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마음 자리

글을 쓰며 변한 것들.

웃을 수 있는 하루를 만나기 위해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by Ollein


0과 1만 있는 세상.


0과 1의 조합.

모든 것은 이 두 개의 숫자에 의해 움직여지고 멈춘다.


과학과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간단하고 편리한 것을 찾았다. 그래서 원하 않는 상황에서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아날로그는 다루기 힘들고 귀찮은 영역이 되었고, 사람들은 기준을 정해 그들의 입맛에 맞도록 아날로그를 0과 1의 조합으로 만들었다. 부드러운 곡선을 절도 있는 각 잡힌 계단으로 만든 것이다. 그 결과 수많은 기술과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고 사람들은 그것을 디지털 혁명이라 부르며 오늘도 세상은 변화되고 있다.


디지털은 편리하다. 그래서 디지털은 호황을 누리며 바쁜 세상 속에서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사람들 품에 안착하여 그들을 만족시켜 주었다. 하루하루 새로운 기술들이 쏟아지고, 이제는 세계 최초가 아니면 인정을 받기가 힘든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편리는 사람들 간의 정을 지워 버렸고 지하철에서는 스마트폰을 보는 고개 숙인 사람들만 보인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 하지 않아도 되는 너무나 편리한 세상은 그렇게 손바닥 안의 작은 디지털 기기 안에서 움직이고 보여지고 있다.


처음엔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내가 설계 한대로 움직이고 멈추고 보이게 하는 장치들이 신기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입사를 한 후 0과 1의 조합을 완벽하게 맞추는 것을 나의 직업이라 소개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리고 어느새 시간이 흐르며 나의 말투와 사고도 0과 1처럼 변해 가고 있었다. 결정은 모 아니면 도. 말은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부품의 스펙 시트에 나오는 기술적인 용어가 무의식적으로 섞인, 지극히 사무적인 말투로 변해 있는 단순한 내가 되어 있었다.



다른 숫자들이 그리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0과 1이 아닌 다른 숫자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계단이 아닌 곡선의 안부가 궁금해졌고, 정해 놓은 틀에서 벗어나면 예외(exception)라고 불리며 천대받던 것들이 생각났다. "어떡하면 디지털로 변한 내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딱딱해지고 일률적으로 변한 내 마음에 예외상황을 심고 싶었다.

아날로그가 그리워진 것이다.


아날로그를 찾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글과 여행이 떠올랐다. 나는 매우 절박했기 때문에 책상에는 업무 서적보다는 소설책과 수필, 여행 책들이 하나둘씩 빠르게 쌓여 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늘 코딩만 하던 사람이 웬 수필?" 하며 의아해했고, 그 대답에 나는 "감성이 사라져서... 그걸 찾고 싶어서..."라고 속으로는 매우 심각했지만, 에둘러 가벼운 듯 대답을 하였다.


그러던 중 페이스북에서 누군가 링크한 글을 읽으며 브런치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가끔씩 글을던 블로그를 앞 장작가 신청을 하다. 무심한 척했지만 긴장되는 기다림 끝에 등록이 되었다는 메일이 왔고, 은근한 기대가 한순간에 폭발하면 그 위력이 크다는 것을 보여 주듯 마음은 굉장히 기뻤고 좋았다. 사실 '작가'라는 단어와 '글을 쓴다.'라고 하는 표현이 지금 이 순간에도 어색하다. 하지만 네 개의 글자로 이어진 ‘글. 을. 쓴. 다.’는 문장을 행하며, 조금씩 나의 변하는 모습을 느끼게 되었다.



글을 쓰며 변한 것들.



마음이 차분해졌다.

글을 쓰며 가장 먼저 변화한 것은 마음이 차분 해졌다는 것이다. 업무만 시작되면민해지던 성격이 마치 감기약을 먹으면 머리가 멍한 것처럼 무덤덤 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정말 감기 기운이 있어서 그런가 싶었다. 하지만 머리는 맑았다. 그리고 프로젝트 진행과 팀원들의 관리에 대한 조바심과 걱정들은 글을 쓸 때처럼 차분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출퇴근을 하며 운전하는 나의 모습에선 꽉 막히는 교통체증과 느닷없이 끼어드는 차들을 보며 욱하고 올라오는 내가 아닌 그들을 이해하는 마음이 생기는 느긋한 내가 되어 있었다. 만 느닷없는 상황을 보면 상황을 글 표현한다면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생각할 뿐이다.



주변을 관심 있게 바라보게 되었다.

글을 많이 써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다만, 무엇을 써야 하고 글의 구성과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많이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상을 바라보는 눈과 마음이 이전과는 많이 바뀌게 되었다.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에 의미를 두고 바라보게 되었고 찬찬히 내 주변도 돌아보게도 되었다. 스치듯 지나치며 잊혔던 주변의 모습들을 주의 깊게 보게 되고, 그럼으로써 슬픈 일도 있지만 웃을 수 있는 날도 많아지게 되었다. 일상을 글로 옮기기 위한 내 마음의 상태는 문제점 지적과 비판적인 모습이 아닌 긍정적인 마인드로 변하고 있었다. 모든 현상을 의미 깊게 보는 것. 그럼으로써 나의 마음도 편해진다는 것을 느꼈다.



공학적 논리가 아닌 유연한 사고의 논리가 생겼다.

공학에서주어진 입력에 따라 정해진 출력을 얻기 위하여, 중간의 과정을 논리적으로 설계하여 구현하여야 한다. 예외 사항(Exception)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이것이 지켜지지 을 경우는 회사의 손해와 바이어, 소비자 등 다양한 곳에서의 비판을 피할 수가 없다. 그래서 유연한 것은을 수가 없었고 내 사고도 그렇게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며 글 전체의 문맥을 생각하다 보니 생각하는 사고의 힘이연하바뀌게 되었다. 또한 억지로 맞추기 위한 딱딱한 집중이 아닌 기분 좋게 몰입할 수 있는 집중력이 생겼고, 그것은 업무에도 도움이 되었다. 기본적인 구성에서 얼마든지 융통성 있고 때로는 한껏 수식어를 붙여 글을 완성하듯, 모든 사고의 논리가 유연하게 변했다.



내가 하고 싶은 한 가지 일에 에너지를 쏟는 것이 기뻤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평생의 직업으로 한다는 것. 아마도 가장 행복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마음처럼 되는 것은 아니다. 평생의 직업은 둘째 치고라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평소에 할 수 있다는 것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브런치에 글을 한두 편 올리며 느꼈던 것은 글을 쓰는 것이 참 힘들다는 것이었다. 타고난 글솜씨도, 문장 구성 능력도 없다 보니 작가의 서랍에 써 놓았던 글들은 그날그날 읽게 되는 다른 브런치 작가들의 글을 참조하며 전체적인 구성을 만들어 가기도 했다. 그리고 글을 발행할 때 즈음이면 엄청난 에너지가 급격하게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매일매일 올라오는 글들을 보며 "다른 작가들도 나처럼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정말로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들이 존경스러웠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지난 세월 동안 내가 좋아하는 일에 이만큼 힘을 쏟았던 적이 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타의에 의해, 직장에서 필요해서, 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이 나 자신이 아닌 상대를 위해 나의 에너지를 태웠을 뿐 나 자신을 위해 태워본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서투른 솜씨로 한편씩 올리는 글이 남들에게는 하찮게 읽힐 글일 수도 있겠지만 나 스스로에겐 더욱 큰 기쁨이 되었다. 하얀 백지 위에 무언가를 표현한다는 것. 그리고 에너지를 쏟아내며 나 자신이 좋아서 한다는 것. 글을 쓰는 지금도 기쁜 마음은 여전하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삶과 앞으로의 삶을 바라보게 되었다.

글의 시작은 항상 하얀 여백 위에서 시작한다. 누가 해놓았던 것도 아닌, 누군가 불러주는 대로는 것도 아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나의 의지와 생각으로 글은 시작된다.


이상하게도 하얀 여백에 첫 문장을 쓰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후에 보면 아무것도 아닌 문장이지만 그 첫 문장을 쓰기 위해 한참을 망설였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인생도 마찬가지 인 듯하다. 남이 보면 별 것 아니지만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것. 참 어렵고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첫 문장은 진정성 있는 마음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다시 말해 현란하고 멋있는 문장보다는 쓰고자 하는 테마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마음 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주제에 맞는 감성을 끌어내어 첫 구절을 만들기 위해서는 내 지나온 날들을 회상하게 되었고, 어느새 나는 내 지난 삶을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아놓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게 되었고, 글의 소재가 될 앞으로의 삶도 신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글을 쓰며 문장들을 정리하고 다듬듯이 앞으로의 내 삶도 어떤 마음을 갖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듬어지고 정리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한때는 나 자신과 주변의 상황들에 밀려 꿈은 단지 꿈일 뿐이고, 삶의 목적은 허무하게 사라져 버리거나 이룰 수 없는 목적일 거라 생각하며 반복되는 삶에 지루함과 고단함을 느낀 적이 있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그런 마음들은 조금씩 사라지고 내 생활의 큰 위로가 되고 있다. 그렇게 나는 글을 쓰며 위로받고 있지만 결국은 어느 누구작은 실천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잠깐의 여유로운 마음으로 시작해 본다면, 어쩌면 그것이 각박한 세상의 삶에 최소한 하루에 한 번은 웃을 수 있을 작은 행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난. 오늘도 조금씩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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