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모두 배우자와 결혼은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테마다.
더 깊이 들어가서 실제 사례에 적용을 해보자.
이 사례의 여자를 부르기 쉽게 A라고 일단 정하기로 한다.
A의 사주에는 여자 사주에서 남자이나 남편을 뜻하는 관성이 두 개가 있다.
정관과 편관으로 나뉘는 관성 중에서도 정관만 두 개로, 각각 태어난 월을 뜻하는 월주의 아랫부분인 지지에 일단 하나가 있다.
나머지 한 개는 태어난 시를 뜻하는 시주의 윗부분은 천간에 위치한다.
여자에게 가장 이상적인 남편상은 어쨌든 편관보다는 정관이다.
편관, 정관 모두 남편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타입이라고 하지만 정관은 아내를 지지하고 보살피는 안정된 쪽이고 편관은 카리스마는 있지만 더 보수적이며 아내를 지지하기보다는 통제욕을 드러내는 남편이다.
정관만 있는 A의 배우자운은 일단 제법 괜찮은 편이라고 읽을 수도 있다.
관성이 배우자의 자리인 ‘일지’에 있지는 않다는 것이 흠이 되지도 않는다.
배우자의 영향력이 적어지긴 하지만 그 나름으로 배우자와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뜻도 되니까.
무엇보다 관성은 여자에게 남자, 남편임과 동시에 직장과 명예를 뜻하기 때문에 그쪽의 운도 좋은 편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전편에서 설명했던 여자 사주에서 월주에 관성이 있으면 사회로 진출한 이후에 경제적으로 안정된 남자를 만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했다.
시주에 관성이 있는 경우는 늦은 결혼이나 연하의 배우자를 만날 수 있다고 하는데, A의 사주의 경우에 적용해 보면 사회적으로 유능하고 책임감 있는 배우자와 인연이 깊고 A 본인의 직업적 명예와 배우자운이 말년까지 이어지는 흐름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월주의 관성과 시주의 관성이 따로따로 작용해서 최소 두 번 결혼한다 식은 아니라는 것이다.
천간에 관성이 있으면 배우자를 고를 때 대외적인 시선을, 지지에 있으면 좀 더 현실적으로 실속 있는 배우자를 원하는 경향이 있다고도 했다.
그러니까 A는 좀 이르지만 사회에 진출해서 실속 있는 배우자를 만나서 결혼하고 그 인연을 그대로 이어가서 말년까지 함께 하게 되는, 보통의 사람들이 바라는 전형적인 결혼을 할 가능성이 많은 사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A는 두 번 결혼했고, 모두 실패했다.
사주는 전체의 균형을 봐야 하고 그 균형을 파괴하는 요소까지 다 고려해야 하니 정관 두 개가 당연히 좋은 배우자를 만날 거라는 보증서는 아니라 현실이 그렇게 펼쳐진 걸 아주 이상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왜 그런 현실을 살 수밖에 없었는지를 사주에서 살펴보면 아주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할 수가 있다.
실제로 A는 스물넷이라는 이른 나이에 첫 번째 결혼을 했는데 사회에 진출한 이후였고 상대는 다섯 살이 많은 자영업을 하는 남자였다.
그 남자는 번듯한 외모를 가지지는 못했고, 직업적으로 유능하다고 하기는 어려웠으니 실속과 현실적인 조건만을 감안한 결혼인 것만은 분명했다.
이 결혼은 10여 년 만에 끝이 났다.
남자가 외도나 도박을 했거나 폭력을 행사했던 적은 없었다.
남자는 지극히 평범했지만 A는 출산과 육아를 겪으면서 남편이 얼마나 인색한 사람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출산과 육아는 A의 경력을 단절시켰고 남편이 주는 생활비로만 생활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하게 만들었는데, A가 당연하게 여기는 최선과 남편의 기준은 차이가 매우 컸다.
남편은 A가 돈을 벌지 못하고 있으니 자신이 생활비만 주면 살림과 육아에 자신을 돌보는 일까지 모두 도맡아야 하는 게 마땅하다고 여겼다.
또한 자신이 가정을 책임지고 있으니 자신이 번돈을 취미에 쓰면서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자신의 권리라고 믿었다.
남편이 준 생활비는 아끼고 아껴서 생활해야 할 정도로 빠듯한 금액이었고 A는 남편에게서 정서적으로 방치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나이쯤 되자 A는 직장을 구하고 이혼을 준비하기에 이르렀다.
A의 이혼 요구를 남편은 전혀 납득하지 못했다.
자신에게는 외도나 도박, 폭력의 문제가 전혀 없고 남들도 다 비슷하게 사는데 A가 유난을 떤다고, 유별나다고 비난했다.
그의 주장대로 사회적인 잣대로 보면 두드러진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평생을 함께 살아야 하는 부부가 추구하는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는 데에 있었다.
A의 사주에 정관이 있어서 A는 나를 보호해 주는 울타리가 되어줄 배우자에 대한 욕구가 있었고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
정관이 있다는 건 그런 배우자를 만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동시에 본인이 상대에게 그런 배우자가 될 가능성이기도 하다.
일주의 배우자 자리에 관성이 없더라도 그 자리의 십성이 배우자와의 관계와 결혼 생활의 분위기를 결정한다고도 했는데, A의 배우자 자리에 있는 십성은 ‘식신’이다.
십성은 내가 생해주는 십성으로 보통 여자에게는 자식을 뜻하는데, 이게 배우자 자리에 있으면 배우자를 자식처럼 챙기고 보살피는 경향이 있다고 읽는다.
자식과 가정 쪽으로 에너지를 많이 쓰는 사주라고 볼 수 있는데 배우자를 자식과 비슷하게 대하니, 한편으로는 배우자의 허물을 지적하는 성향도 있다.
서로를 자식처럼 보살피는 부부 관계가 사실 가장 이상적이긴 하지만, 여기에도 명과 암이 있다.
배우자를 보살피는 성향이 있는 경우에 실제로 부부 사이에 아이가 생기면 아이 쪽으로 에너지가 쏠려서 배우자와 멀어지는 상황도 흔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A의 결혼 생활은 ‘식신’의 영향을 두드러지게 드러냈다.
A는 남편을 보살피는 쪽으로 애정을 표현했고 아이가 생기자 보살핌의 영역은 더 넓어졌다.
만약 A의 남편이 A의 돌봄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그들이 헤어졌을까?
A의 정관은 남자, 남편이었지만 동시에 명예와 규칙을 중요하게 여기는 성향을 부여하는 십성이기도 했다.
A는 규칙과 책임감이 투철했고 조직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정을 지키려 애썼지만 A가 판단하기에 남편이 가진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대한 책임감은 형편없었다.
사주는 인생의 가능성일 뿐이다.
A는 자신의 사주대로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결혼했지만 선택의 오류를 겪었다.
사주가, 무속인이 사람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하루에도 무수히 많은 선택의 앞에 서게 되는 삶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