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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lein Sep 14. 2018

여행에 권태를 느낄 때

나는 왜 떠나왔을까?

목이 아팠다. 며칠 전부터 조금씩 부어오르던 편도 때문이었다. 머리에서 지글거리며 미열이 났다. 하루 이틀 후면 절정에 이를 것 같았다. 동그란 비행기 창 밖으로 구름이 보였다. 여기저기서 찰칵대는 소리가 들렸다. 뭉실뭉실한 구름을 카메라에 담는 사람들은 기대와 설렘이 가득해 보였다. 나는 그들과 달리 기대가 없었다. 오히려 여행을 물리고 싶었다. 그러나 되돌릴 수 없었다.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너무 높고 너무 멀리 와버렸다.


그동안 여행은 늘 기대로 가득했다. 그러나 그날은 왜 떠나야 하는지 몰랐다. 느닷없이 찾아온 여행의 권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별통보를 받은 기분이었다. 이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권태는 나 때문이었다. 내 마음이 진득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다. 한 가지에 흥미를 느끼면 엉덩이에 종기가 날 만큼 자리에 앉아 일어설 줄 모르는 성격이다. 합리화를 위해 천성까지 바꿀 수는 없었다.


여행이 끝나고 나면 물리적으로 손에 쥐어지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마음은 풍족했다. 풍족은 진한 여운을 남겨 또다시 새로운 여행지를 찾게 했다. 하지만 반복은 권태를 만들고 권태는 모든 걸 무기력하게 한다. 긍정적이고 순응적이며 패기 넘치던 마음을 사라지게 한다. 여행도 예외가 아니었다. 새로운 곳으로 떠난다는 사실이 새롭지 않았다. 당황스러웠지만 사실이었다. 여행지에 도착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낯선 거리, 낯선 사람들. 만났던 적도 다시 만날 수도 없는 사람들 체취가 베인 숙소 공기와 냄새. 그것들은 새로움이 아닌 “또”라는 반복의 대상 일뿐이었다. 머릿속엔 “왜 여행하는가”란 질문만이 맴돌았다.


다음날 느지막이 일어났지만 어디를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각자 여행지로 떠나 아무도 없는 텅 빈 동네를 할 일 없는 사람처럼 어슬렁거렸다. 그마저도 귀찮아지면 투명 창이 있는 찻집에서 멍하니 거리를 보았다. 사람들과 차들이 지나갔지만 그것들 말고는 모두가 견고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있는 듯 없는 듯 늘 우리들 곁에 있었던 것들. 어쩌면 권태도 늘 내 곁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근원도 알 수 없는 무언가를 계속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 존재를 알지 못했을 뿐이다.


빈둥빈둥 거리는 내가 이상했는지 숙소 주인은 어디 어디가 좋다며 몇몇 장소를 가보라고 했다. 나는 고맙다고 했지만 그곳들을 찾아가지 않았다. 그보단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지루하고 권태로운 한낮 텅 빈 동네가 좋아지고 있었다. 정지된 듯 정적이 가득한 시간과 공간. 그 안에서 목적도 의무도 강박도 없이 모든 것이 비워져 가는 느낌. 그것들은 어딘가를 찾아가고 경험하는 것이 힐링이라고 했던 착각들을 지워내고 있었다. 권태로운 듯했지만 권태롭지 않았다. 권태로운 곳에서 권태롭던 내 마음이 조금씩 생기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동안 여행은 휴식을 위해 떠난다고 했다. 하지만 늘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유 없이 어딘가를 찾아다녔고 그러기 위해 온 정신을 쏟아부으며 계획을 세웠다. 그것들은 의무와 강박으로 다가와 일상에서 느끼는 것과는 다른 조바심을 갖게 했다. 몸에 쌓인 긴장을 풀려했지만 너무 의욕이 앞서 힘이 잔뜩 들어간 채 스트레칭을 하는 것처럼.


여행 마지막 날. 더 이상 여행에게 배신당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왜 여행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여행은 휴식이다. 휴식은 온몸에 힘을 뺀 채 몸과 마음을 느슨하게 하는 것이다. 굳이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동안은 습관처럼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분일초가 아까운 사람처럼 분주히 찾아다녔다. 그러나 여행 안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 그것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시간을 의식하지 않은 채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 않으며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 없이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것도 여행이다. 그것은 게으름이 아니다.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제약을 벗어나는 것도 또 다른 형태의 충전이 될 수 있다. 다음에도 여행의 권태를 느낀다면 권태 가득한 여행을 떠나야 할 것 같다. 아주 지루하고 느슨한 굼뜬 여행을.


오르던 열이 내렸다. 묵직했던 편도의 붓기도 가라앉고 있다. 몸도 마음도 편해졌다. 권태로운 여행을 마치던 날. 나는 더 이상 여행이 권태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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