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우리는 결코 외롭지 않았다

동생과 함께한 부산 여행

by Ollein


힘들기는 모두가 똑같다


낮과 밤이 바뀌고 있었다. 긴 연휴로 조금씩 생활의 리듬을 잃어가자 급기야는 회사를 나가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바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아무리 그래도사라니. 몹쓸 생각을 하고 말았다.


내가 회사를 생각했던 건 직업병에 길들여진 습성이며, 남는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즐길 줄 모르는 대한민국 아저씨의 비애 이기도 하다. 안 되겠다 싶어 급하게 기차표를 예매했다. 목적지는 부산이고 이른 아침 출발하여 당일 늦게 돌아오는 여정이다. 동행도 있다. 십 년을 넘게 가게를 운영하는 동생은 일에 치여 그간 변변한 여행 한번 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힘들기는 모두가 매한가지이다. 회사생활을 하며 월급을 받아먹고사는 나나, 자기 사업을 하며 월급을 주며 살아가는 동생이나.


부산 가는길


여행의 취향


새벽잠을 포기하고 첫차에 올랐다. 하지만 부산에 도착하면 무엇을 할지 어디를 갈지 결정하지 못했다. 동생은 여유가 없었고 나는 그냥 아무 생각이 없어서였다. 기차에서 인터넷을 보며 속성으로 알아보려 했지만 그 또한 밀려오는 잠을 이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부산역 여행 안내소에 가면 우리 같은 여행자를 위해 뭐라도 있을 테니.


두 시간 후 동생과 나는 부산역 앞 어느 식당에 있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시티투어 버스 안내 책자를 보니, 테마별로 여러 노선이 있었고 우리는 채 오분도 되지 않아 하나의 노선을 선택했다. 전체가 열여덟 개 코스로 되어 있었고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곳을 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동생에게 많은 곳을 다니기보단 시간에 쫓기지 말고 여유 있게 보내자고 했다. 동생도 그러다.


식사 후 우리는 투어버스를 탔고 매일 오후 2시가 되면 하늘을 향해 열린다는 영도다리를 지나 바다가 보이는 흰여울 문화 마을에서 내렸다. 가을볕을 맞으며 언덕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니 나란히 줄 지어선 집들이 보였다. 모두 바다로 창이 나 있었고 창 아래로 난 길을 걷는 내내 너른 바다가 보였다. 하얀 솜을 올려놓은 것처럼 수평선 너머엔 뭉실뭉실구름도 피어 올라 있었다.생이 너무 좋다며 감탄을 했다. 생각해 보니 동생과 내가 단둘이 여행을 해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좋아하는 동생을 보며 그제야 알게 되었다. 동생과 내가 여행의 취향이 같다는 것을.


흰여울 문화마을
흰여울 문화 마을에서 바라본 바다


떠나지 못했던 삶


흰여울 문화 마을과 감천 문화 마을은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만든 마을이다. 기다리는 사람과 누군가를 찾아야 하는 사람들의 삶이 있는 곳이다.


두 마을 모두 시원한 풍경이 펼쳐지는 비탈에 빼곡히 줄지어들이 꽤나 낭만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낭만적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삶을 보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촘촘히 이어진 집들 사이로 난 길을 걷다 보니 그들의 삶이 보였다. 집안에선 사람들의 말소리, 텔레비전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소리들은 의도적이지 않았고 자연스러웠기에 정중하고 조심해야 했다. 낯선 이방인 때문에 그들의 일상을 깨뜨리고 싶 않았서였다.


대부분의 집들은 바다를 향해 있었다. 그들은 누군가 그리울 땐 바다를 보았을 것이다. 맑은 날엔 파란 바다와 구름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폭풍이 몰아 칠 땐 금방이라도 삼켜 버릴듯한 검은 바다도 보았을 것이다. 그럴 때면 그들은 두려웠을 것이고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들이 떠난 다면 돌아오는 이의 행복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처럼 마을은 누군가를 향한 기다림과 그리움이 있는 곳이었다. 파란 하늘과 바다, 알록달록한 집들 모두가 이뻐 보였지만, 그들의 살아온 날들 앞에선 마냥 즐거워할 수만은 없었다.


흰여울 문화마을을 걷는 모녀
감천 문화 마을


과거는 현재가 되어


과거를 회상하다 보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반가움이다. 그 시절엔 그랬지 하며 떠오르는 기억들은 때론 눈시울이 붉어 질만큼 그립기도 하다.


누렇게 바랜 종이를 담은 책들이 작은 골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책들은 몸은 낡았어도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가진 의미들이 전해져 더 큰 의미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퀴퀴한 듯했지만 잠시 코를 대고 있으면 구수한 냄새가 났다. 마치 작은 골목 안에 있기 위한 자격인 것처럼. 아마 누군가 바래지 않은 새 책을 그곳에 진열했다면 외면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책들은 사람들의 과거를 보여 주었다. 나도 그곳에서 내 과거를 볼 수 있었다. 국민학교(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배웠던 미술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시간은 성큼성큼 뒷걸음을 쳤다. 그림 그리기나 종이접기 사진이 나올 땐 그 책을 펴고 공부하던 교실과 칠판, 친구들, 선생님이 생각났다. 신기했다. 몇 년 전 인지 셈 하기도 막연한 시간이었지만 그 시절 무슨 생각을 했었고 무엇이 좋았고 무엇이 염려되었었는지 기억이 또렷했다는 것이.


다른 한편엔 차곡히 쌓여 있는 책들 속에 내가 좋아하는 시집과 수필집도 있었다. 저마다 쓰여있는 책들의 제목을 보며 생각했다. 예전에도 사람들은 가을을 사랑했고 커피를 좋아했으며 삶을 고민하며 살았다는 것을.


보수동 책방 골목


의미 없는 것은 없다


동생과 나는 '자갈치 시장'이라고 커다랗게 쓰여있는 간판을 보고도 엉뚱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생선을 파는 가게도 좌판도 없었다. 길게 이어진 식당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뱃일을 나가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만 보였다. 금세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돌아가지는 않았다. 그저 걸었고, 그러다 보니 배들이 정박해 있는 항구로 나가는 작은 문이 보였다. 그 문을 통해 나가자 커다란 배들이 있었다.


배들은 언제든 준비가 되어 바다로 나갈 채비를 마친 듯 웅장하고 당당했다. 배 위로는 세상과 소통을 하기 위해 삐죽삐죽 솟아 있는 안테나 같은 것들이 있었다. 제각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없었고 복잡해 보였기에 바라보는 우리에겐 그저 커다란 배의 모습일 뿐이었다. 하지만 뱃일을 하는 사람들에겐 그것들 중 하나라도 잘못된다면 가족이 있는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의미 없는 것들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것들. 그러고 보면 세상에 의미 없는 것들은 없는 것이다. 탄산이 가득한 물도 물병을 막아줄 작은 마개가 없다면 금세 밋밋한 맹물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자갈치 시장 근처 항구


다시 시작되는 삶


저녁이 가까워 지자 작은 백열전등들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했다. 거리는 새로운 세상이 되어 다시 낮이 시작된 것처럼 골목은 순식간에 사람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음식을 파는 사람들과 먹는 사람들. 선택받고 선택해야 하는 모습이 치열하게 보일 진 몰라도 그곳엔 질서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 질서 속에서 그들의 삶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내가 먹어본 부산의 음식은 투박했다. 금방이라도 혀를 현혹하는 감칠맛은 아니었지만 아주 오래전 잃어버렸던, 어딘가에 숨겨져 있던 맛 같았다. 달고 맵고 시고의 맛이 아닌, 속으로만 삼켰을 뿐 차마 꺼내기 힘들었던 아픔이 있었던 시절을 살았던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가 좋아했던 맛이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어른이 되어서야 그래 기억나네, 이런 맛이 있었지 하며 그 맛의 진가를 알 수 있었던. 언젠가는 꼭 만나보고 싶었던 맛이었다.


국제시장 아리랑 거리


우리는 외롭지 않았다


땅거미가 몰려와 어둑해지며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왔다. 부산 역으로 가는 투어 버스는 한낮 앉을자리도 없었던 것과는 달리 외국인 세 명만이 타고 있었다. 기사 아저씨는 우리에게 이곳에서 시내버스를 타면 십 분이면 부산역에 도착 하지만 이 버스는 지정된 장소를 돌아야 하기에 삼십 분이 걸린다고 했다. 우리는 그냥 타겠다고 했고 버스는 나와 동생, 말레이시아에서 온 한 명의 여자와, 중동에서 온 두 명의 여자를 태우고 깜깜한 1.5차선 산자락 비탈길을 달렸다.


늘 그렇듯, 여행의 끝에 도착하면 서글프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다. 그 마음을 아는 듯, 창밖 그리움을 품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에선 그들의 보금자리에서 새어나오는 빛으로 우리를 위로하고 있었다. 빛들은 포근했고 여행을 끝내고 돌아가는 우리에게 더 이상 외로워하지 않아도 된다하며 아쉬움을 다독여 주었다. 어둠을 뚫고 1.5 차선을 벗어난 버스는 희망이 가득한 불빛 속으로 빨려 들듯 빠르고 힘차게 달렸다. 그럴수록 빛들은 더욱더 선명히 다가왔다. 국적이 다른 여섯명의 우리는 말없이 빛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더이상 외로움은 없을것이라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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