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팔자‘를 읽어내기 위한 시작은 ‘나’를 찾는 것이다.
기준으로 삼기 위한 ‘나’를 찾아야만 내 인생의 가능성을 자세히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인데, ’사주팔자‘에서 나를 찾는 일은 아주 간단하다.
사주의 네 기둥 중 생일인 ‘일주’ 부분을 찾고, ‘일주’에서 ‘천간’의 글자를 찾으면 그게 바로 ‘나’다.
일주에서 ‘천간‘과 ’지지‘를 합친 나의 ‘간지’는 ‘을유’다.
’을‘이 천간, ’유‘가 지지니까 사주에서 나의 존재는 ‘을’인 셈이다.
이를 일간이라고 하는데 ‘을’인 나의 오행은 ‘목’이라 내 일간을 보통 ’을목‘이라고 부른다.
사주에서 일간은 나의 영혼이자 생각, 본질이다.
을목은 유연한 적응력과 끈질긴 생존력이 특징으로 설명된다.
장애물을 정면 돌파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거나 감아서 올라가는 넝쿨을 떠올리면 쉽다.
유연하고 끈질기다는 건 휠지라도 부러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라 분명히 장점이지만 홀로 버티기에는 약해서 관계와 환경을 이용해야 한다는 단점도 있다.
내 일간만 보면 나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의 기질을 가졌다.
사주에서 천간은 영혼이고 본질이지만 이 천간만으로는 현실의 세상을 헤쳐나갈 수가 없다.
일간의 아래에 지지가 있는 게 그런 이유다.
현실의 나에게는 몸이 있고 내가 불가피하게 처하게 되는 환경이 있기 마련인데 지지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
나의 지지는 ‘유’인데 공교롭게도 유는 을목과는 아주 반대되는 성향인 ’금‘ 오행의 글자다.
을목과 유금.
사주에서는 어떤 본질과 영혼을 가졌더라도 발아래(지지)에 무엇을 깔고 있느냐에 따라 성격과 삶을 추구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내 일주는 아주 척박하다고 할 수 있는 편이다.
내 영혼은 나무이지만 내 뿌리에는 금이 도사리고 있다.
금, 즉 금속의 도끼나 칼이 나무를 치고 깎아낸다고 생각하면 내 일주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단박에 이해가 된다.
내가 잘 자라게 만들기 위해 뿌리를 튼튼하고 견고하게 받쳐주기는커녕 오히려 나를 공격하는 칼날 위에 나는 서 있다.
서늘한 칼날 위에서 버텨야 하는 나무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을목에 유금을 더해서 성격을 풀어본다면 나의 내면이 더 단단해진다는 장점은 있다.
을목은 유연해서 우유부단한 편이지만 유금이 더해지니 내면에 결단력 있는 성향이 추가가 되는 것이다.
재밌는 건 칼날을 깔고 있으면서 칼날을 쥐고 있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정밀한 도구를 다루는 직업이 잘 맞는 특징도 갖추게 된다는 것.
을목의 유연함 덕분에 창의력을 쓸 수 있는 분야도 좋아서 아주 묘하게 의료나 법조계
디자인이나 예술 쪽에서 모두 재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을목의 우유부단함과 유금의 완벽주의가 합쳐져서 결정을 지연시키거나 독단적으로 흐를 수가 있다.
심지어 여자는 배우자복이 약해서 독신이나 싱글맘으로 살게 되는 경향도 크다니, 단점 또한 아주 뚜렷한 편이다.
사주처럼, 실제로 사람의 성격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은 환경이다.
어떤 가정환경에서 자랐는지,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았는지가 성격을 형성하는데 사주의 경우에도 지지와 오행이라는 ‘환경’이 비슷한 방식으로 나의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사주명리학은 나의 일주가 알려주는 ‘나’를 읽어내는 것에서 멈추지 말라고 강조한다는 것이다.
나의 천간인 을목은 내가 태어나면서 부여받은 나의 숙명이지만, 내가 본능적으로 되고자 하는 나의 이상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사주는 내가 바꾸기 어려운 환경이나 현실을 헤쳐나가야 하는 건 숙명이지만, 그 현실이 ‘을목’이라는 나의 본질을 바꾸거나 퇴색되지 않도록 지켜내는 것은 나의 몫이라고 한다.
내가 을목이라는 정신과 영혼에 유금이라는 몸이자 뿌리를 가졌다면 이제 나를 둘러싼 환경과 현실을 읽어내어 맞닥뜨릴 시점이, 마침내 왔다.
나는 왜 고통을 받고, 무엇 때문에 곤란을 겪으며, 어떻게 해야만 혹독한 환경을 이용해서 나아갈 수 있을까?
먼저 말했듯 내 사주를 설명하는 가장 큰 특징은 ‘재다신약’이다.
더불어 내 인생이 한 편의 영화라면, 초대형 떡밥이자 스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