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슴속호수 Oct 22. 2024

어머니와 호박죽

너의 숨결, 내 안에 스며들다



37세, 어머니는 홀로 오 남매를 키우셨다

46년 동안 자식들에게 모든 걸 쏟아내며 

병마는 조용히 스며들었다

그 고단한 세월을 떠올리면, 가슴 한편이 서늘히 저려온다    

 

어머니는 방을 정리하는 며느리에게 날 선 눈길을 던지며

빨래한 옷이 어디 있냐고 묻고, 화장지를 훔쳐 갔다고 하신다

아들이 나서서 찾으면, 서랍 속에서 조용히 나타나는 물건들

천연덕스레 "언제 갖다 놨지?" 웃으시는 그 모습에

깔끔하던 젊은 시절의 어머니를 떠올린다     


식탁에 앉아, 어머니는 우리의 음식을 바라보며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네가 먹는 것 다오" 하신다

하지만 틀니를 빼고 드시니 한 입 넘기기도 힘겨워 보인다

병원에 다녀도, 식사는 여전히 버겁다

평생 죽을 마다하시던 어머니, 이제는 오직 호박죽만을 찾으신다     


쇠고기 죽, 전복죽, 닭백숙도 드려보았지만

어머니 입맛은 오로지 호박죽에 머물렀다

주먹을 쥐며 "호박죽, 호박죽"

아이처럼 투정을 부리시는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으며, 잠시나마 웃음을 되찾는다     


그러나 그 외침도 차츰 잦아들고, 

식사량마저 눈에 띄게 줄어든다

마지막으로 좋아하시던 토란 죽을 아들이 떠먹여 드리니

사흘 뒤, 어머니는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그것이 마지막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호박죽, 호박죽"

그리운 외침, 다시 들릴 수 있다면

나는 조금 더 잘할 수 있었을까

두 그릇씩 드시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나는 내 무지를 한탄한다     


그리움이 밀려올 때마다 괜스레 눈물이 흐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