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장범준 - 그녀가 곁에 없다면
#1
한남동에서 서촌으로 넘어가는 길. 그리고 서촌에서 다시 집으로 가는 길. 서울을 한 바퀴 빙 돌며, 우연찮게 추억의 장소들을 지나쳤다. 첫사랑과의 첫 데이트 날, 안국역 출구에서 나를 기다리던 그 사람의 모습. 어느 더운 여름날 커다란 호가든 잔을 벌컥벌컥 들이키던 혜화동 어느 노천 카페의 장면과 내 앞에 앉아있던 사람의 차림새. 쓰고 있던 헤드폰을 건네 내가 가장 좋아하던 노래를 틀어주며 노래를 듣는 내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누군가의 표정이 떠올랐다. 기분이 묘했다. 알 수 없는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의 사랑도 그렇겠지. 언젠가 돌아봤을 때, 추억이 됐을 때 더 애틋하겠지.
추억이 사랑'만큼' 소중하다지만, 어떨때는 일상이 돼버린 사랑보다 소중하게 느겨지는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 참 어리석다. 지금의 소중한 시간또한 언젠가 돌아보면 추억이 되어 똑같이, 아니 어쩌면 더욱 애잔한 마음을 들게 만들텐데, 그러니 지금 이 사람과의 소중한 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것에 집중할 것이지 쓸데없이 미래의 애잔함을 걱정하고, 또 이미 지나간 시절의 애잔함을 더 소중히 여기는 어리석음은 무엇인가. 종종 반복되는 이 어리석은 감정 앞에, 과연 인간은, 아니 나라는 사람은 과연 현재를 살 수 있는 사람인가라고 생각했다. 과거를 그리워하고 미래에 기대어 살고, 어쩌면 평생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것은 아닌가. 현재를 누리는 능력을 영영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무서운 생각.
#2
어제 새벽, 나이듦과 그 과정에 잃어버리는 것, 포기해야만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다가오는 것들>을 보고, 오늘은 젊음과 청춘을 주제로하는 사진전을 보고 왔다. 전시를 관람하는 내내 어제 본 영화가 준 깨달음과 '새것도 결국은 헌것이 된다'는 <우리는 사랑일까> 영화 속 한 마디가 떠오르며 이 젊음 또한 언젠가 결국 그 고통의 시간을 겪게 되겠지라고 허무주의에 빠졌다.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정답이 없는 문제겠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더 나은 답을 찾고자 하는 욕심이다. 나는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까. 어쩌면 그런 영화를 보고 고뇌하는 것이 '예방주사'를 맞는 것처럼 허무주의에 푹빠져 고통의 순간이 왔을 때 '그래 내 결국 이럴줄 알았어. 인생이란 원래 이런거지'라며 마음의 준비를 해두려는 것은 아닌가. 이것 또한 나의 또 다른 방어기제일까.
#3
매사에 욕심을 버리자. 내가 지금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론. 인간 관계도, 일도, 너무 욕심 부리지 말고 순리대로 즐겁게, 즐기며 살아보자는 게 지금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이다.
마음속의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라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해답을 얻으려 하지 말라
그건 지금 당장 주어질 순 없으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 보는 일이다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 줄테까
조급해말고, 기다리자. 어떤 것이 해답이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