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하거나, 공평하거나
현장 안에는 화장실이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일하다가 화장실을 가지 말라는 소리일까, 화장실을 갈 필요가 없다는 뜻일까?
아직 현장 안으로 들어가 보지 못한 상태라 현장이 어느 정도의 규모이며 어떤 형태인지 가늠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러니 현장에서 검색대 밖으로 나와서 화장실을 가는 데에 어느 정도를 걸어야 하고 얼마나 시간이 소요될지도 당연히 알 수가 없었다.
화장실을 자주 가야 하는 편은 아니어도 기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욕구를 풀어야 하는 게 그토록 힘들다면 그 생각만으로도 불안감이 밀려오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내 불안감은 오로지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였고, 교육이 끝난 우리들은 막 현장으로 투입될 참이었다.
쿠펀치에서 알바를 신청할 때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공정을 선택하게끔 되어있었고 나는 입고를 선택한 상황이었다.
물론, 사전 조사를 통해 입고가 그나마 나이가 있고 체력이 떨어지는 사람들도 감당이 가능하다는 결과를 바탕으로 한 선택이었다.
나 스스로 내 몸이 크게 문제는 없으니 노동을 감당할만할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육체노동을 해 본 경험이 거의 없다는 건 체력을 장담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뜻이었다.
잘 모르긴 해도 육체노동은 확실히 생소한 다른 영역처럼 보였고, 나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었는지 입고를 지원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많아 보였다.
다행스럽게도 오늘은 출고나 다른 공정보다는 입고 인원을 더 많이 필요로 하는지, 입고 지원자들을 다른 공정으로 바꾸게 하는 일은 없었고 그 반대의 경우가 있었다.
출고 지원자에게 입고로 공정을 바꾸도록 하는 등의 교체 과정이 있었는데, 일단 공정이 다 정해지자 우리들은 줄을 서서 현장으로 이동하게 됐다.
입고 인원이 10명 남짓 되었어도 굳이 줄을 서서 갈 정도는 아니었는데, 쿠팡은 인원 관리에 특히 예민해 보였다.
중간에 사라지는 사람이나 길을 잃는 사람이 있는 걸까?
대체 현장이 어떻길래? 하는 염려와 함께 현장으로 들어갈 때의 시각은 11시쯤이었는데, 12시인 점심시간까지는 약 1시간이 남은 때였다.
처음 들어가 본 쿠팡 물류센터의 현장은 아주 희한했는데 층고가 아주 높은 물류창고를 지어놓고 중간을 나누어서 여러 층을 만든 게 특히 그랬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걸 매자닌이라고 한다는데, 그 공간 자체가 확실히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느낌은 아니었다.
우리는 그 매자닌 공간을 향해서 건물 밖 비상구 계단처럼 사방이 뚫린 계단을 올랐는데, 공간은 너무 넓고 그런 계단이 주변에 많아서 길을 잃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게 분명해 보였다.
쿠팡은 매자닌을 나누어서 2.2층이나 2.3층으로 이름을 붙였는데 직접 보니 층간에 다른 점이 거의 없어서 구별 자체가 몹시 어려울 것 같았고, 우리는 그 어디쯤의 층으로 인솔되어서 익룡에게 인계됐다.
익룡.
이건 내가 나중에야 알게 된 노란 조끼를 입은 ps 사원의 별명이었는데, 작은 체구에 단발머리를 하고는 카랑카랑하게 소리를 내지르는 사람이었다.
목소리와 그 태도를 보면 왜 익룡이라고 하는지 잘 알 수 있었는데, 첫날에는 조끼 색깔의 차이도 알지 못하는 상태여서 이 사람의 일이 대체 뭔지도 파악이 힘들었다.
다만 조금의 이해력을 동원해서 파악해 본 바로는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이구나? 정도였는데 조끼의 색깔이 다른 건 하는 일이나 위치가 다르다는 걸 증명하는 거라는 것까지는 알 수 있었다.
노란 조끼는 ps 사원이 입는 조끼인데, ps는 problem solver의 약자로 쿠팡 사원들의 자잘한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이들 역시 쿠팡의 계약직이었는데 사원들과 관리자를 동시에 돕는 역할을 수행한다.
익룡을 봤을 때는 원래 다 저런 식인가? 싶었지만 익룡은 아주 특별한 사례였다.
그 이후에는 익룡처럼 그렇게 존재감을 사방에 떨치는 ps 사원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익룡은 일단 우리를 아주 귀찮아했다.
신규가 왔으니 처음부터 가르쳐야 하는데 그것 자체를 짜증스러워하는 느낌이 역력했고, 어느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무례하기도 했다.
사실 충분히 기분 나빠할 수밖에 없는 태도였지만 굳이 사람을 차별하지 않기도 해서였는지 오히려 귀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쨌든 익룡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친절했고, 우리는 입고 신규라면 대부분 하게 되는 일인 진열 업무를 배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