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나가면 제한속도를 초과해서 달려도 어떤 차들은 자신 앞에 경차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참지 못한다.추월을 한다. 하이빔을 쏜다. 그 밖에도 내가 겪은 수모는 제법 있다. 그렇다면 이런저런 핍박에도 불구하고 아직 경차를 타는 이유는 뭘까?
한 달에 10만 원이면 오케이
사회 초년생들에게는 흔히 차를 구입하지 말라고 한다. 보험료부터 감가상각비용까지 한창 종잣돈을 모아야 할 시기에 차는 '돈 먹는 하마'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교통이 촘촘하지 않은 지방에서 중고 경차는 합리적이다.
경차를 타면 유지비가 적게 든다. 주로 출퇴근용으로 쓰고 간혹 다른 도시로 이동이 있는데 한 달 유지비는 10만 원 정도이다. 일 년이면 120만 원 정도이다. 보험료가 60만 원, 유류비가 50만 원, 수리 및 부품비가 10만 원 정도 든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한 달에 10만 원은 합리적이다. 더구나 '가까운 층은 엘리베이터로, 가까운 거리도 택시로'라는 생활 모토를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자차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할인 혜택도 쏠쏠하다. 경차는 유류세 할인이 되는 경차사랑카드가 있다. 1년에 10만 원 한도로 할인이 되는데 체감 20% 정도의 할인율이다. 그리고 톨게이트 비용, 공용주차장 비용이 50% 할인이 된다.
나눠 쓰는 소형차보다는 혼자 쓰는 경차가 넓다
나의 모닝은 크지는 않지만 앞좌석, 뒷좌석, 트렁크까지 한 사람이 다 쓴다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동승자가 없다면 옆좌석에는 가방, 간식거리를 둔다. 뒷좌석에는 포근한 담요와 우산, 외투까지 곱게 누인다. 트렁크도 크지는 않지만 에어컨 필터, 와이퍼 등 차량 관련 소모품과 마실 물, 수영용품, 운동복, 드라이빙 슈즈까지 차곡차곡 넣어 다니기에 부족함이 없다.
누군가로 인해 채워졌을 때 공간이 좁아지는 것이지 대부분 혼자 쓰기 때문에 좁다는 느낌은 별로 받지 못했다. 물론 다리가 길고 덩치가 큰 사람이 앉으면 의자도 작고 레그룸도 짧아서 의자를 뒤로 쭉 밀긴 하다만 내 체격 기준으로는 충분하다. 나눠 쓰는 소형차보다는 혼자 쓰는 경차가 인당 사용면적이 더 넓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네들이 나의 공간에 들어와서 당신의 부피 때문에 차가 좁아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혼자라면 문제없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을 갈 수 있어
가장 좋은 것은 기동성이다. 1인 가구야 말로 알파벳 다음에 배워야 하는 것이 운전이라고 생각한다. 운전을 하면 누릴 수 있는 시공간이 확장된다. 한밤중에 답답하다면 비싼 택시를 타거나 드라이브를 시켜줄 누군가를 찾을 필요 없이 주차장으로 내려가 부릉부릉 시동을 걸기만 하면 된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도 주최할 수 있다. 경차에 기꺼이 타겠다는 의지가 있는 친구들이 있다면 말이다.차를 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대학 친구 4명을 모닝에 태우고 지방을 갔는데 덩치가 있는 남자 사람 친구들도 함께 였다. 그때는 몰랐는데 가방을 둘 곳이 없어 무릎 앞에 안고 어깨를 부딪혀 가며 덜컹덜컹 시골길로 갔던 우리가 귀엽게 느껴진다. 청춘이었다. (그리고 여름이었다.)
차를 운전하고 가장 좋은 것은 시간이 절약된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든 시간이 중요하겠지만 생활 전반의 행정을 혼자 해결해야 하는 1인 가구에게 시간은 금이다.
세탁소에 옷을 맡기는 것도 찾는 것도 나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도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것도 나다. 동사무소에 가고 은행에 가는 것도 나다. 차를 타면 시간이 절약된다.
내가 사는 지역은 대중교통으로는 1시간 걸릴 거리도 차로는 10분이면 도착이다. 추위와 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체력을 아낄 수 있다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유가 된다면 더 큰 차로 바꿀 예정이다. 차를 바꾸는 이유는 경차에 대한 편견 때문은 아니다. 몇 번의 작은 접촉사고가 있었고 차의 안전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신차를 시승할 기회가 있었는데 안전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앞에 사람이 있으면 자동으로 멈춰주는 기능, 눈으로 확인이 어려운 사각지대의 차량의 접근을 알려주는 기능, 자동 크루즈 기능이 생명을 연장시켜줄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이런 기능이 있다면 막을 수 있었을 사고도 있었다. 기술로 얻을 수 있는 안전이라면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남들처럼 블루투스를 연결해서 핸드폰의 음악을 듣고 싶다는 작은 소망도 있다. 차를 바꾸기 전까지는 이 노래를 들어야겠지.
꼬마 자동차가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 붕붕붕. 아주 작은 자동차. 꼬마 자동차가 나간다. 붕붕붕.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 꼬마 자동차. 엄마 찾아 모험 찾아 나서는 세계여행, 우리도 함께 가지요.
꼬마차가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꼬마차가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랄랄랄라 랄랄랄라 귀여운 꼬마차와 친구와 함께.
어렵고 험한 길 헤쳐나간다. 희망과 사랑을 심어주면서. 아하- 신나게 달린다. 귀여운 꼬마자동차 붕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