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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lein Feb 21. 2017

무릉에서 용수까지, 제주올레 12코스

수월봉과 차귀도가 있는 길.


편지


편지를 주웠다. 젖어 있었지만 글씨는 번져 있지 않았다. 이슬은 편지 주인이 느꼈던 추억을 지울 수 없었나 보다. 나는 햇살이 비추는 돌담 위에 곱게 편지를 놓아두었다. 누군가의 추억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연이라면 편지는 주인에게 돌아갈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글씨들은 하얗게 사라질 것이다. 만나고 헤어지고 잊히고 바래 지는 우리들의 삶처럼. 편지는 까만 돌담 위에서 자신의 운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좌기동 어느 길에 있던 편지


좌기동


올레 12코스는 무릉 생태학교에서 용수포구까지 걷는 길이다. 좌기동에 들어서자 마을은 고요했다. 주변의 모든 것은 묵묵했고 인기척도 소리도 없었으며 낯섦도 궁금함도 없었다. 새것은 아니지만 매일매일 닦고 닦고 닦아 윤이나는 어느 집 세간살이처럼 정갈함이 느껴졌다. 그곳을 걷는 나는 늘 그곳에 던 나 같았다. 꿈인지 실제인지 모를 구분하기 힘든 묘한 설렘과 함께.




나무의 마음


나무가 있었다. 가지만 남은 모습은 무척 쓸쓸해 보였다. 나무는 누군가의 그늘이 되려 했고,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볼품이 없다 하며 나무를 외면했다. 하지만 나무는 봄이 오 다시 새싹을 틔우고 하늘을 가릴 만큼 잎이 무성해질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뜨거운 태양을 피해 나무 아래로 모여들 것이다. 그래도 나무는 사람들이 품었던 마음을 모른 척 한 채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을 위해 성심성의껏 따가운 햇빛을 막아 줄 것이다. 이유도 조건도 없사람들에게 쉴 곳을 마련해 주고 아낌없이 베푸는 것. 그 나무의 마음이었다.



나무를 지나 걷는 중 무언가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돌아보니 햇살이었다. 내가 걸어왔던 곳에는 하늘이 있었고 빛이 있었고 나무가 있었다. 방금 전 보았던 가지만 있던 나무는 세상과 하나가 되어 당당하게 서있었다. 마치 좀 전에 느꼈던 쓸쓸함을 배신이라도 하듯.


하지만 나무는 결코 배신을 하지 않는다. 애당초 나무는 배신이라는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다. 나무는 자연에 묻혀 흘러가고 있을 뿐, 내가 생각했던 배신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었다. 아둔하게도 나는 나무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나무만을 생각했을 뿐 모로 보는 내 마음은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겸연쩍기도 하고, 햇살에 비친 대지의 풍경이 너무 이쁘기도 했기 때문이다.



녹남봉


녹남봉에 올랐다. 주변엔 삼나무들이 많았다. 야트막한 오름이었기 때문에 마음은 가벼웠다. 하지만 정상에 올라서자 가벼웠던 마음은 감동으로 돌변했다. 구름과 빛이 조합된 아름다운 풍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빛들도 자신들이 만들어 낸 모습이 너무 이뻐 당황스러웠나 보다. 지나는 구름에게 이리 비켜보라 저리 비켜보라 재촉하는 듯했고, 그럴수록 하늘과 대지가 어우러져 갖가지 아름다운 모습을 만들고 있었다. 오르는 길이 어렵지 않았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내 마음이 창피했다. 처음이 소박하거나 빈약하다고 하여 그 결과도 그러리란 법은 없는 것인데 말이다.


 


기억


녹남봉을 지나 얼마걸었는지 알 수 없을 즈음, 이전의 가지만 있던 나무와는 달리 웅장하고 큰 나무가 보였다. 모든 것을 포용하고도 남을 만큼 우아한 나무였다. 나무는 나의 살아온 날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나의 존재가 없을 때에도 나무는 여전히 저 자리에 있을 것이다. 나무는 우리가 겪었고 겪어야 할 과거와 미래를 알기에, 나의 존재가 사라져도 나무는 자신을 바라보던 나를 기억할지 모른다. 그처럼 누군가를 바라봐주고 먼 훗날까지 자신을 기억해 준다는 것. 그것이 의무이든 사랑이든, 그것은 매우 큰 인연이다. 지금 먼 훗날까지 당신을 기억해 줄 사람이 곁에 있다면 당신은 퍽 행복한 사람이다. 물론 당신은 당신의 그 사람에게 당신이 받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먼 훗날 그 사람을 다시 보거나 그 사람이 당신의 이름을 들었을 때, 당신만 상대를 기억하거나 그 사람이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너무도 가슴 아픈 큰 슬픔이 때문이다.



지평선과 수평선


넓은 대지와 바다가 나타났다. 그곳엔 두 개의 삶이 있었다. 지평선과 수평선. 농부는 지평선을, 어부는 수평선을 경계로 살아가고 있었다. 검은흙이 깔린 대지엔 파릇한 농작물이 심어져 있었다. 여리고 가늘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는 할망의 손은 호미질 하는 분주함에 여념이 없었다. 할망은 힘이 들 때면 수평선의 또 다른 삶을 바라보며 당신의 삶을 위로했을 것이다. 그리고 할망은 척박한 이 땅에서 살아오며 이제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기에 지나간 날들을 돌아보며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책에서 보았던 해녀 할망의 말처럼.


"사니까 살아지더라" 하며.



수월봉


수월봉은 멀리서 볼 땐 야트막한 봉우리 같지만 그 아래부터 올라가게 되면 뭉근하게 숨이 차오르는 봉우리이다. 밭길을 따라 부지런히 걸어 도착한 정상에서 보는 풍경은 가히 환상적이다. 탄성과 함께 벌어진 쉽게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넓고 푸른 바다가 있었고 그 위차귀도와 섬들이 떠 있었다. 그 너머 신창리에 줄지어선 풍차들까지. 가슴이 넓어지고 눈이 번쩍 떠진다는 것이 무엇인 알 수 있었다.


이곳엔 기상청이 운영하는 기상대가 있다. 우리나라 남서해안의 최 서단에 있는 기상대이다. 그 옆엔 육각형 모양의 정자가 있데 기우제를 지냈던 곳이다. 특히 수월봉은 낙조가 아름답다고 한다. 이곳에서 생각했던 하나는 해가 떨어지는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돌고래가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멋질까 하는 것이었다. 만일 전생에 나라를 구했거나 정말 최고의 운이 따라 붉게 물든 바다 위에 돌고래가 뛰어노는 모습을 본다며, 그 순간은 그날의 여행 중 최고로 멋지고 보람 있는 순간이 될 것이다.



엉앙길


엉앙길. 발음이 힘들다. 엉앙의 '엉'은 절벽, '앙'은 아래를 뜻한다. 그 뜻을 모아 보면 엉앙길은 '절벽 아랫길'이라는 의미이다. 이름대로 길옆엔 절벽이 있었고, 그곳엔 샛 노란 꽃들이 지천이었다. 꽃들을 보고 있자니 파릇한 봄이 온 것처럼 기분이 화사해졌다. 하지만 사실 그날은 한 달만 지나면 첫눈이 올지도 모르는 11 어느 가을날이었다. 가을은 누군가가 그리워 차마 계절을 보내지 못하고 있었나 보다. 노란 꽃들을 앞 세워 저리도 어여쁘게 꽃을 피웠으니. 그러고 보면 제주의 꽃들은 계절이 없는 듯하다. 가을에도 저처럼 환하게 꽃이 피고, 한 겨울에도 노란 유채꽃과 빨간 동백이 환하게 피고 지니 말이다.


엉앙길.


엉앙길을 걷다 뒤를 돌아보았다. 좀 전에 올랐던 수월봉이 보였다. 그곳을 떠나 온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꽤나 멀게 느껴졌다. 지나온 것을 돌아본다는 것은 후회되거나 아쉬움이 남아서 일 것이다. 하지만 길을 걷다 지나온 길을 보면 놀라움이 크다. 좀 전까지 저곳에 있었는데 금세 나는 꽤 멀게 느껴지는 그곳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처럼 걷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위력이 대단하다. 비만해서 살찐 우리들을 건강하게 해 주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세상을 꼼꼼히 볼 수 있도록 해준다. 그래서 우리는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저절로 움직이는 자율주행 자동차를 보며 놀라워할 것이 아니라 저 먼 거리를 걸은 나의 두발과 마음에 담았던 생각을 더 소중히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보다 문명이 더욱 발달한 먼 훗날이 되면 두발로 걷는다는 것을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차귀도가 보이는 포구


색의 항연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보다. 바다는 옥색도 아닌, 파란색도 아닌 색로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신은 분명 저 빛깔의 물감을 특별히 주문했을 것이고, 그 물감을 저 바다에 아낌없이 쏟아부었을 것이다. 그처럼 선명한 빛깔의 바다 위엔 수월봉에서 보았던 섬 있었고, 파릇한 초록빛의 차귀도는 주인공이 된 것처럼 아담하고 멋지게 떠 있었다.


여행은 찾아가고, 보고, 느끼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곳에서는 여정을 마치고 바다를 보며 해가 질 때까지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계획도 없이 앞날도 생각지 않고 섬과 바다와 함께.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매력에 빠져 너무 정이 들어 돌아갈 날을 기약할 수 없을지라도 말이다.



당산봉


아쉬운 마음으로 다음을 기약하며 당산봉을 향했다. 숲길은 바람이 잦아들어 얼얼했던 얼굴을 녹여주었다.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억새들은 언덕 너머에 무언가 멋진 것이라도 있는 듯 모두 위쪽을 향해 있었다. 어느덧 내 마음도 억새들이 향하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궁금함은 커져갔고 걸음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언덕을 넘어서 눈에 들어온 바다는 제주는 늘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계속 보아왔던 섬들의 모습이었기에 질릴 법도 하였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좀 전까진 볼 수 없었던 언덕과 섬과 바다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여행 중 정해진 여정이 있다고 해도 가끔은 샛길로도 가보자. 이탈과 호기심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마음이고, 그것은 생각보다 많은 재미와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여행에서 우연은 음식에서 꼭 들어가야 감칠맛을 내는 양념 같은 것이다. 그래서 돌고 돌아 생각해 보면 결국 여행에서 꼭 필요한 것이 우연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매력은 직접 경험해 보아야만 알 수 있을 것이다.



생이기정길


당산봉을 내려오는 길에는 절로 휘파람이 나왔다. 신이 나서 인지 잘 부르지도 못하는 휘파람이 계속 흘러나왔다. 작게만 보였던 신창리의 풍차들이 점점 크게 보였고, 길은 해안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는 생이기정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생이기정길은 새가 둥지를 틀고 있는 절벽길 이란 뜻이다. 이름대로 정말 많은 새들이 절벽을 따라 날아다녔다. 경사진 언덕에 핀 억새들은 솜털을 깔아 놓은 듯 가지런히 한 방향을 향해 있었다. 얼마의 시간을 저처럼 바다를 향해 있었을까? 금방 싫증을 내는 우리들과는 달리 억새들은 그저 묵묵히 바람에 몸을 맡기며 초연히 자신들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걷는 중에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차귀도는 점점 어지고, 용수 포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용수 포구


고기잡이를 나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목숨을 끊은 이곳 포구의 어느 여인의 사연 때문이었을까? 용수 포구는 조용하고 적막했다. 지나는 자동차의 소리는 소음이 아닌 적막한 포구를 깨우는 소리 같았다. 하지만 차들이 사라지면 포구는 다시 고요 속으로 잠겼다.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이럴 때는 북적북적한 것도 좋은데, 너무도 고요해 아쉬운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시끌벅적했더라면 분위기에 휩쓸려 마지막을 마지막 인지도 모르게 끝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포구의 모습은 잔잔하고 고요했다. 도무지 떠 마음이 들지 않았다.



느림의 길이


여행에서 걷는 것은 모든 것을 느리게 한다. 하지만 그 느림은 우리가 답답해하는 느림이 아니다. 걸으면 모든 것이 느리게 지나기에 느리게 바라볼 수 있고, 그래서 느리게 생각할 수 있다.


늦은 오후 올레길의 끝에서 버스를 타면 단 몇 장의 책을 읽을 시간이면 아침 이슬을 보았던 시작점에 도착하게 된다. 하지만 느림은 몇 장의 책을 읽는 잠깐의 시간을 하루 종일이라는 시간으로 늘려 놓는다. 그리고 그 길이는 마음의 길이가 되어 아침해가 뜨고 저녁해가 질 때까지 길 위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도록 해준다. 평소에 무심히 발에 차이던 돌멩이, 풀 한 포기, 들꽃 한송이도 소중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그처럼 걷는 여행은 몇 장의 책장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내 마음에 담는 것과 같다. 그것은 걷는 이에게 마음의 길이가 되어 그 깊이만큼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포구는 여전히 고요했다. 저무는 해는 오늘의 여정을 마쳐야 함을 알려 주고 있었다. 쉽게 돌아서지 못하고 포구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장난감이 가득 쌓여 있는 곳에 있는 아이의 마음 같았다. 갖고 싶은 장난감을 눈 앞에 두고도 그것을 가질 수 없어 엄마에게 사달라 하며 목놓아 우는 아이. 다음에 꼭 사주겠다는 엄마의 말이 도통 귀에 들어오지 않고 지금 이 순간 꼭 장난감을 손에 쥐고 싶어 하는 아이처럼.


꼭 그 아이의 마음이 내 마음이었다.


아침해가 뜨는 길의 시작에서 보았던 억새
해가 서쪽에 다다른 길의 끝에서 보았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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