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있는 한 우리들은 분명 또다시 길을 걸을 것이다.
배가 고팠다. 이른 시간에 점심을 먹었던 탓이었다. 제주 공항에 도착했을 땐 이미 점심시간이 지난 늦은 오후였다. 식당이 보였지만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하나와 바나나 우유를 샀다. 아직 한 시간을 더 가야 했기에 조바심이 났기 때문이다. 여유를 부려도 됐을 테지만 바다에 떠있는 섬이 한눈에 보이는 그곳에 빨리 가고 싶었다.
버스는 늦은 가을 속을 달렸다. 불투명한 수채화 배경처럼 차창 밖은 회색 빛이 가득했다. 금세 어둠을 몰고 올 것 같은 색들은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을 들게 했다. 대부분의 여행은 늘 어둠이 시작될 즈음 끝났던 것 같다. 그래서 어슴푸레한 늦은 오후의 풍경이 나에게는 떠남이라는 의미로 각인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울해할 필요는 없었다. 분명 나는 여행의 시작을 향해 가고 있었고 더욱 명백한 증거로 조바심 가득한 마음에 산 삼각김밥과 우유가 내 손에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버스는 정해진 정류장들을 차례차례 지나 바다가 보이는 곳에 멈춰 섰다. 창밖에 알록달록 빛이 나는 다리와 어둠에 묻혀가는 어스름한 섬, 검붉은 수평선이 보였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 숨을 크게 들이쉬며 중얼거렸다.
“왔네. 서귀포“
다음날 축제가 시작되는 포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바다는 북적 이는 열기에 들떴는지 눈을 뜨기 힘들 만큼 빛을 내며 제 몸을 출렁였다. 하늘은 따가운 볕을 쏟아붓다가도 금세 어디선가 바람을 몰고 오기도 했다.
처음 제주의 날씨를 맞닥뜨렸을 땐 참 이상한 조합이라고 생각했다. 볕이 뜨거워 겉옷을 벗었다가도 바람이 불면 다시 겉옷을 입게 하는 것이 참 얄미웠다. 그래서 짐을 꾸릴 때면 늘 고민이 되곤 했다. 하지만 제주의 날씨는 원래 그런 것이었다. 당돌하게도 나는 제주의 자연에 나의 바람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제주에 갈 때면 고민 없이 바람에 대비한 옷을 준비한다. 배낭 제일 아래에 있다가도 거센 바람이 불면 구세주처럼 유용하게 쓰인다. 반면, 어떤 날은 처음 짐을 꾸린 그대로 있을 때도 있다. 하지만 쓸모없는 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보단 슬며시 허전한 마음이 잔잔한 바다의 고요함처럼 다가온다. ‘그’인지 ‘그녀’인지 모를 바람의 안부가 궁금해서이다.
사람들은 저 마다의 속도로 늦가을 제주를 즐겼다. 그들 중엔 노인도 있었다. 노인의 걸음은 보통 사람들보다 느렸다. 하지만 노인이 내딛는 발끝은 힘차면서도 여유로왔다. 걸음은 삶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듯 진지했다. 때로는 뒤에 오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며 배려를 하기도 했다. 나도 사람들도 노인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이전보다 더 많은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좁은 길에선 걷다 멈추다를 반복하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도 불평하는 이는 없었다. 되려 멈춤은 무심히 지나칠 뻔했던 작은 것들에 눈을 가게 했다. 뜻밖이었고 사람들은 웃음을 지었다. 그들의 웃음은 누군가를 위한, 누군가에게 예의를 갖추는 혹은 마지못해 짓는 인공적인 웃음이 아니었다. 웃음 안에 있던 즐거움과 기쁨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었다. 웃음을 짓는 순간 본심의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곧 웃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란 걸 알게 되자 사람들은 넓은 길에서도 멈추다 서다를 반복했다. 느림은 길 위에서 마주할 무언가를 기대하며 설레게 해 주었다.
우리는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어디선가 시작된 누군가의 재촉에 앞사람을 재촉하고, 재촉당한 사람은 또 다른 누군가를 재촉한다. 그렇게 끊임없이 재촉하여 부와 명예를 얻지만 어찌 된 일인지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다. 그들은 더 큰 부와 명예를 원했고 만족을 위해선 이전보다 더욱 누군가를 재촉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길 위에선 부와 명예가 필요 없었다. 힘들면 멈추었고, 멈추고 싶으면 멈추었다. 그러면 숨어있던 세상의 온전한 모습들이 보였다. 길 위에 펼쳐진 온전한 것들이란 멋진 차, 높은 빌딩, 화려함과 편리함이 가득한 도시가 아니었다. 흠뻑 햇볕을 받아 천진난만하게 피어있는 함박웃음을 짓게 하는 이름 모를 꽃과, 한껏 날개를 펴고 비행하는 모습에 저절로 탄성이 나오게 하는 바다새 같은 것이었다. 길은 재촉도 강요도 하지 않았다. 길 위에서 부자의 척도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들을 보며 얼마큼 내면 깊이 감동받고 느끼는가였다. 그것은 길 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졌다. 사람들은 마음에 닿는 순수한 시선들이 모아 질 때 비로소 온전한 자신만의 길이 완성된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친구들 중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있다고 한 그녀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누군가의 질문에 그녀는 자신의 결혼관에 대해 담담하면서도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어려운 취업의 벽을 뚫고 첫 출근을 앞둔 청년은 앞으로의 직장생활이 설렘 반 걱정 반이라고 했다. 청년의 이야기를 들은 중년의 남자는 지나온 자신의 직장생활을 회상하며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먼 나라에서 온 남자는 해마다 올레길을 걷는 이유를 이야기했고, 일본에서 온 젊은 부부는 내년에도 다시 올레길을 걸을 것이라고 했다.
처음 만난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용기를 내어 이야기했고 그럼으로써 그들은 마음을 치유했다. 그래서인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 모두는 즐거워 보였다. 그 들을 보며 어떤 감정에 대한 하나의 단어가 떠올랐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사람들 모두는 아무도 그 단어를 말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강박 속에서 미리 염두했던 것도 아니었고 충분히 즐거웠기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저 마다의 모습으로 길을 걸었다.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살다가 새로운 삶을 위해 홀로서기를 하고, 힘들 땐 다시 가족을 찾는 것처럼. 사람들은 동료와 함께 걷기도 했고 처음 본 사람과 걷기도 했으며 홀로 걷기도 했다.
그들이 걷는 모습은 우리들 삶의 모습 같았다.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삶이지만 모두가 같을 수는 없다. 자신을 알아내고 세상에 서는 것은 스스로 해야 한다. 길 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발을 움직이는 것은 나였고, 짐을 맨 것도 나였다. 길의 끝에 당도하기 위해 걷는 주체는 나였고 오직 자신의 다리와 의지로만 걸어야 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 길의 끝에 도착하는 것도 삶의 목표를 이루는 것도 주인공은 '나'인 것이다.
바다 목장에선 작은 콘서트가 열렸다. 피아노와 콘트라베이스, 드럼이 어우러져 연주를 했다. 목장 뒤로 펼쳐진 너른 바다에서 세찬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연주자들을 날려 버릴 듯 강했다. 하지만 그들은 바람과 친구가 된 듯 연주를 하며 사람들과 함께 그 순간을 즐겼다.
나도 그들처럼 음악과 바람에 몸을 맡기고 싶었다. 배낭을 내려놓고 얼굴에 둘렀던 머프와 모자를 벗어냈다. 그리고 세상을 품 듯 양팔과 손을 펼쳤다. 그러자 바람은 무장해제된 나의 몸과 손가락 사이로 흘러들어 마디마디의 살갗에 부드럽고 얇은 막을 치며 지나갔다. 차가움보단 따뜻함이 느껴졌다. 다가서기 힘들어 망설이다가도 막상 다가서면 부끄럼 많고 속 깊은 사람 같았다. 흘러온 바람은 또다시 어디론가 흘러갔고, 흘러가버린 바람은 잊을 새도 없이 금세 그리워졌다. 좋기도 했지만 슬프기도 했다. 따라갈 수도 찾아갈 수도 없는 바람의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이틀간 열렸던 걷기 축제의 마지막 장소는 표선의 너른 백사장이었다. 난 그곳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길을 걸으며 느꼈던 것은 내 앞에 길이 있어 기쁘다는 것이었다. 바람에 날리던 억새, 바다와 하늘이 만들어낸 풍경들과 그 풍경 안에 있는 세상과 사람들. 계절이 다르고 지나쳤던 시간들이 달랐기에 매 순간 새로웠고 어느 장소, 어느 순간이든 멈추어 세상의 깊은 곳을 볼 수 있었다. 그것들은 한순간에 사라지지 않았고 또다시 길을 걸을 궁리를 하게 했다. 여행은 힘을 주기 마련이지만 길을 걷고 나면 머나먼 타국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듯 한발 한발 내딛던 길 위의 흔적들은 늘 그리움의 대상이 되곤 했다.
길의 끝이 가까워지면 길 위에서 느꼈던 감정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 꽤나 슬픈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러고 보면 나이가 들어갈수록 무던하게 잊고 대담하게 버릴 수 있는 것이 어른이라고 하는데 아직 나는 마음이 다 자라지 않았나 보다. 언제쯤 대범하고 강건한 어른이 될까 생각해 보지만, 길이 없어지지 않는 한은 자신이 없다.
함성 소리가 들렸다. 길을 마쳐야 할 때가 됐다는 신호였다. 남은 길을 걸어 축제의 마지막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엔 반가운 사람들이 있었다. 새로운 시작을 앞둔 청년과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사는 여자, 아주머니와 아저씨, 엄마와 아빠의 손을 잡고 걸었던 아이, 그리고 홀로 걷던 노인. 그들은 축제의 마지막을 즐기고 있었다. 바람은 세찼고 춥고 길이 끝나 아쉬웠지만 얼굴을 찡그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들은 내년 축제에서도 다시 보자는 말을 했다. 어쩌면 연락처도 이름도 모르기에 너무도 막연하고 허무한 약속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염려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이 멈추어 있는 곳은 또 다른 길의 시작이었기 때문이었다. 길이 있는 한 그들, 아니 우리들은 분명 또다시 길을 걸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