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일상
무더운 여름, 부지런한 개미는 열심히 일하며 겨울을 대비해 먹이를 모읍니다. 반면, 베짱이는 노래하고 놀면서 여름을 즐기고, 열심히 일만 하는 개미를 비웃습니다. 시간은 흘러.. 겨울이 왔고, 겨울을 대비하지 않던 베짱이는 먹을 것도, 보금자리도 없이 추위에 떨며 굶주립니다. 베짱이는 여름 내내 놀던 자신의 행동을 후회합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아는 개미와 베짱이 이솝 우화이다. 결말은 개미가 베짱이를 도와주는 버전도 있고, 외면하는 버전도 있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개미와 베짱이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다는 것. 그 이후로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베짱이.
유흥을 좋아하며, 돈이란 것은 자고로 사용해야 맛이고. 예술을 사랑했던 베짱이. 자본주의 시대에 베짱이의 주머니는 채워질 틈이 없었다. 일이 끝나면 소파와 한 몸이 되곤 했던 베짱이. 밥 먹고 바로 눕는 걸 좋아해서 역류성식도염에 걸렸지만 그럼에도 자리에 일어나서 운동을 할 생각이 하나도 없던 베짱이. 그러다 시간과 돈이 조금이라도 채워지는 날에는 훌쩍 여행을 떠나며 행복한 싱글라이프를 즐기며 사는 베짱이가 있었다.
그는 개미.
뭐든지 아끼고, 뭐든지 안 사고 미래를 위해 저축하는 개미. 해외여행은 사치이며 돈은 자고로 통장에 들어가야 마음이 놓이고, 취미는 돈 안 드는 걸로. 유흥과 거리가 먼 성실한 개미. 아침에 일찍 일어나 운동하고, 좋은 음식을 먹고 몸에 나쁜 것은 최대한 안 하려고 자신을 혹독하게 채찍질하는 개미. 매일 꾸준히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당연한 개미.
베짱이는 개미의 성실함에, 개미는 베짱이의 위트와 건강한 에너지에 끌렸고 서로 사랑하게 됐다.
베짱이는 그동안 그려보지 않았던 미래를 꿈꾸게 되었고,
개미는 베짱이와 여행을 가보니 왜 사람들이 여행을 가는지 알게 되었다.
함께하는 시간은 즐거웠다.
열심히 살아가는 개미를 본 베짱이는 자신의 삶을 돌아봤고, 개미가 원하는 미래를 같이 준비하기 시작했다. 베짱이는 사랑했던 기타와 소파를 치워버렸다. 성실한 일꾼이 되어 차곡차곡 곡식을 모으고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몸에 좋은 음식을 챙겨 먹고, 운동을 하며 평소에 달고 살았던 역류성 식도염과도 작별했다. 식구들이 늘어나자 베짱이는 더 바빠졌다. 이제 한가하게 풀잎 위에서 노래하고 친구들과 담소를 나눴던 베짱이는 사라졌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이게 내가 원하던 삶인가?'
그렇게 시름시름 앓아가던 베짱이는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고,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개미는 나를 정말 사랑하는 걸까? 나는 점점 나를 잃어가는 것만 같아... '
활기 넘치던 베짱이는 시들해져 갔고, 친구들의 풀벌레소리를 들어도 베짱이의 가슴은 설레지 않았다. 앞만 보며 달려가는 개미와 함께 달릴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베짱이는 멈춰버렸다.
그 모습을 본 개미는 위기감을 느꼈다. 개미가 열심히 노력했던 이유는 베짱이와의 행복한 삶이었는데... 이렇게 살다가는 베짱이와 함께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개미는 무서워졌다. 베짱이가 없는 삶은 개미에게도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개미는 달라졌다. 베짱이와 함께하기 위해서는 달라져야만 했다.
베짱이가 풀 속에서 노래를 다시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었다. 함께 여행을 갔다. 둘이 손을 잡고 노을이 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던 베짱이도 다시 일어났다. 몇 년 동안 노래를 부르지 않아 소리가 나지 않은 목을 가다듬었다. 자신이 뭘 좋아했는지, 뭘 해야 행복한지에 대해 생각하고 개미에게 알려주었다. 육아를 포기하지도, 본인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 개미와 베짱이의 이야기는 현재 진행 중이다.