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 가왕이라는 프로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가면처럼 감추어진 익명은 악성 댓글처럼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예전 직장에서 한 달에 한번 내가 속해 있던 그룹은 특정한 날에 그룹인원들이 모두 모여 롤링 페이퍼를 한 적이 있다. 조건은 최대한의 익명을 보장하여 불만을 표현하거나 비난하는 것이 아닌, 그룹인원들에 대한 칭찬을 하는 것 이었다. 처음엔 너무도 어색했고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쑥스럽기도 했지만, 익명이라는 특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진솔한 마음을 그룹원들 전체에게 퍼트려 팀워크도 좋아지고 서로 간의 관계들이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바꾸고 있었다.
매주 주말에 방송하는 '복면 가왕'이라는 프로를 즐겨 본다. 복면에 가려진 사람들을 바라보는 나는 복면 뒤에 가려진 사람들이 누구일지 궁금해하고 기대하며 그들을 바라본다.
이 프로가 흥미로운 것은 그곳에 출현하는 사람들의 노래를 듣는 것도 좋고, 때로는 잊고 있던 반가운 얼굴도 볼 수 있어서 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매력은 가면을 쓰고 나타나 자신의 정체를 가린 채 최선을 다해 열정적으로 부르는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이 곳에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출연을 한다. 여러 멤버들의 구성상, 짜여진 군무를 하며 몇 음절의 멜로디만을 부르던 아이돌 가수. TV 연속극에서 감초 역할을 하던 탤런트. 체격이 우람한 운동선수. 연기 잘하는 영화배우등. 그리고 아주 오래전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아득히 잊혀졌던 추억의 가수들.
그렇게 다양한 분야의 출연자들이 복면을 쓰고 부르는 노래는 누가 들어도 가식과 편견 없이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역량을 발휘하여 최선을 다해 노래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심지어 몇십 년 내공이 쌓인 가수들도 그 순간만큼은 긴장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파르르 떠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감추고 있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신만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감정에 북 받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경연의 결과가 나오면 복면 뒤에 숨겨진 사람들이 공개가 되고,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사람들이 나타났을 때는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놀라워한다. “와! 누구누구였어! 랩만 잘 하는, 춤만 잘 추는, 저 사람은 연기만 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라며 놀라워하고, 정체를 아는 순간 견고하게 쌓여 있던 그들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이 깨지며, 가려져 있던 역량을 발휘하여 자신만의 노래를 부른 그들을 볼 땐 정말 감동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얼굴이 밝혀지고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그들의 소감을 들어보면, 복면을 하고 무대에서 노래하는 동안은 오롯이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자신과의 싸움만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 후 그들은 결과에 상관없이 노래하는 동안만큼은 편견 없이 자신을 보여 줄 수 있었다는 것에 행복했다고 말하곤 한다.
아마도 그처럼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청중들은 무대에 선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미지의 인물에 대한 선입관과 편견이 없었고, 복면을 쓴 사람도 청중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믿고 있었으므로, 그동안 보여 주지 못했던 자신의 능력을 가감 없이 드러낼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으로 노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복면 가왕을 보며 생각해 본다. 그동안 나는 나의 주변과 사회적 관계를 얼마나 의식하며 살아왔고, 또한 타인을 바라보는 나의 편견은 없었는지. 그리고 선입견 없이 누군가에게 진정한 나를 표현할 수 있었던 적은 언제였는지.
그런 측면에서 브런치에 글쓰기는 복면가왕처럼 편견 없이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주었다.
이유는 나를 전혀 모르는 독자들은 글로서만 나를 알 수 있을 뿐이고, 그래서 나는 브런치 무대에서 익명이라는 복면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나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 없이 나의 글을 대할 수 있고 나는 복면을 쓰고 무대에 선 사람들처럼, 오로지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하며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복면 같은 익명은 글쓰기 무대에서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나의 진실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며, 글을 읽는 독자들도 편견 없이 나의 글을 읽고 의미를 찾아 공감하며 때로는 비판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 이외에도 무대에 서있는 많은 작가님들은 어느 출연자가 말한 꿈 꾸고 도전하는 것은 언제나 아름답다는 말처럼, 글쓰기라는 무대에서 복면을 쓰고 내면의 느낌과 감정들을 표현하며 아름다운 꿈을 꾸고 도전하며 행복해하고 있는 것이다.
행복하게 생기 발랄한 봄날을 만끽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시기를 부리듯 어제는 하루 종일 장맛비 같은 봄비가 내렸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비에 씻긴 세상 덕분에 모든 것이 깨끗해진 하루가 우리에게 다가와 있네요.
그런 아름다운 날. 저는 어김없이 복면을 쓰고 글쓰기의 무대에 서서 같은 무대에 서 계신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며 글의 의미를 느끼고 그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 무대에서 글을 쓰며 복면 가왕 프로에서 행복해하며 노래하던 사람들처럼 저의 생각들을 표현해 봅니다. 가식과 편견 없이 저를 가장 잘 표현하기 위한 저 만의 복면을 쓰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