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은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입고의 약자는 Ib다.
ib를 펼치면 인바운드 inbound가 되는 거고,
물건을 판매하기 위해 물류센터에 온갖 제품들을 들여온다는 뜻이니 어렵지 않은 말이다.
내가 처음 하게 된 일이 입고였고,
진열이었다.
입고는 쿠팡의 다른 알바 공정이 그렇듯 그리 어렵지 않으면서
비교적 몸을 많이 쓰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처음 쿠팡 알바를
시작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선호되는 공정이다.
쿠팡 물류센터에서의 일은 대개 pda와 토트,
카트로 이루어진 삼위일체로부터 시작된다고 보면 된다.
pda에 자신의 원바코드(전화번호)로 로그인을 하면 주어진 업무를 시작할 수 있다.
이 pda 덕분에 쿠팡의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모르는 사람이 와도
조금만 배우면 바로 업무를 시작하는 게 가능하다.
어째서 쿠팡은 매일 새로운 얼굴의 수많은 일용직 노동자들을 채용하면서
물류센터를 굴리는 게 가능한 것인지, pda를 사용하는 시스템이 그 해답이 된다.
pda에 로그인해서 업무를 하고 업무시간이 끝나면
하던 일이 있어도 미련 없이 종료하고 로그아웃한다.
앞사람이 하던 일은 다음에 업무를 시작하는 사람이 로그인해서 이어가는데,
번거로운 인수인계 과정도 당연히 필요가 없다.
쿠팡 알바를 시작하며 가장 놀랍게 느껴졌던 부분은 한글과 숫자,
알파벳만 안다면 그 누구든 쉽게 일에 적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쿠팡이 구축했다는 거였다.
어떤 시스템도 완벽할 수는 없기에 실수가 없다는 건 물론 불가능하다.
하지만 pda와 매일 새로 오는 인력에게 기본을 가르칠 소수의 관리자만 있다면
쿠팡은 끊임없이 대체 인력을 뽑아 쓰면서도 업무공백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쿠팡 알바를 해 본 사람들로 하여금 쿠팡이 사람을 부품처럼 쓰고 버린다고
느끼게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빈자리를 메우는 게 쉽고 떠난 사람이든 자리를 채운 사람에게든 거는 기대치가
조금도 다르지 않다면 사람을 귀하게 느끼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렵게 마련이니까.
나이가 많건 적건,
혹은 학습 능력에 있어서 어떤 차이가 있건 쿠팡은 상관하지 않는다.
최저시급을 주며 딱 그만큼만 기대하는 것은 쿠팡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진입장벽이 낮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도전하고 일할 수 있다는 건 장점이지만
열악한 근무 환경과 더불어 성장을 위한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일이라는 건 명백한 단점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반복적으로 하며 그 사이에서 성장한 나를 그려보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일 테지만, 내가 처음 갔던 쿠팡 센터의 가장 큰 문제는
지나친 익명성 부여라는 생각이 들었다.
‘쿠팡의 신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친절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음에도
이름 대신 원바코드(전화번호) 뒷자리 번호를 부르는 방식을 왜 쓰는지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내 전화번호 뒷자리가 1234라고 하면 이곳에서는 이름이 아닌 1234로 불리게 된다.
자신의 전화번호에는 거의 다 익숙하겠지만 나 자신이 전화번호로 불리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입고 진열을 한다는 건 한 층에서의 통로 이동, 위치 이동은 물론 층간 이동이
수시로 이어질 거라는 말과 같다.
때문에 ‘1234 사원님, 하던 일 마감하시고 중앙 데스크로 와주세요’ 라던지
‘1234, 5678 사원님 지금 일 마치시면 2.3층으로 이동해 주세요’ 라던지 하는 방송이
계속 울리는데 이게 입고 공정의 단점이다.
진열은 절대 한 군데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익숙한 사람들이야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만 초보들에게는 이와 같은 큰 난관이 별로 없다.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는 것에 익숙하지도 않은데
노동요가 크게 울려 퍼지는 작업장 사이에서 불리는 내 번호는 잘 들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관리자들은 통로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방송을 미처 듣지 못한 사원들을 찾아내야만 한다.
아마도 이건 그들 나름으로 찾아낸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하고 성의 없어 보이는 방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교육을 받은 이후 일한 시간은 불과 2시간이 채 되지 않았지만
길도 모르는 넓은 작업장에서 우왕좌왕하며,
혹시 내 번호가 불릴까 신경이 곤두세우며 시간을 보냈음에도
배고픔은 급한 걸음으로 찾아왔다.
마침내 12시,
점심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