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그리워할 추억의 맛이 될 라면을 끓이며
며칠 전 지인의 결혼식에서 많은 종류의 음식이 있는 뷔페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다. 다양한 종류와 구미를 당기게 하는 이쁜 모양의 음식들. 그러나 화려함과는 달리 기대만큼 맛이 없어서였는지 무언가 먹기는 먹은 듯한데 왠지 칼칼하고 따뜻한 무언가가 부족한 것 같았다. 그리곤 차라리 이 많은 음식보다는 작은 분식집에서 파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어슷 썰은 파와 달걀이 언저진 라면 한 그릇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결국은 돌아오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라면을 먹고야 말았던 기억이 있다.
학창 시절 친구 집에서 가위바위보에 당첨이 되어 라면을 끓였던 적이 있다. 돌이라도 씹어먹을 만큼 먹성 좋았던 우리들은 주머니 쌈짓돈까지 탈탈 털어 라면을 샀고, 나는 많은 양에 당황해하다 기어코 물 조절을 잘못하여 소태처럼 짠 라면을 끓인 적이 있다. 그래서였는지 그 이후부터 라면을 끓일 때면 물 조절에 대해 자신이 없었고, 그래서 늘 짜거나 싱거운 라면을 끓이곤 했다.
하지만 트라우마 같았던 고민은 의외로 쉽게 해결이 되었다. 항상 정답은 멀지 않은 곳에 있듯 늘 무심히 지나치던 라면 봉지 뒷면에 나온 레시피는 수많은 테스트를 거친 후 라면 전문가들에 의해 결정된 가장 맛있는 라면을 끓이는 최적의 공학적이며 정량적인 방법이었고, 그것은 결국 사람들이 정성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나의 고민이 해소되자 나는 또 다른 궁금증 하나가 생기게 된다. 어느 라면이건 겉 봉지에는 조리의 예로 소담스러운 용기에 갖은 채소와 해산물, 고기가 얹혀 있는 사진이 있었고, 나는 그 사진처럼 끓여진 라면은 정말 어떤 맛일까?라는 호기심이 생기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라면을 끓여 보았음에도 사진과 똑같은 내용대로 조리하여 먹은 적은 없다. 이유는 일부러 똑같은 재료를 준비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고 행여 재료가 있었다 해도 "뭐 굳이 이럴 것까지..."라고 생각하며 팔팔 끓는 라면의 냄새를 맡으며 빨리 먹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라면에는 MSG가 들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제 부턴가는 몸에 좋지 않다고 하여 될 수 있으면 라면을 먹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어찌 그게 그리 될 수 있겠는가? 배고플 때, 출출할 때, 먹을 것이 마땅치 않은 어느 때든. 그리고 머나먼 타국에서 절실하게 고국의 음식이 그리울 때면 우리들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라면 일 것이다.
그렇게 나에게 라면은 굳이 많은 것을 첨가하지 않아도 되는 맛있으면서도 짧은 시간에 손쉽게 접 할 수 있는 음식이었고, 어느 영화의 "라면 먹고 갈래?"라는 대사처럼 쉽고 자연스럽게 그리고 모든 것을 인스턴스 하게 함축하여 애매한 허기 혹은 출출함을 해결할 수 있게 해주는 음식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라면은 밥처럼 매일 먹는 주식이 아님에도 늘 나의 주위를 맴돌았고 후루룩 소리를 내며 라면을 먹을 때면 문득문득 몇 개의 추억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방과 후 학교 앞 문방구에서 라면 하나를 산후, 잘게 부순 면에 수프를 뿌려 먹던 생라면. 과자보다 값이 비싸, 며칠 동안 돈을 모아야만 살 수 있었기에 그날을 기다리던 마음. 그래서 더욱 맛있었고 그래서 가장 친했던 친구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던 생라면. 그리고 지금도 더욱 바삭한 면을 먹기 위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마트의 라면들 속에서 가장 최근의 것을 찾아 뒤적뒤적 제조일자를 살피게 되는 생라면의 기억.
떨리는 마음으로 점선이 있는 곳까지 종이 뚜껑을 뜯어낸 후, 수프를 넣고 용기 안 지정된 선까지 팔팔 끓인 물을 붓고 경건하고 정확하게 기다리는 삼분. 이때만은 신앙심 깊은 수도승이 된 듯 솟아오르는 조바심과 욕심을 참아가며 삼분을 삼십 분처럼 기다리고 나서는 나무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먹으며 "아! 이런 맛이구나" 하며 처음으로 신세계의 맛을 느끼게 해주었던 처음 맛보았던 컵라면의 기억.
둥그런 달이 중천에 떠 달그림자가 선명했던 어느 밤. 아무 말 없이 한밤중 자고 있는 나를 깨운 선임. 그리고 갓 자대에 온 나를 이끌고 결코 입 밖으로 내서는 안 될 장소에 데리고 와서는, 선명한 달빛 아래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이 보이는 반합을 가리키며 “먹어!”라고 외쳤던 낮고 짧은 한마디. 행여 누구에게라도 들킬까 봐 고맙다는, 잘 먹겠다는 말도 없이 선임의 눈을 바라보는 것으로 답례를 하고는 무언의 침묵 속에서 은밀하고 신속하게 라면 한 젓갈이 내 마른입에 들어오는 순간. 그리고 눈물이 날만큼 또렷하게 느껴졌던 라면의 맛.
시 쓰기를 좋아하여 시(詩)라는 별명이 붙었던 새침했던 여학우 친구. 그녀가 정성 들여 끓인 라면을 물놀이에 정신이 팔려 아무도 먹지를 않아 화가 난 그녀가 통째로 화양동 계곡물에 퉁퉁 불은 라면을 쏟아 버렸던 날. 맑디맑은 물을 따라 둥둥 떠내려 가는 구불구불한 면을 보며 울고 있던 그녀를 달래며 미안해했던 기억.
난생처음 갔던 해외여행에서 현지인처럼 먹어야 한다며 호기롭게 몇 날을 현지식으로만 먹다가 결국은 온몸에 양고기 누린 냄새가 떠나질 않으며 탈이나 버리고, 약보단 한국의 음식이 먹고 싶어 말도 통하지 않는 현지인에게 물어물어 찾아낸 상점. 그리고 거금을 주고 구입한 네모난 도시락면을 두 개나 먹고 나서야 속이 진정되었던 기억.
그리고 용돈이 넉넉지 않았던 학창 시절 친구의 자취방에 모여 결국은 공부는 뒤로 미루고 커다란 주전자에 라면을 한가득 끓여 먹으며 젊음의 허기를 채우던 기억.
그처럼 나의 인생 군데군데 남아있는 추억의 라면도 이제는 럭셔리하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고급화가 되었고 그에 맞추어 맛도 변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변화들 속에서도 예전의 라면에 대한 추억은 그것과 함께 했던 사람들과 기억들을 꺼내 오며 그때의 맛을 그리워하게 한다.
행여 그 맛을 볼 수 있을까 기억 속 그 맛을 찾으려 인터넷을 헤매고 다니지만, 추억 속 그날의 공기, 그날의 바람, 그날의 허기, 울고 있던 그녀 그리고 까만 하늘에 떠있던 선명한 달과 선임의 고마운 마음, 양고기의 누린내, 친구들이 있어야만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기억 속 그 맛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만날 수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이제 나에게 라면은 마음이 헛헛할 때면 생각나는 음식이 되어 버렸다. 물을 끓이고 면과 수프를 넣고 나면 그때의 맛을 느낄 수 있을까?라는 기대감으로 보글보글 끓는 물속의 면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탱탱하게 익은 꼬불꼬불한 면을 후루룩 소리를 내어 입에 넣는 순간, 기대했던 추억의 그 맛이 아님을 아쉬워한다. 결국 아쉬움은 마음을 더욱 허기지게 하고 결국 나의 추억 앓이는 예정에 없던 한 끼의 식사가 되어 버리고 만다.
지금도 그리움의 언덕에 추억을 쌓으며, 결코 추억은 재생할 수 없다고 외치며 시간은 흐르고 있다. 그리고 그 단호한 외침은 지나간 추억은 다시 되돌아 갈 수 없기에, 다시 보고 만질 수 없기에, 그래서 마음에만 간직할 수밖에 없는 그리움으로 남기에 언젠간 추억이 될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하라며 나를 다독인다. 아마 앞으로도 나는 라면을 끓일 것이고, 추억은 다시 올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흥얼거리며 노래할 것이다.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두어야 한다고.
하지만 숨겨진 마음 한구석에서 나는 조용히 주변을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재생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주 우연히도 생각지 못한 곳에서 그리움이 될 현재를 만날 수도 있을 거라 기대하며 지금의 공기와 현재의 내 마음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와 마주하는 사람들과 세상을 마음의 숨겨진 창고에 소중하고 가지런하게 담을 것이다.
짧게 피었다 금방 사라지는 봄꽃처럼, 비록 금세 사라져 버리는 추억이라 해도 어느 순간 잠깐이나마 지난 기억들이 내 앞에 나타나 예전에 그랬던 적이 있지 않았냐 하며 반갑게 손 내미는 그날을 위해서 말이다.
<이미지 출처>
0. http://www.nongshim.com/ramyun/list_knowledge
1. http://tip.daum.net/question/53039523
2. 농심 블로그
3. 한국 관광공사
4. http://casillas.egloos.com/2160642
5. pixab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