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콕과 하우스 1
전자 음악에서 가장 대중적인 장르인 하우스, 심지어 이 장르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세계를 매료시키고 있는 한국 여성 DJ 두 명이 있다. 마침 최근 이 둘의 무대를 Slow Life Slow Live(슬라슬라 혹은 SLSL) 2024에서 접했기에 자랑스럽게 소개한다.
25분부터 Wii Techno 음악이 나오는데, 익숙한 멜로디에 환호하며 천진난만하게 뛰는 사람들의 모습이 바이럴 됐던 영상이다. 예지는 믹스셋은 물론 직접 만드는 음악과 옷을 입는 스타일까지 특유의 키치함이 돋보이는 사랑스러운 아티스트다. 2017년 말, BBC에서 ‘2018년 기대되는 아티스트(Sound of 2018)'로 예지를 선정하면서 국내에 알려졌을 때 Raingurl이라는 음악을 접했다. 그때 느꼈던 신선함을 7년의 시간이 지나도 새롭게 보여주는데 어떻게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가 있을까.
퇴근하자마자 시간을 맞춰가느라 정신없는 상태로 올림픽공원에 도착했었는데, 이내 예지가 알려준 대로 “뿌뿌~ 돈터치미~” 중독적인 훅에 맞춰 안무를 따라 하면서 자연스럽게 페스티벌에 녹아들 수 있었다. 댄서들과 뛰놀 듯 구성한 무대로 프로답게 분위기를 띄우면서도, 멘트를 하는 시간에는 엄마가 옷을 만들어주셨다고 자랑도 하는 투명한 아티스트. 마지막에는 집에 돌아오는 느낌을 주는 한국 관객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며 눈물을 보였는데, 이런 솔직함과 따스함이 예지가 만드는 음악과 무대에서 느껴지기에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천진하지만 그저 소녀스럽다고 규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만의 독보적인 장르를 만들어가는 예지가 앞으로 더욱 기대된다.
슬라슬라 다음 무대는 페기 구였다. 페기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온스타일이라는 채널을 통해서다. 온스타일 채널은 오래전 없어졌지만 영상은 유튜브에 남아있다. 위로 뺀 아이라인과 레드립, 볼드한 패션까지, 사람 자체가 아이코닉해 바로 인스타 팔로우를 하고 음악을 찾아들었던 기억이 난다. 허스키한 저음에 영국과 독일 악센트가 섞인 영어를 하는 것조차 큰 매력으로 다가와 언제쯤 실제로 볼 수 있을까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었다. 결국 2018년 스펙트럼 댄스 뮤직 페스티벌에서 음악을 트는 것을 볼 수 있었고 그때 또 반했다.
페기의 음악은 페기의 캐릭터에서 나오는 당당하고 여유로운 바이브가 물씬 느껴지는데 매력이 있다. 슬라슬라에서 보여준 무대도 그랬다. 젠더의 틀에 가두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만의 몸짓을 선보이는 멋진 댄서들과 함께하는 무대로 올림픽공원을 ‘서울시 페기구’로 만들었다.
작년 6월에 발매한 싱글 Nanana로 전성기를 맞이한 페기 구, 이 음악으로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5위, 네덜란드 차트 1위 등 전 세계 댄스 음악 차트 상위권에 들고, BBC Radio 1 Dance Awards 2024에서 Best Dance Track 부문을 차지했다. 2023년 DJ MAG에서 선정하는 전 세계 ‘TOP 100 DJs’ 차트에서 9위, 2024년 올해는 10위, 아시아 DJ로 가장 높은 순위에 올랐다.
하우스라는 장르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주고 있는 두 아티스트와 동시대에 살고 있는 게 자랑스럽다. 케이팝, 영화, 문학과 더불어 한국어의 아름다운 소리를 알리는 댄스 음악이라니, 한국 문화예술의 황금기에 살고 있는 것을 체감하는 소중한 날들이다. ['잭콕과 하우스 2'로 이어집니다.]
[참고 자료]
- DAZED, “Yaeji on Energy Drinks, Owl Blogs, and Magical Girl Anime | Dazed Day Out”, Youtube, 2023.04.13
- 송보라, “장르가 된 여자들: DJ 예지", VOGUE, 2019.07.25
- OxfordUnion, “Peggy Gou | Full Q&A at The Oxford Union”, Youtube, 2020.05.19
- 강민지, “페기 구, 옷 입을 때 이건 꼭 지킨다?”, ELLE, 2023.11.17
[커버 이미지 출처 : 김올린, 2024.10.11 @SLSL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