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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lein Mar 03. 2017

표선에서 남원까지, 제주올레 4코스

나는 알 수 있었다. 우리 모두는 외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당케 포구


포구는 잠이 든 듯 고요했다. 첫사랑을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하듯, 배들은 첫 항해를 나갔  날의 설렘을 꿈꾸고 있었다. 바다는 포구와 배들의 달콤한 잠을 깨우기가 미안했는지 잔잔한 물결만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마음의 눈으로 그 모습들을 꼼꼼히 담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포구의 모습은 내 마음에 가득했고, 그것들이 차오를수록 포구를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당케포구, 표선
당케는 당(堂)이 있는 포구라는 뜻이며 설문대할망이 이 포구를 만들어 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봄바람


딱딱하고 검은 아스팔트 길이었지만 바다가 보이는 길은 운치가 가득했다. 근처 숙소에서 나와 산책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나의 길이었지만 모두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달랐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이 가야 할 길을 걷고 있었고, 여유롭고 씩씩하게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살랑하며 바람이 불어왔다. 예고도 없이 불어온 바람이 낯설게 느껴졌지만 금세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그것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살갗에 느껴지는 바람과 공기. 코안에 스미는 따스한 냄새. 그것은 일 년 만에 마주하는 봄바람이었다.


길, 표선
바닷가, 표선 해비치



등대


하얀 등대가 보였다. 등대는 유명한 등대였다. 어느 드라마의 여 주인공이 저등대에서 먼 곳을 바라보며 있었고, 그녀를 향해 오던 그의 남자는 결국 그녀를 만나지 못하고 죽음을 맞게 그 마지막 장면 때문에 등대에는 한동 사람들의 발길이 잦았다. 하지만 등대는 조금씩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고, 예전처럼 다시 혼자가 되었다. 등대는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한동안 마음 지만, 홀로 있는 모습이 자신의 본모습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외로워 보였지만 결코 외롭지 않은 등대였던 것이다.


등대, 표선


우리의 삶도 마찬 가지이다. 외로움은 "와락" 하며 한순간에 찾아온다. 그것은 마치 브런치의 글이 처음으로 메인에 올랐다가, 이내 글이 사라지면 수없이 울리던 알림음이 사라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평소 같은 일상이 되어 허무한 외로움이 찾아오는 것처럼. 그렇게 외로움은 불과 몇 초 사이의 전과 후로 나뉘 사람의 마음을 공허하게 만든다. 하지만 일상은 본래의 내 삶이었으며, 수없이 울리던 알림음은 잠시 왔다가는 손님일 뿐이다. 그 손님으로 인해 외로움을 느꼈을 뿐.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퇴근을 하고의 일상은 앞으로도 계속 내가 살아가며 해야  것들인 것이다. 그래서 일상은 외롭지 않고 익숙한 것일 뿐, 조금은 지루할지라도 그것은 내가 살아있고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바닷가, 표선 해비치



여행자의 예의


예전의 여행을 회상해 볼 때, 참 이상하게도 하루 반의 시간이 걸려 도착한 여행지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불편한 것이 있거나 기후가 좋지 않거나 내가 살던 환경과 다를 경우 그런 생각이 들곤 했는데, 그러고 보면 현재의 일상을 피해 여행을 왔음에도 나의 일상과 다르다고 하여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생각 일수밖에 없다.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살던 그곳이 가장 편하고 내가 쉬어야 할 곳이라는 애기인데, 그렇다고 당장 돌아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은 내 맘 같고 내 집 같은 곳은 세상에 없기에 집을 떠난 이상 불편이라는 것을 각오하고 여행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일 그런 각오가 없다면 사실 누군가에게 여행은 고역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우리는 여행을 원하고 떠나게 된다. 그렇다면 어느 곳이든 여행지에 도착하면 자신의 마음을 다독이며 여행지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원했던 것들을 조금은 포기하는 것이 더 즐거운 여행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결정은 조금이라도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종교에서 말하는 해탈이 별거 있겠는가?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낯선 도시의 일상과 생경한 풍습을 인정하면, 비로소 그곳의 사람들과 그곳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진솔한 여행이 시작되는 것처럼.


해녀와 낚시꾼, 참 아이러니 하다.


길고 짧은 시간의 차이 일뿐 한 시간을 날아온 곳에서도 그런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의 삶을 이해하고부터는 저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여행의 즐거움을 느끼기에 앞서 나 자신을 돌아보며 삶을 생각하게 된다. 그들의 치열한 삶을 보면 왠지 부끄럽고 무언가 보탬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난 여행 중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현지인들을 볼 때면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 해도 웃으며 인사하고, 그들의 삶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겸손하게 바라보곤 한다. 그것이 여행으로서 즐거움을 얻고 삶의 교훈을 터득하고자 하는 여행자가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참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저 풍경에는 삶을 위한 힘든 노동이 숨겨져 있다.(태흥리 앞바다)



동백


토산 산책로에는 동백이 환하게 피어있었다. 아무리 급한 걸음이라 해도 동백은 볼 때마다 가던 길을 멈추게 한다. 마치 여인의 열정적이면서도 담백한 마음처럼 꽃의 붉은빛이 참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빨간 잎은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며 붉게 피어오른 여인의 마음 같고, 노란 수술은 모나지 않은 담백한 그녀의 마음 같다. 게다가 생명이 다할 때는 시들지 않고 꽃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면 사랑하는 이에 대한 동백의 마음은 결코 변하지 않는가 보다. 동백꽃 같은 여인이 있다면 어찌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매력적인 여인이 다가오면 저절로 눈길이 가듯 동백은 늘 걸음을 멈추게 한다.


동백, 토산리 산책로


동백, 토산리 산책로



봄꽃


꽃도 가득했다. 노란 유채꽃이 들판에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유채는 봄을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을 애달프게 한다. 겨울에도 조금만 따뜻해지면 노란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조금만 기온이 오를라치면 땅속을 비집고 올라와 노란 꽃을 피운다. 그 꽃을 보고 사람들은 봄이 온 듯 착각 하지만, 추위가 가시지 않은 찬 바람은 아직 봄이 아니라 말한다. 그래도 유채는 아랑곳하지 않고 따뜻한 기운을 찾아 아무 때, 아무 곳에서 피어난다. 마치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처럼. 하지만 그 피고 짐이 경박스럽지 않다. 되려 봄을 기다리며 정인(情人) 빨리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순수한 여인 같기만 하다.


유채, 토산리
유채, 토산리
유채, 토산리


매화도 피었다. 매화의 꽃말은 '고결한 마음'이다. 꽃말처럼 매화는 화창한 봄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신부의 마음 같은 꽃이다. 게다가 그 마음처럼 빛깔도 참 곱다. 붉은빛은 단색이 아닌 백색의 빛에 불그스름한 빛을 풀어놓은 듯하여 은은하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고결한 마음과 그 빛이 참 잘 어울린다. 본래 매화는 달빛 아래에서 바라보아야 더욱 운치 있고 곱다고 하지만, 밟은 태양 아래에서 보아도 좋다. 그래도 달빛 아래에서 보고 싶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에 띄우듯, 달을 마음에 띄우고 바라보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달이고, 달이 사랑하는 사람인 것처럼. 늘 그 사람을 그리듯 마음에 달을 품고 바라보면 되는 것이다.


매화, 토산리
매화, 토산리
사랑하는 사람이 달이고, 달이 사랑하는 사람인 것처럼. 늘 그 사람을 그리듯 마음에 달을 품고 바라보면 되는 것이다.



거슨새미


제주의 이름 중에는 이쁘거나 특이한 이름이 많다. 종달리, 삼달리, 광치기, 쉰다리, 갱이 등등. 그중 '거슨새미'라 불리는 작은 샘도 있다. 그냥 지나칠 뻔했는데 작은 팻말을 보고서야 그 이름을 알아보았다. 새미는 '샘'이란 뜻이다. 본래 제주의 지하수는 한라산으로부터 흐르게 되어 있는데 이곳은 특이하게도 한라산 방향으로 거꾸로 흐른다고 한다. 그래서 거슬러 오르는 샘이라 하여 '거슨새미'라 불린다.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오목한 샘에서는 졸졸졸 물이 흐르고 있었다. 마실수 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지나가던 다람쥐나 새들이 충분히 목을 축이고 갈 만큼 맑은 샘이었다.


거슨새미, 토산리
거슨새미 용출구, 토산리



부부


이제야 말하지만 4코스는 매우 길다. 표선 해비치 해변에서 남원 포구까지 걷는 길로 전체 길이가 23.5 km이다. 보통 걸음으로 대략 6~7시간은 걸어야 한다. 그래서인지 4코스를 걷는 사람은 많지 않다. 꽤나 긴 길 때문에 망설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길에서 사람을 보았다. 사람들을 보았다고 하니 험한 오지 체험도 아닌데 하며 신기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사람을 보니 반가 왔다. 그들은 부부였고 손을 꼭 잡고 걷고 있었다. 한적한 길을 걷는 두 사람은 정다워 보였다.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걷는 그들. 난 한참이나 멀직히 그들을 보며 걸었다. 나의 인기척 때문에 그들의 오붓한 행복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난 참 사진을 못 찍는다. 제주올레 4코스 어디쯤.
부부, 제주올레 4코스 어디쯤



또래


웃음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봄바다를 즐기고 있었다. 그들의 웃음은 멀리에서도 들렸다. 어른 들이었지만 아이들 같은 웃음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가방은 방 한구석에 던져놓은 채 또래들과 동네 골목 한 귀퉁이에서 모여 놀던 아이들. 그처럼 또래라는 이유만으로도 즐겁게 놀던 시절이 있었다. 사회생활 중 우연히 또래를 만나면 참 반갑다. 어떤 관계에서 만나든 왠지 친근한 들기 때문이다. 물론 그 마음은 나뿐만이 아니고 상대도 그러하다. 그만큼 또래는 동시대를 살았다는 이유로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무언가가 있다. 저 사람들은 어떤 사이들 일까? 한동네에서 살던 또래 아이들이 커버린 어른들일까? 이름보단 허물없이 별명을 부르는 또래. 그들 모두가 즐거워 보였다.


태흥리 앞바다
또래, 태흥리 앞바다



해녀와 군인


방금 물질을 마친 해녀 할머니는 해녀의 집으로 가고 있었다. 맨발이었고 그녀의 어깨에는 목숨줄 같은 장비들이 매여 있었다. 평생을 저 도구들을 메고 물질을 하고, 물질이 끝나면 저 길을 걸었을 것이다. 잠시 후 그 옆을 건장한 젊은이들이 줄을 맞춰 뛰고 있었다. 이 지역에 상주하고 있는 군인들이었다. 군 생활은 어디서 하든 마음고생이 심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나에게는 꽤나 부러운 군인들이었다. 이 좋은 곳에서 군 복무를 하니. 물론 세상 어느 곳에서 군 복무를 하든 군 생활이 힘들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말이다.



물질을 마치고, 남원
해녀와 군인들, 남원



소중한 삶


어디선가 가늘고 길게 '삐~~~' 하는 소리와 노랫소리가 들렸다. 좀 전에 지나간 군인들의 호루라기 소리인가 했는데, 저 멀리 빨간 점퍼에 얼굴을 가리는 깊은 모자를 쓴 아주머니가 자전거를 타고 오고 있었다. 의문의 소리는 자전거에서 나는 소리였고, 노랫소리는 그 아주머니가 부르는 노랫소리였다. 물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뿌듯함. 그래서 노래가 저절로 나올 만큼 보람찬 그녀의 삶. 참 소중한 장면이었다.


사람들은 하루만을 보지 말고 먼 훗날을 위해 세상을 넓게 보며 살라고 하지만, 살다 보면 그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하루를 버티는 것조차 버겁고 세상은 나만 홀대하는 것 같아 서럽기만 한 것을. 그러나 그 모습 또한 삶의 한 부분이기에 어떤 이에게는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한 이유는 모든 사람이 처한 환경과 상황 그리고 생각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는 순간은 일 초 후에는 지나간 것이 될 것이고, 아주 먼 훗날에는 더욱 그리운 지난날이 될 것이다. 그래서 뒤돌아보면 지나간 것은 아름답기 마련이다. 바쁘다는 이유로 과거를 기억하거나 시간을 내어 회상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지만, 그래도 땀이 비 오듯 흐르는 사람들이 가득한 지하철 안에서나, 아주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의 순간 뜬금없이 지나간 기억들이 떠오르기라도 한다면 당황스럽기보단 그마저도 반갑고 위로가 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다.


그처럼 예상치 못한 곳에서의 기억이 반가울 만큼 각박하고 살아가기 힘든 것이 삶이지만 되짚어 생각해 보면 그 전쟁터 같은 곳에서 굿굿이 살아가는 우리는 대견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삶이 소중 한 것이다. 그렇기에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때로는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빈둥빈둥 지낸다 하더라도 그것은 나의 특권이며 이모두가 소중한 내 삶의 한 부분인 것이다.



집으로 가는 길, 남원
굴뚝, 남원
마을, 남원



또다시 등대


길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대부분 길의 끝에서 드는 생각은 시작했던 길에 무언가를 두고 왔다는 생각과, 도착한 지금 무언가를 남겨놓지 않기 위해 주위의 모든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작과 끝 사이의 길들을 생각하며 그리워하게 된다. 또다시 그곳을 걸을 수 있다는 기약이 없기에 아쉽지만,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먼 훗날까지 이 길을 걸었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행복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걸음이 멈춘 곳은 또다시 포구였다. 여전히 등대가 먼 바다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 또한 등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외로워 보였지만 외롭지 않았던 표선의 하얀 등대처럼 남원의 등대도 홀로였지만 외롭지 않았다. 주위는 어둑해지고 있었고 바다는 조금씩 물결을 일렁이고 있었으며 등대는 밤을 보내기 위해 힘을 충전하고 있었다. 난 한참 동안 바다를 보았지만 계속해서 등대를 똑바로 쳐다볼 수는 없었다. 계속 등대를 바라본다면 어쩜 내가 서있던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날 난 먼 바다의 일렁이는 물결만 하염없이 바라보았고, 대도 내 시선이 머무는 먼 바다를 함께 바라봐 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말해 주었다. 우리 모두는 외로운 것이 아니라고. 그저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고.


등대, 남원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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