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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응이응이응 Jun 19. 2024

쿠팡 알바 100일 적응기 - 7

쿠팡의 신도는 텃세를 부린다.

더울 때는 덥고 추울 때는 추운 공간,

그게 쿠팡 물류센터의 작업장이었다.


한창 유행하는 노래가 흘러나온다는 것 말고는 작업장 안에

조금이나마 보기 좋아 보이려는 노력이 묻어나는 장식이나

 뻣뻣한 마음을 다소 말랑하게 해주는 감성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검색대가 가르는 작업장 밖,

사람들이 출근 체크인을 하는 데스크와 교육실이 있는 공간에

처음 들어섰을 때 나는 뻔한 유치함이 지배하는 분위기를 느꼈다.


매일 제육볶음으로 점심을 먹는 남자들이 가득한 사무실과

어린이집이 합쳐지면 비슷한 분위기가 될까?


물류센터의 인테리어는 지극히 단조롭고 실용성이 가득했지만

목표, 리더십, 혁신 등을 뜻하는 영단어들이 흰 벽에 알록달록한 컬러를 더하고 있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단어가 소리를 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려는 의도였다면

아주 성공적인 인테리어로 보였는데, 아직도 세상을 지배할 거야라든가

세계  대통령이 될 거라는 바람과 믿음을 버리지 못한 채

몸만 커버린 어른이 만든 공간으로도 보였다.  


쿠팡이 직원들에게 어떤 식으로 자부심과 능동성을 요구하는지

알 것도 같았는데, 쿠팡의 요구하는 인재상을 실제로 마주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아주 짧았다.


노란 조끼에 작은 체구를 가진 쿠팡의 인재는 우리를 보자 일단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에게는 우리가 오늘의 골칫거리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걸 눈치채지 않기란 힘들었다.


어느 기업, 단체든 내가 곧 기업이며 단체를 대표한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속한 기업이나 단체의 우두머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에도 자신이 소속된 직장을 마치 자기 것처럼 아낀다.


특이한 건 그 아끼는 마음이 능력을 인정받아 높이 올라가는 사다리를 밟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라 정말 자신과 직장이 한 몸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바로 그가 그랬다.


처음부터 가르쳐야 하는 신규 사원들을 보는 짜증 가득한 표정과

주저 없이 카랑카랑 명령조로 내지르는 목소리에서는 내가 곧 쿠팡이다. 와 같은 믿음이 충만하게 느껴졌다.


아마 이런 이들을 가리켜 쿠팡에는 텃세가 있다.라는 후기가 공유되었던 것일 테지만

 나는 그게 텃세로 여겨지지 않았다.


쿠팡의 신도와도 같은 그의 모든 행동과 말이 전혀 개인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이유는 그런 사람은 쿠팡의 일을 성가시게 만들

모든 존재에 대해 불쾌감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쿠팡의 신도였고 쿠팡이 그에게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그에게는 그보다 나이가 많거나 처음이라 아무것도 모른다는 핑계는

자신의 권위를 애써 눌러야 할 이유가 되지 못했다.


쿠팡의 신도를 보는 마음은 사실 안쓰러움이 가장 컸다.


그는 쿠팡의 열렬한 신도지만 쿠팡에서 영원히 일할 수는 없다.

늦던 빠르던 쿠팡을 떠나야만 하고 그가 열정적으로 행사하던 권위는

쿠팡을 떠나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사원님이 나보다 많이 알아요?’


그의 아버지뻘은 되어 보이던 사원에게 실제로 그가 한 말이었다.


텃세란 열등감을 연료로 쓴다.

누가 와도 나를 대체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도 한몫한다.


쿠팡의 신도는 좀 더 많이 안다는 게 유일한 자랑이라,

자기만큼 업무를 알게 되고 능숙해질 기회를 사람들이 갖는 게 싫을 것이다.

 

쿠팡의 신도가 휘두르는 권위와 텃세는 그 자신을 가장 괴롭힌다.


원래 신이란 존재는 자비롭지 못하다.


오직 자신에게만 자비를 내려줄 것을 기대하는 신도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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