보일 뿐이라는 것을. 진짜 풍경은 올라가는 길목마다 펼쳐져 있었고 내려오는 중간중간에도 숨어 있었다.
지하철 안, 젊은 직장인들이 스마트폰을 움켜쥔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회색 정장과 검은 가방 사이로 초점 없는 눈빛이 스쳐 간다. 그 모습에서 문득 과거의 내가 보였다. 늘 무언가에 쫓기듯, 놓치면 안 될 것들만 가득하던 시절이었다.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잠시 멈춘다고 해서 인생이 무너지는 건 아니라고. 가끔은 속도를 줄여야 풍경이 보이고 길 위의 햇살도 따라온다고. 하지만 삶의 지혜란 잔소리가 아니라, 제시간이 와야 비로소 가슴에 스며든다는 것도 이제는 깨닫는다.
시간은 가르침을 준다. 무언가를 잃을 때마다 그 자리에 여백이 생긴다는 것을. 아버지가 떠난 후, 허한 가슴엔 슬픔보다 더 많은 것이 남았다. 함께 걷던 골목길의 습기, 낮은 기침 소리, 말없이 건네던 따뜻한 찻잔 하나. 낙엽 아래 숨어 있던 봄기운처럼 오래된 기억이 고요하게 피어났다.
시간은 불필요한 것들을 천천히 지운다. 오래된 책의 주석처럼. 기억도 마찬가지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모든 걸 잊어가지만, 손자의 이름만은 오래도록 입술에 올렸다. 그것은 상실이 아니라 선택이었다. 끝까지 남긴 사랑 하나였다.
누군가 묻는다. 혼자는 외롭지 않냐고. 외롭다. 하지만 고요 속에서만 들려오는 소리도 있다. 세월에 밀려 잊고 있던 마음의 목소리. 지금은 그 소리가 분명하다. 수고했다. 참 잘 견뎠다. 이제는 천천히 걸어도 괜찮다고.
젊을 때는 큰 것들만 보였다. 승진, 성공, 인정. 지금은 작은 것들이 보인다. 창문 너머로 지나가는 고양이의 느린 걸음, 이웃집 할머니의 안부 인사, 거실 화분에 새로 돋아난 작은 잎사귀 하나. 이토록 작은 변화가 이토록 크게 다가오는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받는 환자들을 본다. 그들 중 누구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루하루를 더 소중히 여긴다.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 아는 사람들의 눈빛이다. 그들에게서 배운다. 삶의 무게는 길이가 아니라 깊이에 있다는 것을.
노년은 포기의 시간이 아니다. 선택의 시간이다.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놓을지, 덜어냄으로써 채워지는 역설적인 풍요로움을 배워가는 시간이다. 건강은 예전 같지 않다. 무릎은 아프고 통증약은 빠뜨릴 수 없다. 이상하게도 마음은 더 가벼워졌다. 육체의 한계가 명확해질수록 영혼은 더욱 자유로워진다. 가끔 젊은 날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을 받는다. 솔직히 그런 생각이 드는 날도 있다. 하지만 더 많은 날에는 지금이 좋다. 모든 계절을 지나온 지금이,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 아는 지금이 더 좋다.
저녁이 되면 하루를 돌아본다. 크게 해낸 일이 없어도 괜찮다. 누군가에게 미소를 건넸다면, 작은 친절 하나를 전했다면, 그날은 충분히 살아낸 하루다.
지하철에서 만난 젊은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조급하지 마라. 정상만 바라보지 마라. 길 위의 모든 순간이 이미 선물이다. 실패해도 괜찮다. 늦어도 괜찮다. 멈춰도 괜찮다. 중요한 건 오늘을 살아내는 것이다.
밤이 깊어진다. 내일도 새벽 다섯 시에 눈을 뜰 것이다. 서두르지 않고 조급하지 않게. 살아 있다는 건 어제를 잘 보내고 오늘을 무사히 건너는 일이다. 그리고 오늘이 다시 나를 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