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성은 재물을 뜻하지만 온전히 돈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재성은 남녀 모두에게 돈이면서 아버지와 일인데, 좀 더 개인적인 영역으로 들어가면 남녀의 사정이 달라진다.
남성에게 재성은 아내와 여자, 여성에게는 시어머니와 남편의 가족을 뜻한다.
그래서 남자에게 재성이 없으면 돈과 여자와의 인연이 모두 약하다고 하는데, 예전에는 여자의 재성이 재물보다는 주로 시어머니와 남편의 가족을 뜻했다.
다만 결혼했다고 여자의 재성이 재물과 관련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재성이 남편이 돈을 벌게 만든다는 게 사주팔자의 흐름이다.
집에 사람을 잘 들이면 가문이 흥한다는 게 사주에서는 전혀 허무맹랑한 말이 아닌 것이다.
재성이 많은 내 사주는 당연히 일이 많고 남편의 가족 일을 떠안게 되는 팔자라고 읽힌다.
하지만 일이 많아도 그 일을 어떻게 떠안고 가느냐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남편이 자신의 집 일을 모두 아내에 떠넘기지는 않거나 그 모든 일을 내가 혼자 해내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나마 일이 좀 많네. 하는 식으로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 사주는 그런 면에서 큰 문제가 있다.
남편과 관련해서 일이 많고 그 일이 나를 몹시 괴롭힌다는 해석이 뒤따르는 것이다.
나의 많은 재성이 그대로 관성(남편, 남자)을 생해주는 구조라 나는 약해지고 남편은 강해지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건 이해가 된다.
하지만 대체 무엇이 일과 별개로 나를 괴롭게 만드는 걸까?
나는 일지, 즉 일주의 지지에 편관을 하나 깔고 있다.
내 사주에서 관성은 오직 이것 하나, 편관뿐이다.
이쯤에서 관성 얘기로 넘어가야 할 텐데 재성은 내가 극하는 오행이, 반대로 관성은 나를 극하는 오행이 그 역할을 맡는다.
내가 을목이라는 천간을 가졌고, 그 아래 일지에 날카로운 칼날을 깔고 있는 것은 내 인생의 메인 테마라고 할 수 있다.
나를 생해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극하는 것도 아닌, 나를 극하는 나의 뿌리.
극의 방향성이 주는 느낌대로 재성은 내가 다루고 결과물을 내는 일과 결실이라면, 관성은 나를 다스리는 규칙이나 조직이다.
재성이 내가 얼마나 많은 결실을 맺는가를 목적으로 한다면, 관성은 내가 얼마나 책임 있고 명예로운 위치에 있는가를 인생의 방향으로 삼게 만든다고 할 수 있다.
여자가 나가서 직접 돈을 벌거나 관직에 올라서 명예를 추구하는 일이 드물던 시대를 지나왔기에 재성이 여자에게 재물보다 남편의 가족 쪽에 그 의미가 컸던 것처럼 관성도 그렇다.
관성이 규칙이나 명예를 의미하는 건 남녀 모두에게 똑같지만 재성이 남자에게 아내나 여자를 의미하는 것처럼 여자에게는 관성이 그런 역할을 한다.
일지는 특히 배우자 자리라고 해서 일지에 어떤 십성을 가졌느냐에 따라 ‘그런’ 유형의 배우자를 만나기 쉽거나 자신이 그런 배우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도 가진다.
재성이 음양으로 정재, 편재로 나뉘는 것과 마찬가지로 관성도 정관과 편관으로 나뉘는데 일단 뉘앙스에서부터 느껴지듯 여자에게 편관형 남편은 별로 좋지 않다.
정관이 나를 보호하는 안정적이고 모범적인 배우자라면 편관은 보호보다는 통제를 하는 강한 성격의 소유자다.
예전에는 정관과 편관을 남편과 애인으로 나누기도 했다지만 현대의 사주명리학은 남편의 성향이나 안정성을 기준으로 나눈다.
내가 가진 ‘편관’이라는 십성은 내가 강렬하고 도전적인 감정의 관계에 나를 밀어 넣는 성향의 남편을 만날 가능성이 많음을 알려준다.
결국 나의 취향이 그런 남자라는 것인데, 그동안의 내 연애사를 돌아보면 강렬하기보다는 보통 재미가 없다고 평가할 수 있는 남자들이 대부분이었기에 나는 좀 의아했다.
가능성이 없을 것 같은 관계를 애써 끌고 가는 성향이 아니라서 나는 짝사랑을 시작해도 오래가지 않았고 소위 ‘나 좋다는’ 남자를 주로 만나왔다.
그런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상대의 마음에 비례해서 내 마음은 커지지 않았고 연애에 대한 미련이나 집착도 별로 없었다.
관계를 쉽게 끊어내고 연애가 왜 좋은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건, 분명 내가 연애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관계를 지키고 싶고, 연애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줄 내 취향의 남자를 만나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