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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응이응이응 Jun 28. 2024

쿠팡 알바 100일 적응기 - 9

쿠팡의 첫 점심시간


식당은 4층이었다.


관리자들은 업무 중이던 사람들을 중앙으로 모두 모아서 pda를 반납하고

원바코드를 스캔하게 한 후 식사를 마치고 1시까지 이곳으로 다시 모이라고 했다.

 

처음 가보는 식당을 찾아가는 일은 차치하고,

2.2층이었던 넓은 작업장 가운데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찾는 것부터 난관이어서

종종걸음으로 앞서가는 경력직 사원들을 바삐 쫓았다.

 

들어왔던 방법 그대로 검색대를 통과한 후 사물함에 넣어둔

휴대폰을 꺼내러 갔다.


기다리는 연락은 없었고 휴대폰을 보면서 식사를 못하는 습관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잠시의 고립 때문이었는지, 휴대폰이 세상과의 유일한 연결통로처럼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교육을 마치고 작업장에 들어가서 업무를 배우고 본격적으로

일을 한 시간은 길게 잡아봐야 1시간 30분 정도였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점심시간을 애타게 기다려본 적이 대체 언제였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식당이 위치한 4층까지 이동하려면 꽤 많은 계단을 올라야 했지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영원할 것 같던 수많은 계단의 끝에 이르렀을 때 식당을 찾는 건 몹시 쉬웠다.

이미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고 식당 밖까지 나와있는 줄이 보였으니까.


쿠팡의 물류센터마다 식당은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지만

거의 비슷한 건 밥과 반찬으로 이루어진 일반식과 직접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는 간편식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처음 갔던 물류센터는 다른 센터들과 좀 더 달라서

일반식 자체도 두 가지 정도로 나뉘어 있었다.


간편식은 샌드위치나 김밥 등이 음료수와 함께 봉투에 담긴 놓여서

가져갈 수 있게 해 놨는데, 직접 끓여 먹을 수 있는 라면이 있는 건 다른 곳과 다르지 않았다.


줄을 서서 식판에 반찬과 밥을 직접 덜어 담아 빈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는 급식 시스템은 어려울 게 없었다.

나는 혼밥에 익숙했고 식당 안의 사람들 중 말없이 휴대폰을 친구 삼아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으니까.


이날의 식단과 밥맛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또렷하지 않지만,

확실한 건 쿠팡의 식단 자체는 탄수화물에 꽤 많이 치우친 걸로 보였다.


쿠팡 물류센터 대부분의 일이 육체노동이라는 걸 감안하면

탄단지에 식이섬유 비율이 조화로운 식단 같은 건 너무나 쉽게 무시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분명 배가 고팠지만 시장이 반찬이라고 하기에는,

온통 처음이었던 경험들이 주는 압도감 때문에 음식 자체에서 얻는 만족은 거의 없었다.


어쨌든 1시에 다시 업무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나를 준비시키는 일은 중요했기에

나는 자판기에서 1,500원짜리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뽑아서 교육실에 자리를 잡았다.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휴게실로 사용되는 교육실은

휴식을 취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로 가득했는데,

맛이 있다고 하기는 어려운 커피를 홀짝거리며 내가 한 생각이란 하루가 정말 너무 길다는 거였다.


40대의 나이에 접하는 새로운 경험은 대부분 고통을 수반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스쳤다.


새로움과 함께 하는 시간이 평소보다 길게 느껴지는 건 당연했지만,

기꺼운 마음으로 원해서 이 자리에 앉게 된 것은 아니기에 내게는 쿠팡에서의 모든 경험이 쓰라렸다.


하지만 복잡한 생각은 곧 다디단 간식을 챙겨 왔어야 했고,

오늘 하루를 잘 마쳐야 한다는 쪽으로 길을 찾았다.   


단지 내 나이와 쿠팡 알바라는 험한 이미지가 만나서 탄생한 쓰린 좌절감 때문에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이게 나의 최선일지 아닐지는 몰라도 여기서 어떤 최선의 결과를 끄집어낼지

확인할 수 있기까지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도 떨쳐내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식사 후 모이라고 했던 2.2층 그 장소에 똑바로 찾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밀려오던 시점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근무 확정’


내일 날짜로 신청해 두었던 쿠팡 알바 업무 신청이 확정됐다.


나는 내일 다시 여기로 오게 될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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